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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Feb 04. 2024

다 보인다 다 보여!

 눈동자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있다가 읽기를 시키면 마침내 고개를 화면 쪽으로 돌려 패드에 표시되고 있는 문장을 읽는다. 이번에 읽을 부분이 어디인지  놓치고 잠시 헤매더니 조금 전 읽은 부분을 반복하여 읽기도 한다. 나는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고 '여기! 여기!' 하며 펜으로 문장의 앞부분에 밑줄을 죽 긋는다. 아이는 아하! 하며 경쾌한 소리로 응답을 하고 읽어야 할 부분을 읽는다. 그것이 요즘 아이들이 하는 겸연쩍다의 표현인가 보다. 그 모습은 마치 '난 딴짓을 하면서도 할 건 한다고요!'라며 자만을 떠는 모습 같았다. 아마도 게임이든 뭐든 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한참 진행이 되었겠지만 끝내지 못하고 화상 수업에 들어온 모양이다. 그 딴짓은 나와의 짧은 시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일대일로 마주 보고 있으니 얼굴 표정까지도 바로 보이는데 앞쪽이면서 그것도 살짝 위쪽인 교탁 같은 시선에서는 작은 움직임도 더 잘 보였겠구나 생각했다.





 내가 그 괴짜 같은 친구와 어울린 지 일 년이 채 안된 때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한 반이 된 C와 나는 하교 후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날씨가 막 춥기 전이고 약간은 쌀쌀해서 따끈한 국물이 당긴다고 생각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정류장 쪽으로 난 큰길을 건너기 전 이전에는 못 보던 푸드트럭이 눈에 띄었다. 트럭에서는 떡볶이와 순대 어묵꼬치를 팔고 있었고 김이 모락모락 났다. 독특하게 보인 것은 사장님으로 보이는 40대 중후반쯤의 여자분이 손님을 기다리며 소설책을 읽는 모습이었다. 책의 사이즈와 두께로는 분명 소설책 같았는데 재미있는 소설인지 고개를 들어 손님이 오나 안 오나 간간이 확인을 해볼 만도 한데 그녀의 시선은 책에 꽂혀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학생들이 어느새 우르르 몰려와서 음식을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푸드트럭 사장은 반쯤 읽어가던 소설책을 그대로 펼쳐 표지가 위를 향하도록 놓아두고 비닐커버가 덮인 접시에 떡볶이를 담기 시작했다. 한가롭게 책을 들고 있던 사장님의 손이 바빠졌다.




 

 나와 C도 다른 여학생들 틈에 끼어 어묵꼬치를 꺼내 들고 먹었다. 종이컵에 국물을 떠서 후후 불며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아주머니가 무슨 책을 읽고 있었나 어묵을 오물거리며 나는 고개를 돌려 이쪽저쪽을 살피며 겉표지를 보려고 했다. 책의 겉표지가 양장이 아닌 것은 보였는데 아주머니의 운동화 뒤쪽에 위치해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생전 책이라고는 읽지 않으시는 나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이 장사꾼 같지 않은 장사꾼에 대해 추측을 해보았다. 이분은 떡볶이를 팔면서 왠지 어울리지 않게 소설책을 읽고 있다. 이 모습만 봐서는 이 분은 분명 전혀 다른 직종의 괜찮은 직업으로 일을 하다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못하게 되었고 생계를 위해 임시로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는 학식이 꽤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며 어묵 국물을 호로록거리면서 아주머니의 얼굴을 관찰했다. 그분의 인상은 온화했다. 푸드 트럭에 앉아서 일부러 교양 있는 장사꾼 콘셉트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 분은 왠지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는 분일 확률이 높았다. 손님들의 주문이 끝나고 모두 먹는데 집중해 있을 때 아주머니는 몸을 돌려 책을 집었다. 그리고는 잠시 멈췄던 부분부터 책 읽기를 다시 시작했다.




 우리는 어묵 꼬치만 3개씩 먹었다. 나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어깨에 메고 있던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만 걸치고 지퍼를 열려고 했다. C는 갑자기 내 교복 재킷을 잡더니 나를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주머니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위치쯤에 다다르자(그 위치쯤이라는 것은 트럭 바로 옆쪽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 야! 돈 안내?

