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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Dec 10. 2020

오늘도 나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세 번째 조각 글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다.


예전에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 조언이나 글을 볼 때마다 약간 거만한 태도로 '나는 이미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다 아는데?'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건 진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지 못한 풋내기의 생각이었다.


잔잔한 재즈 음악, 일찍 일어나서 하는 청소와 운동, 갑작스럽게 나서는 외출 혹은 산책, 기분이 내킬 때마다 펼치는 노트북과 책, 자주 열어 놓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쉬이 틀지 않는 텔레비전, 자잘한 식재료를 사 와서 하는 요리.


다른 누구와 함께 있지 않은 채로, 특히나 어떤 일에 쫓기지 않은 채로 마주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좋아하는 것들은 선명해지고 꺼리는 것들은 희미해졌다. 내 일상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렇듯 아직 발견하지 못한 즐거움들이 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별일 없이 일상을 보내는 일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얻기 위해(내 의지대로 시간을 쓰기 위해) 평생을 전전긍긍하며 사는 게 아닐까? 특별한 일이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무엇을 얻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용기이며 선택이다.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잃을 것과 얻을 것 사이에서 시소를 타며, 이 시소에서 내려오기를 겁내기 때문이다.

- 박연준, <모월 모일>, 109p.


처음으로 낯선 나라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을 때, 그곳으로 떠나기 전 거울을 보며 스스로에게 잘 부탁한다고 했던 일을 기억한다. 떠나가면 나 혼자 뿐이고 나를 부탁할 사람은 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의식처럼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나를 부탁받았던 내가 지금까지 나를 잘 보살펴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리적으로는 혼자 있지만 알고 보면 나 자신과 함께인 시간에 익숙해지고 그 시간을 더 행복하게 잘 보낼 수 있도록.


인간은 스스로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뤄가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마주 볼 수 있는 시간 안에서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나아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까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나와의 시간을 잘,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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