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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Sep 17. 2022

망할 놈의 건망증

 도로 연수를 위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곧 차를 가지고 자유롭게 도로를 질주하겠다는 나의 의지와는 무색하게 학원 등록을 한 후 갑자기 많아진 회사 업무와 아이들 방학으로 인해  예약된 수업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주말을 이용해 남편이 학원에 데려다줄 테니 가서 등록을 하잖다. 학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주말에도 수업 및 시험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 쉬는 날인가 보다 생각했다.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평일 오전에 학원에 갔다. 학원  셔틀버스를 타려면 승차 시간 한 시간  전에 기사님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만약 셔틀버스를 탈 수강생이 없다면 굳이 빈 버스가 노선을 도는 일도 없다. 오랜만에 기사님에게 전화를 하는 거라 기사님 휴대전화 번호를 찾아야 했다. 운전학원의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원래는 우리 아파트 바로 앞에는 셔틀버스가 서지 않는데 언제 바뀌었는지 우리 아파트 앞에도 버스가 서는 것으로 노선이 바뀌어 있었다.


"와. 지난번 기사님에게 우리 집 앞에 내려 달라고 해서 그런가 여기에서도 태워 주시네!"


나는 학원의 투철한 서비스 정신에 감탄하며 기사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기사님과 통화를 하고 편하게 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요즘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금방 끝날 거예요. 수업  잡고 바로 버스 타세요"


학원에 도착할  즈음 버스는 원래 가던 길과는 다르게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내가 좀 길치라서 기억이 안 나나보다 생각하던 차에 버스는 학원에 도착했다. 한 달새에 학원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건물 모양도 달라졌고 장내기능 코스도 조금 달라 보였다.


'뭐야? 리모델링을 하는 건가? 그러면서 홈페이지에 공지도 없네'


나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건물로 들어갔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미리  학원 카드를 꺼내려고 지갑을 살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달 만에 지갑에서 얼굴을 내민 내 학원 카드는 나를 당황시키다 못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카드에는 길 건너편에 위치한 운전 학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정자로 반듯하게 박여있었다. 등록하지도 않은 학원의 셔틀버스를 타고 엉뚱한 학원에 와서 차례를 기다리던 나는 카드를 멍하게 바라보며 그 자리에 잠시 서있었다. 정신을 차리고는 도둑고양이처럼 슬금슬금 나와서 전에 등록한 학원으로 쏜살같이 향했다,  


그곳에는 눈에 익숙한 학원이 여전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기 전 카드를 꺼냈으니 망정이지 상담직원  앞에서 카드를 꺼내 들어 내밀었으면 어쩔뻔했나 아찔하다.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을 것이다. 등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에 타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아까 타고 온 셔틀버스의 운전기사님이었다. 수업 등록을 마치고 버스를 타야 할 사람이 안 오니 확인차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었다. 수신 거부를 하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왜 하필 그 엉뚱한 학원을 떠올렸나 생각했다. 항상 마트를 갈 때나 동네를 돌아다닐 때 그 학원의 셔틀버스가 눈에 띄었다. 그냥  그 셔틀버스가 지나갈 때 마침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운전학원을 가야 한다면 저곳도 한번 알아봐야겠다 하면서 셔틀버스를 빤히 쳐다보곤 했다. 결국은 다른 학원을 등록하여 이 사달이 나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동안 머릿속에 자리 잡은 그 학원의 이름은 마치 내가 등록을 한 학원으로 착각까지 하게 했다. 이 정도면  우연이든 아니든 셔틀버스 광고의 효과는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겠다.

 

 도로 연수를 받는 날이 되었다. 나는 셔틀버스의 두 정류장 사이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나와 한쪽 정류장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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