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게 아니다.
잠시 번아웃이 와서 쉬게 되는 것 뿐이다.
아무런 생각없이 텅빈 지금의 속이
영원한 게 아니라, 잠깐 배터리가 닳은 것 뿐이다.
아무도 곁에 없이 고요한 저녁이
쓸쓸하게 느꺼진다면 그건 ...
어제부터 너무 많은 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에 치이고, 사람이 넘쳐나던 순간들에도
감각을 차마 느낄 수 없었던 모진 일중독 때문이지
누군가 나를 내버려두어서가 아니다.
내가 스스로 동굴을 판거다.
그 속에서 빛을 잠시 피하는 대신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던 보석같은 걸 숨겨놓은듯
그렇게 나만의 깊은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던 아마추어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이제 그 동굴마저 포크레인으로
지붕이 부서지면
그땐 어쩌지. 그럼 더 감출 수 있는 것도
도망치고 피할 곳도 없을텐데...
늙고 따가와도 태양빛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그 뜨거운 나날들을 기꺼이 끌어안고
울고불며 함께갈 오기가 생겼다면...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습기눅눅한 외진 구석보다는
화상 좀 입더라도
한때 그렇게 불붙여 피어올라보았다고
한마디 더 할 수 있는
그런 생이 낫지 않나.
이리가나 저리가나
그 마지막 레이스의 길이에 별 차이가 없을 거라면...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