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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Dec 17. 2023

귀찮고도 아쉬워진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28


 학창 시절 월마다 다가오는 그날이 되면 나는 심한 월경통에 시달려야 했다. 집에서 시작되면 다행이지만 그 무자비한 녀석은 늘 학교에서 터졌다. 집에서도 낮동안에 시작되는 적은 거의 없고 꼭 한 밤중에 갑자기 나타나기 일쑤였다. 일단 통증이 시작되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허리부터 하체까지 이어지는 극심한 통증에 의자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같은 여자라도 심한 월경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꾀병이라고 여길만한 것이었지만 별로 흰 피부가 아닌 내가 그때만은 핏기가 사라진채 창백한 얼굴로 죽을 상을 하고 있어서 불행 중 다행으로 그러한 오해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덩치나 골격이나 나와는 전혀 다른 엄마도 그런 나를 신기하게 여겼다. 엄마는 자신도 경험하지 못한 그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아무런 대비 없이 학교에 갔을 때 일이 터지면 나는 습관처럼 양호실 신세를 졌다. 자연스레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담임 선생님한테도 굳이 알릴 필요 없는 나의 사적인 정보가 노출되었다. 부모님은 잡다한 온갖 민간요법을 알아보며 딸의 고생을 덜어주려 애썼다. 별애별 나무의 뿌리를 달여 먹으면 좋다고 하는 돌팔이 한약사의 말을 듣고 그것의 부작용이 어떤지도 모른 채 나는 희한한 것을 맛보아야만 했다. 접시꽃 뿌리를 달였다는 시커먼 물은 요즘말로 극혐이었다. 부모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무래도 엄마 아빠는 월경통에는 무조건 한약이 좋은 것으로 믿으셨는지 내 얼굴은 이미 노려 저서 방바닥을 뒹굴고 있는 동안 엄마가 약국에서 급히 사온 약도 한약 냄새가 진동하는 가루약이었다. 1회 용량이 한 주먹 가득한 그 가루약을 먹다가 또다시 유난스럽게 구토를 하고 유별나게 그날을 보냈다. 



 언니에게 절대 꿀리지 않는 대접을 받던 동생은 언니의 유별한 그날에도 샘을 냈다. 엄마가 지어온 '생리통에 좋은' 한약을 자기도 먹겠다고 했다. 아직 동생의 초경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용돈도 똑같이, 원피스도 똑같이, 학원도 똑같이 보내며 무엇이든 똑같이 맞춤으로 하던 엄마가 이번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미친년 별 지랄을 다하고 앉았다. 그걸 네가 왜 처먹어!"

 나는 동생의 행동이 문화적 전유처럼 느껴져서 괘씸했다. 동생은 아마 자기도 월경통에 조금 시달려서 엄마아빠의 더 세심한 보살핌을 노려봄직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애에게 그날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날이었다. 여자들 그날에는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 애는 항상 지랄이었다. 



 여학생에게 '그날'은 야자를 땡땡이칠 수 있는 좋은 도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날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 달에 두 번씩 그날이라고 우겨도 특히 남자 선생님 같은 경우는 눈치를 못 채거나 총각 선생님들은 민망한 나머지 고개를 끄떡이며 땡땡이를 용인해 주곤 했다. 학생의 인권이 향상된 요즘처럼 여학생들에게 생리 결석이라는 제도가 그때도 있었더라면 오히려 그날을 무기 삼아 남용하는 일은 더 없었을 것이다. 여학생들이 그날의 혜택을 남발하던 때 다른 반에서 민망한 소동이 일었다. 하도 그날이라며 야자 시간 전에 집에 보내달라는 애들이 많아지자 그 반 담임인 대머리 모 선생은 반장을 불러내 충격적인 지시를 했다. 

"애들 생리 날짜랑 생리 주기 다 적어서 내라고 해!"

 이 소식은 다른 반에 다 전해졌고 '악! 변태! 대머리 변태!'라며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실제로 그 반 여학생들의 그날을 취합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다른 애들이 그날을 핑계로 야자 땡땡이를 치는 동안 나는 굳이 그날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땡땡이를 치고 싶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의 상태를 눈치챈 친구가 약을 한알 주었다. 그 약을 먹고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마법사가 내 머리에 요술봉을 뿅 하고 내리친 것처럼 방금 전까지 있었던 통증은 싹 사라졌다. 

'게보린 한 알이면 되는 걸 엄마아빠가 무슨 생고생을 그렇게 하신 거야.....' 

그때부터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하는 내내 내 가방에는 게보린이나 펜잘이 항상 대비하고 있었다. 



 고교 졸업 후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나는 월경통의 원인을 알아보며 그것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다. 여러 다양한 원인 중에 골반의 모양이 삐뚤어져 있는 경우 안 그런 사람보다 월경통을 더 유발한다는 어느 연구 결과를 보았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단 한 가지, 출산 시 자연분만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 분만을 하는 과정에서 삐뚤어진 골반이 예쁘게 교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때 자연분만을 하면 되겠구나, 야무진 마음을 먹었지만 정작 임신 과정에서 아이가 거꾸로 있다며 의사는 제왕절개를 권했고 진짜로 비뚤어진 건지 아닌 건지 확인해 보지 못한 채 내 골반은 본래의 모양을 유지한 채 출산 후에도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친정에 갔을 때 요즘 생리대 얘기가 나왔다. 

"요즘 생리대가 얼마나 좋게 나오나 몰라. 팬티처럼 생긴 게 있어서 전혀 샐 걱정 안 하고 그날 보내잖아. 세월이 그렇게 좋아졌다니까."

내 딸한테는 몸에 좋고 환경 호르몬에 노출될 위험이 없는 좋은 것으로 사주겠다는 나의 수다에 엄마는 옛 추억이 떠오른 듯했다.

"근데 너 혹시 아직도 그렇게 생리통 하냐?" 



 딸아이는 월경통이 없다고 했다. 그날이 되면 아이는 조금 시큰둥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고 하고 내가 딸아이 나이에 겪었던 월경통 이야기는 순전히 저세상 것이 돼버렸다. 괜히 접시꽃 달인 물이라든지 쓰디쓴 한주먹의 가루약도 필요 없이 해열 진통제 한알 잘 챙겨줘야지 하는 내 다짐도 필요 없게 되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더니 미안한 기색을 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엄마 이불에 생리가 좀 묻었어. 빨아야 할 것 같아."

"그래, 알았어." 

내가 딸아이 나이였을 때 흔히 있는 일이었다. 세탁기에 이불을 밀어 넣고 있는데 딸아이가 뒤에서 말했다. 

"엄마 미안해."

나는 뒤돌아 보았다. 

"뭐가?"

"내가 조심하지 못해서 이불에 묻혔잖아."

"아니 뭘. 이불 자주 빨면 깨끗하고 좋지 뭐. 괜찮아."

"그래도 엄마 힘들게 일부러 빨아야 하잖아. 다음부터는 더 조심할게."



 엄마도 나의 그날만 되면 나 때문에 이불을 빨았다. 나는 전혀 미안해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딸이 겪는 그날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동분서주하던 엄마는 그저 아직도 당신의 딸이 그렇게 성가신 그날을 보내고 있나 걱정스러워했다. 30년도 훨씬 지난 일을,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언제 해야 할까. 딸아이를 통해 왜 이렇게 늦게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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