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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Oct 01. 2022

빛나는 청포도

사촌 시누가 새로운 농사를 시작했다. 10년 넘게 지속한 사업은 곶감 농사였다. 그동안 어디 선물 보낼 곳 있으면 그녀를 통해 곶감을 사서 보내곤 했다. 그때마다 그녀는 최고급 곶감으로 잘 골라서 택배를 보내주었다. 가장 믿음직한 거래처였다. 그런 그녀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단다. 요즘 마트에 가면 손대기가 겁이 나도록 값이 매겨진 샤인 머스캣이 그녀가 노리는 새 아이템이다. 곶감으로도 꽤 재미를 보았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그칠 질 모르는 도전정신은 가히 본받을 만하다. 평생을 알바 아니면 조그만 직장을 전전하며 쥐꼬리 같은 월급을 받던 나와 비교하면 그녀는 큰손처럼 보였다.


한참 곶감 말리는 시기에 농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널찍한 공장처럼 만들어진 곶감 농장에 곶감들이 붉은 꽃처럼 허공을 가득히 장식했다. 저 많은 감들을 언제 다 꽂았냐고 물으니 외국인 노동자를 시켜서 같이 한다고 했다. 일 잘하는 조선족 부부를 고용해서 잠잘 곳을 마련해 주고 일을 시켰더니 밤낮 가리지 않고 곶감을 꽂고 일을 금세 마무리하더란다. 우리는 마치 과자집을 만난 헨젤과 그레텔처럼 반건시를 신나게 빼먹었다.



그녀의 탁월한 능력이 발한 것은 아버님의 장례를 치를 때였다. 장례식장에서의 첫날, 도우미분들이 모두 퇴근한 후 우리는 고기가 적게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벽쯤에 아주버님이 다니시는 직장의 동료분들이 야간 업무를 마치고 버스를 대절하여 조문을 올 계획이었다. 낭패였다. 그 시간에는 장례식장 식당도 영업을 끝낸 때였다.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조문 온 그 시누는 사정을 듣고는 휴대폰을 꺼내어 휙휙 전화번호부를 넘기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줌마 난데요. 장례식장인데 고기가 부족하네. 돼지고기 좀 삶아줄 수 있어요?"


그녀의 경상도 억양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 들렸다.


장사를 마무리하는 때에 고기를 삶아달라는 부탁을 선뜻 들어줄 식당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다른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고기가 없다네."


모두 그 시누 주변에 둘러서서 일이 어떻게 돼가나 조마조마한 눈동자로 그녀를 주시했다. 이쪽에서는 사람이 죽었는데 산 사람들 먹을 거 부족하다고 걱정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다시 다이얼을 돌린 지 수차례. 한 식당에서 고기를 삶아 준다고 했다. 다행히 그 식당은 고기가 여유롭게 준비되어 있었나 보다.


"해준대. 해준대."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는 여기가 아버님의 장례가 치러지는 장소임을 잠시 잊은 채 얼굴에는 뭔가 해냈다는 미소를 지으며 '와! 능력자!'라며 탄식했다.



 녀가 이제는 샤인 머스캣을 한단다. 몇 해 전부터 지자체에서 제공해 주는 샤인 머스캣 농사법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땅도 1000평 가까이 사놨단다. 그녀가 올해 첫 수확한 샤인 머스캣이 도착했다. 알이 많이 굵진 않았다. 첫 시도하는 농작물이라 판매 목적보다는 어느 정도 나왔나 보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이 샤인 머스캣이 그 나무에 처음 열린 열매라는 것이 신기해서 보고 또 보았다. 귀한 것을 선물 받았다는 느낌은 이 영롱한 초록빛 열매 앞에서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남편과 아들은 원래 청포도 종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이나 보려고 몇 알 떼어먹은 한 송이와 남은 것 몇 송이는 내 차지가 되었다. 샤인 머스캣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빛나는 청포도'이다. 그녀의 열정이 담긴 새 사업이 빛이 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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