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수 Jan 18. 2024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당신_1

 얼마 전 시댁에 갔을 때 시누네 가족 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시어머니와 시누, 동서 형님이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가고 나머지 식구들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시누의 딸은 우리 가족이 잠들어 있는 방 한 구석에 기대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좀 거친 10대 아이들이 그렇듯 아이는 게임을 시작하더니 계속 '존나, 아이 씨'을 연발하며 그것에 과몰입 중이었다. 아이의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은 못 마땅하여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혼냈다. 아이는 외삼촌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했다. 잠시 후 외출을 했던 세 사람이 돌아오고 온 집안이 제대로 시끄러워지고 말았다.



 남편은 조카의 행동에 대해 고자질을 하겠다는 듯 뭔 여자애가 게임을 하면서 욕을 그렇게 해대냐고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조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시누는 게임을 하면 애가 이상해 진다면서 오빠와 한 팀이 되어 아이를 더 혼내기 시작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당연히 잘못한 점에 대해 훈육하고 고치도록 하는 것이 맞지만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아이를 공격하듯 몰아치는 것이 곁에서 지켜보기에 불편했다. 아이를 두둔할 상황이 아니라면 시누는 엄마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가 공개적으로 혼나는 일이 일아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아이도 만만치 않았다. 자기가 욕을 언제 했냐고 목소리를 한껏 높여 외삼촌에게 따져 물었다. 아이가 게임을 하면 무심코 내뱉었던 말은 아이 입장에서는 욕이 아니었을 수 있겠다 싶었다.



 상황을 모르는 동서 형님은 진짜로 oo 이가 게임하면서 욕을 해댔냐고 나에게 물어보고 나는 "뭐...... 그냥, 존나......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형님은 아..... 하며 이거 애매한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시누는 지신의 아이보다 오빠를 더 신뢰하는 것처럼 아이의 변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아이를 혼냈고 끝내 아이는 억울하다며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집은 순식간에 아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시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방을 나갔다.



  아이가 변한 것은 중학교 2학년쯤인 것으로 기억한다. 남편은 조카가 엇나가게 된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조금은 창피하다고 느껴서인지 나에게는 그런 사실에 대해 한 동안 철저하게 숨기려고 했다. 아이의 비행이 시작되면서 시누는 울면서 친정에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어쩌다가 애가 그렇게 괴물이 되었냐며 한탄했다. 괴물이라는 말은 꽤 순화된 편이다. x망난이 수준이었다. 아이의 비행은 상상이상이었다. 어른과 싸운다는 표현도 맞나 싶을 때가 있었는데 내가 전해 들은 아이의 행동은 폐륜에 가까웠다. 입에 담기 끔찍하니 자세한 서술은 안 하고 싶다. 저 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엄마를 아랫사람처럼 막대했다. 물론 아랫사람에게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아이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될 무렵 식구들은 오은영 박사가 진행하는 그 유명한 프로그램에 신청을 해보라고 했다. 가족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냐는 쪽과 온 세상에 망신을 당할 일 있냐는 팀으로 나뉘었다. 며느리인 내 입장에서는 아이에 대해 묻기는커녕 아는 척을 하는 것조차 민망하고 미안했다.  


 

 나는 시누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다. 그녀를 보면서 독특하다고 느낀 점은 여자치고 감정을 다루는 데 있어서 굉장히 무디다는 것이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감정적, 소통적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해결하거나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부족한 사람으로 보였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 어머님, 아버님은 자주 다투는 노부부에 속했다. 내가 시집을 가고 그 집에 적응을 해갈 무렵 어머니는 본색(?)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한없이 잘 대해주시려고 노력하시는 데 비해 하나뿐인 영감에게만은 야박하기가 그지없는, 허구한 날 바가지를 긁어대는 할머니였다. 다른 집 영감들은~ 으로 시작해서 비교하기는 기본이었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툭하면 이 집안 가장 어르신인 아버님을 하대하듯 타박하기 일쑤였다. 



 한 번은 가족들이 시내에 마트를 갈 일이 있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외출하셨던 아버님도 집에 돌아오셔서 계신 상태였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어머님은 갑자기 성을 내셨다.

"아니! 다른 집 영감들은 청소도 하고 집도 좀 치우고 하는데 생전 청소를 한번 안 해요!" 

말 그대로 급발진이었다. 가족들이 외출을 하는 동안 아버님이 청소를 하기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아버님도 방금 집에 돌아오신 것처럼 벗어놓은 외투를 옷걸이에 거시려는 듯 손에 옷을 들고 계셨다. 아버님도 화가 나셔서 뭐라고 버럭 하셨고 두 노부부는 젊은 자식 내외가 다 모인 자리에서 목소리 높여 말다툼을 했다. 두 분이 눈앞에서 다투시는 동안 나는 고개를 돌려 그 집 자식들이 들어가 앉아 있는 방 쪽을 보았다. 시누가 앉아 있는 방 문은 열려 있었고 그녀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속으로 '느그 부모님 싸우시는데 뭐하노?' 소리가 목구멍에서만 울렸다. 



