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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교실의 풍경

by 이지수

내가 특별히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사람이 아닌데도 40세가 넘어가면서 특정 목적을 가진 모임에 가면 나는 항상 가장 연장자에 속한다.


어느 주민회관의 시 쓰기 교실에서 젊은이 소리를 듣던 때는 불과 8개월 전이었다. 그 시 쓰기 교실이 어쩌다가 어르신들의 모임처럼 되었는지 아니면 수업 시간이 오전이라 직장은 이제 그만 다니는 어르신들로 구성이 되었는지 어르신이 대다수여서 젊은 사람들은 들어왔다가도 다시 나가는지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나는 우리나라 나이 49세의 나이로 젊은이 소리에 예쁘다는 말까지 들으며 시 쓰기 강좌를 다녔다. 수업 중에 다른 수강생들이 자신만의 노트에 명필에 가까운 글씨체로 수업 내용을 받아 적을 때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터치펜으로 톡톡 거리면서 내용을 입력했다.



그때 내 옆자리에 앉은 짝꿍(그분은 내 아들 또래의 손주가 있다고 하셨다)이 내가 스마트폰에 뭔가 열심히 입력하는 모습을 보고 젊은 사람은 다르다고 했다. 그런 칭찬에 나는 진짜 젊은이라도 된 것처럼 우쭐하며 그냥 씩 웃었다.



얼마 전 다녔던 글쓰기 교실에서는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강의실은 강남의 어느 번화가에 있었다. 수강생은 8명 정도 되었는데 그중에 40대로 보이는 사람은 나와 어느 중년여성 둘 뿐이었다. 나는 올해 50세가 되었지만 나이를 말할 때 괜히 만 나이를 말하고 싶어진다. 만으로는 여전히 48세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녀와 내가 그 반의 연장자로 보였다. 정확히는 그녀가 나보다는 두세 살 어려 보였으므로 이반의 진짜 어르신은 나인 것 같았다. 나머지 수강생은 2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했다. 게 중에 나이에 비해 더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나에게 조카뻘은 돼 보였다.



이곳에서도 실습시간이 되면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터치펜으로 화면을 톡톡 거리며 글을 입력했다. 젊은 수강생들은 모두 노트북을 준비했다. 수업 준비물이 꼭 노트북이었던 것처럼 모두 아니 젊은 수강생들은 출석을 하면 노트북을 먼저 켜고 글쓰기 실습 시간이 되면 두 손으로 자판을 톡톡 거리며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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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나와 그 중년 여성 둘 뿐이었다. 그녀와 내 자리에는 노트북대신 다이어리와 필기도구가 담긴 필통이 있었다. 나 혼자만 공책에 글자를 쓰는 거였으면 정말 튀는 늙은이로 보였을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저 여성 수강생도 노트북을 준비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고맙기까지 했다. 나는 글쓰기 실습 때 글을 입력하다가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지우고 쓰는 것이 귀찮아 스마트폰에 입력을 했는데 그 수강생은 노트에 차분하게 글을 썼다.



이 교실에서 늙은이와 젊은이를 가르는 것은 노트북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나는 텀블러에 담긴 무언가를 마시는 반면 젊은이들은 강의실 근처 커피숍에서 사 온 프랜차이즈 커피, 특별히 아아라고 불리는 그것에 얼음을 가득 채워 노트북옆에 두었다.


젊은이들이 두 손으로 입력할 때 나는 한 손으로 글자를 입력해야 하니 내 글이 더 더디게 써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를 쓰기 전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찔끔 몇 문장이 나오는 나와는 달리 그 중년의 여성 수강생은 실습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열심히 펜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발표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요구한 형식에 맞춰 각자 쓴 글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노트북에 두 손으로 열심히 톡톡 거리며 쓴 글, 한 손으로 스마트폰에 입력한 글, 노트에 볼펜으로 쓴 글. 길이와 결과물의 완성도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도 노트북을 준비해서 좀 있어 보이게 앉아있을까 하던 생각은 그냥 접기로 한다. 그러다가 좀 더 신문물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려면 아들 녀석의 최신 노트북을 폼나게 들고 다녀야 하나 다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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