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연말에 있는 그날은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예수를 믿든 안 믿든, 심지어는 평소 기독교인들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욕하던 사람들도 그날을 파티의 날, 케이크를 먹는 날로 여긴다. 누가 뭐래도 크리스마스는 단연코 종교에 상관없이 전 세계인이 기뻐하는 축제의 날이다.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본 적이 있다.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기도를 드리고 때로는 교회에서 하는 숙박캠프의 일종인 여름성경학교에 참여하며 추억을 쌓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 몸이 좀 안 좋거나 마음에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기도를 드리면 정말로 아픈 몸도 회복되고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였다. 흔한 말로는 기분 탓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인한 일상의 작은 변화였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기분 탓이나 플라시보 효과라고 치부하는 것은 내가 성격 유형검사 중 유행하는 MBTI의 T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가진 T의 특징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욱 선명해졌다. 20대 중반에 만났던 남자친구와는 성격이 맞지 않아 자주 다퉜다. 그 사람은 나와 달리 F 성향이 강한 쪽이 아니었나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 사람은 기독교인을 싫어했다. 농촌에서 지내는 그의 집은 산신을 믿는다고 했다. 하나님 부처님도 아니고 산신이라니? 나는 의아했지만 그 지역의 특색일 수도 있고 그 집안의 내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연말이 다가오고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나는 크리스마스니 캐럴이니 하는 것들은 모르겠고 오늘이 대목이라 바쁘실 부모님 걱정만 떠올랐다. 얼른 가서 부모님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직장 끝나고 잠깐 얼굴만 보자는 그의 말에 정말 얼굴만 잠깐 보고 집에 가려고 했다. 좋았던 분위기도 잠시, 둘의 사소한 말다툼이 시작됐다. 나는 성질을 부리며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가 더 다툼이 격해져서 헤어지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 사람이 울먹이며 외쳤다.
"오늘 크리스마스야!"
이 한마디에 나는 참을 수 없이 더더욱 격분을 했다. 젊은 시절이라 그랬는지 에너지가 넘치는 건지 화도 불같이 냈던 것 같다.
'염병! 산신이지 밭신인지 믿는다는 게 크리스마스는 무슨 얼어 죽을 놈의 크리스마스!!!'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화가 난 이유는 그의 예수에 대한 모독이나 생각의 짧음 뭐 그런 멋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수를 믿지도 않으면서 예수 태어난 날을 네가 왜, 뭣하러 챙기냐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도 짝을 잘못 만난 것은 분명했다. 보통의 여자 같으면 크리스마스에 근사한 레스토랑 예약은 기본에다가 맛있는 와인에 케이크까지 준비해야 정상인 상황이라고 할 텐데, 이 여자는 크리스마스에 집에 일찍 가겠다고 하고 이벤트 같은 건 아예 기대도 안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네가 언제부터 예수쟁이였어?"
예수쟁이는 그가 평소 사용했던 단어였다. 이런 말을 상대에게 내던지고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극 T 여성의 크리스마스는 안 챙기느니만 못했다.
훗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는 바쁜 날이 되었다.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트리를 장식하고 뽀로로와 친구들이 올려져 있는 케이크를 준비하고 산타 할아버지가 놓고 갔다는 선물을 숨기는 것. T의 크리스마스는 이유가 명확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는 커서 각자 놀러 나가고 남편도 운동을 한다며 나가고 혼자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사는 것은 짐이 된다며 우리 부부에게는 벌써 오래전부터 규칙처럼 금지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대해 조금은 더 감상적인 남편이 케이크 사 와야 하나? 묻는다. 그 물음에 나는 됐어! 먹을 사람도 없는데! 대답했다. 쉬는 날이니 맛있는 소고기나 구워 먹기로 한다.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공휴일이다. 나이를 먹으니 그저 쉬는 날이라서 좋다. 예쁜 크리스마스트리는 언젠가 나의 T가 말랑말랑해질 때쯤 다시 도전해 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