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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Sep 28. 2024

김종국이가 난리가 난데이!

시어머니 언어 듣기 평가 2

 어머니는 성격상 불편한 점에 대해 꾹꾹 숨기는 분이 아니다. 그럼에도 며느리에게만은 그 성격을 고스란히 내놓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신다. 결혼 생활 20년 동안 나에게 싫은 소리를 거의 해 본 적 없는 어머니가 나에 대해 불만이 없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내가 만약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다음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는 남편의 행동에 불만이 있어도 중대한 것이 아니면 그다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별로 좋을 것 없는 성격의 한 종류였다. 그런 별로 좋지 않은 성격이 형성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소한 지적이라도 듣게 되면 그것을 몹시 불쾌해하며 분위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남편에게 지적이라든지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는 것은 그에게는 '싸우자'는 의미로 통했다. 결국 사소한 불만이던 큰 불만이던 여타 교양 있는 부부들처럼 조용한 말투로 해결하는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은 자칭 타칭 깔끔 왕인 남편의 요상한 습관에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 후에 종종 아이스크림을 먹고는 그 포장지를 거실 테이블에 그대로 남겨두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깔끔 왕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 생활 내내 내 이름보다도 더 많이 들은 '정리', '깔끔'이라는 단어를 쏟아낸 그가 할 행동은 아니었다. 나는 잠자리에 들어가는 남편을 향해 말했다. 



"저기 아이스크림 먹은 거 껍데기 버리세요오~"

 나는 나름 상냥한 목소리를 내며 지적 아닌 지적을 했다. 

남편은 그것이 기분이 나빴는지 별거 아닌 것을 되게 뭐라 하네라며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휙 버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를 보며 별거 아닌 것에 성을 낸다고 생각했다. 

  



 그 성질을 직장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며 살진 않았을 것이다. 직장에서 못 쏟아낸 것을 집이라는 만만한 공간이기에 쏟아내는 것인지 집에서 다 쏟아냈기 때문에 직장에서는 성질 조절하기가 괜찮은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것을 지적이라고 한다면 꽤 오랜만의 지적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시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에 (그런 것은 책임감과도 무관했다) 나는 남편에게 잔소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며  배운 것은 배우자와 일거리를 나누기도 하고 서로의 할 일을 조율하는 것도 원활한 의사소통 중 하나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다른 이와의, 특히 배우자와의 소통에 있어서 서툴렀던 사람이었다. 자연히 그런 성격이 서로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래전 남편은 지인과의 대화에서 'ㅇㅇ엄마는 불만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나는 그제야 뭔가 잘 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혼 생활 내내 불평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그의 아내를 두고 그는 그저 '불만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 전 내가 한 일 중 하나는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산 것이었다. 하나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였고 또 다른 하나는 '소리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아이를 변화시키는 훈육법'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아이를 잘 키워보겠다고 산 책이었는데 사실 그 책을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적용시켰으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가 원활하게 소통하고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목소리 높이지 않고 대화가 오간다면 굳이 아이에게 가르치는 과정이 필요 없이 아이는 자연스럽게 배울 텐데 말이다.




 남편은 자신의 기분이 최대한 상하지 않도록 내가 돌려서 말하기를 원한 것일까. 어머니의 또 다른 독특한 말씀 스타일에  나는 고개를 갸웃한다. 




 어머니 댁에 갔을 때 거실에 벌레가 들어와 기어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휴지를 달라고 하셨다. 나는 티슈 세장을 뽑아 어머니께 건넸다. 그 세장이 많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기어가는 벌레를 발견했다면 나는 어차피 휴지를 사용하기 전 에프킬라를 가져와서 그 녀석이 죽을 때까지 뿌려댈 것이었다. 



  어머니는 티슈 세장 중 두장을 다시 나에게 돌려주며 말씀하셨다. 


"이런 거 보면 김종국이가 난리가 난데이!"


설마 웃기려는 말씀인 건지 타박인 건지 나는 속으로 '노잼 노잼'이라고 외쳤다. 김종국이 난리가 난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에는 주방에서 조리를 하다가 바닥에 음식물을 떨어뜨렸다. 나는 눈에 바로 보이는 키친타월을 뜯어 바닥을 닦았다. 약간 넓은 사이즈의 키친타월 두 장이었다. 어머니는 또 소리치셨다. 


"이런 거 이렇게 쓰는 거 보면 김종국이가 난리가 난데이!"


  


 며느리에게 좀 더 상냥한 시어머니 역할을 해보고자 연구하신 어머니의 멘트에 나는 좀 지루함을 느꼈다. 사소한 잔소리릉 위해 검소하기로 소문난 연예인을 갖다 댄다면 이 시점에서는 차라리 전원주가 난리가 난다고 하셨으면 더 어울렸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는 김종국이가 더 좋았나 보다. 알뜰하기로 유명한 연예인이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속으로 생각하며 나는 어머니께 대꾸했다. 



"김중국이가 저랑 뭔 상관이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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