 나는 두 분이 다투는 모습을 보면서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 집 자녀들의 행동에도 다소 충격을 받았다. 노년기를 보내는 두 어르신의 싸우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들이 귀엽게 티격태격하는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누구도 두 분의 다툼을 말리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친정이 넉넉지 못한 형편 속에서도 한 가지 다행이라고 느낀 점은 엄마 아빠 사이가 좋다는 점이었다. 자식과 감정을 나누는 데는 서툰 면이 있었다고 느꼈지만 최소한 두 분이 다투는 일은 어쩌다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만약 두 분이 다투시고 기분이 상해서 계실 때에는 두 분의 기분을 풀어드리려 이쪽저쪽 중재를 하기 바빴다. 자주 싸우시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상대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는 태도였다. 



 

 남편이 성질이 욱하는 면이 있는 반면 천성이 착한 남자라서(18년 같이 살아온 내 판단으로) 내 결혼 생활도 다행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만약 시부모님의 자주 다투시는 평소 모습을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남편과의 결혼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 판단으로) 시부모님은 노부부임에도 애정이 1도 없이 사는 부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시어머니는 아버님에 대한 불평불만이 끝이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불평은 '다른 집 영감들은~'이라면서 비교로 시작되었고 아버님도 큰 소리로 맞짱을 뜨시다가 나중에는 어머니와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휑 나가셨다. 어머니는 아버님께 실컷 불만을 털어놓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그다음 일상을 이어나갔다. 


 아버님의 화는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았겠지만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고 그 어떤 화해나 사과 따위는 없이 평온을 가장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어쩌다가 형님이 어머니께 조용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나는 평생 희생만 하고 살았다'였다. 그것이 인과관계가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머니는 50년을 넘게 산 아버님이 경상도 남자라서 그저 무뚝뚝하고 표현을 안 하는 것으로 치부했을까? 어머니 혼자 '우리 부부는 전혀 문제없는 평범한 부부'라고 단단히 믿고 사셨던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아버님은 전혀 경상도 남자의 특징을 가진 분이 아니었다. 웃는 인상을 가진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파악하는 감성 풍만한 분이셨다. 신혼 여행지에서 저녁때가 되면 양가 어른께 전화를 드려 오늘은 어디를 놀러 갔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댔었다. 여행 세 번째 날, 전화를 드리자 아버님이 기쁜 소식이 있다면서 소가 쌍둥이를 낳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좋은 사람이 들어와서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다!"였다. 그 송아지 쌍둥이는 내가 시집 오기 몇 달 전부터 이미 어미의 뱃속에 자리 잡고 있던 것들이었다.  



 본의 아니게 시댁 가족들 얘기가 차례로 나오는데 이번에는 나의 손위 동서 이야기다. 동서 형님은  처음 보는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남편과 결혼 전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질 때 '또 봐요!'라는 말이 참 다정스러웠다. 결혼식 날에도 내가 있는 신부 대기실에 와서 두 동서지간의  다정한 한 컷을 완성시키는 센스 있는 여자였다. 나는 동서 형님이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언니가 되었으면 하고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결혼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 집안에 시집가기 전 오랜 기간 동안 시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한 형님으로서는 그 사랑을 쪼개야 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첫 명절이 되어서야 말로만 듣던 텃새라는 것을 내 인생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것은 실로 매운맛이었다. 나의 서툰 부엌일이 못마땅했던 형님은 마치 일진이 조무래기에게 시비는 거는 조로 사소한 것 하나에도 타박을 서슴지 않았다. 새댁인 내가 한참 형님인 그녀를 맘먹을 일도 없는데 말이다. 손 윗 동서가 그토록 나를 경계하고 기강을 잡으려는 모습에 '시어머니는 정말로 며느리에게 잘하는 좋으신 분인가 보다' 나는 생각했다. 두 며느리의 전투태세로 잔뜩 긴장한 모습은 아버님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부엌에서 혼자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내게 다가오셨다. 새로 사람이 들어와서 큰애가 잔뜩 긴장을 한 것 같다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위로를 해주셨다. 아버님을 이 집안에서 가장 감성이 풍부한 분으로 순위를 매기고 싶다. 

  

 

  아버님이 생전에 어머니께 마지막으로 들은 말은 안타깝지만 '타박'이었다. 아버님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오토바이를 타고 마실을 가려고 하셨다. 어머니는 여느 때처럼 외출하시는 아버님의 뒷모습에 대고 잔소리를 해댔다고 하셨다. 평온하던 일상은 느닷없는 교통사고로 멈춰버렸다. 사고 현장에서 의식을 잃으신 아버님은 어떠한 유언도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일주일 만에 그렇게 떠나셨다.  



 임종을 지키던 가족들은 이제 곧 세상을 떠나실 아버님께 한 마디씩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어머니 차례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 고생 많았어요. 조심해서 가세요."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는 괴성을 지를 뻔했다.

어머니는 아버님께 "다음 세상에 또 만나요."라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 생에 아버님을 또 만나시겠다고요? 어이쿠 가시던 아버님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겠네!'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짝퉁 진돗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