- 저 아줌마 장사 진짜 못해. 너 봤냐?

나는 C의 얼굴을 쳐다봤다.

- 우리 말고 다른 애 또 돈 안 내고 튀는 거 못 봤어? 오뎅을 먹고 가는지 떡볶이를 먹고 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책이나 읽고 앉았고. 장사를 더럽게도 못해! 우리가 이렇게 그냥 가는 것도 모르잖아.

 C는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시도하려고 한 행위가 아님에도 C와 같이 서서 어묵을 먹은 나는 그녀와 함께 '우리'가 돼버렸다. 나는 C의 비딱한 윤리의식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은 없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돈을 내러 푸드트럭으로 다시 가기엔 너무 애매한 모양새였다.  



 다음 날에도 푸드트럭에는 여사장이 소설책을 읽고 있었다. C와 나는 또 어묵을 먹었다. 나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여 어묵을 먹으면서 교복 주머니에 있던 동전을 만지작 거렸다. C는 같은 행동을 시도했다. 책을 읽고 있는 사장님의 눈길을 살피더니 스파이처럼 몸을 낮춰 슬그머니 사라지려고 했다. 나는 굳이 이 친구의 비행을 떠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 몫의 어묵값만 테이블에 올려놓고 걸어 나왔다. 어제 돈을 안 내고 도망간 것이 들통이 날까 봐 솔직하게 사죄할 마음은 먹지 못한 채 방금 먹은 어묵값만 계산을 했다. C는 뭣하러 돈을 내냐고 나를 약지 못한 사람 취급을 했다. 나는 푸드트럭 사장이 책을 읽는 척하며 우리의 행동을 다 봤을 것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 그 길을 지나다니지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전날 우리가 슬그머니 쥐새끼처럼 도망 나올 때 사장님은 책을 읽고 있었다. 당연히 못 봤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다음 날에는 푸드트럭이 보이지 않았다. C의 행위는 물론 친구의 행위를 나 몰라라 하고 제 몫만 계산하는 두 여학생의 일탈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딴짓을 하는 아이를 타이르기가 성가시기도 하고 자칫 수업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나는 몇 차례 그 아이의 행동을 모른 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옆에 붙어 앉아서 가르치다가 등도 토닥이고 머리고 쓰다듬고 하면서 친밀감이 생기고, 타일렀다가도 다시 기분을 풀어주기가 용이한데 반해 나와 컴퓨터 속 회원은 앞으로 만날 일 없는 화면 속의 이미지들이었다. 자칫 아이에게 싫은 소리를 했다가 기분이 상해진 아이를 달래주는 것이 쉬은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음 날 혹은 며칠이 지나기 전 나는 다음과 같은 업무 메시지를 받을 게 뻔하다.

<OOO회원이 교사를 변경하였습니다>



 내 눈과 50센티정도 떨어진 화면이지만 그 아이는 저 멀리 사는 아이였다. 딴짓이 지속되던 어느 날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이크의 볼륨을 한껏 올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 딴짓하지 말고! 여기를 봐!

아이의 반응은 의외였다. 억양이 있는 투로,  

- 선생님! 저는 계속 보고 있었는데 왜 그러세요? 선생님 왜 거짓말하세요?

그러면서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을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소리치며 과장스러운 반응을 했다. 나보고 왜 거짓말을 하냐고 한다. 나는 순간 아이의 반응에 당황해서 내가 잘못 본 건가, 눈이 침침해서 정말 잘못 본 건가, 아니면 그 아이 학습 패드의 카메라의 위치 때문에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간 것처럼 보인 것인가 갸우뚱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다시 그 아이와의 시간이 되었을 때 읽었던 문장을 또 읽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아이와는 더 이상 언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내 눈은 멀쩡했다.




 나더러 왜 거짓말을 하냐던 아이는 대담함은 물론 그 대담함을 넘어서 버릇없기까지 했다. 바로 옆에서 수업을 했더라면 혼잣말로 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아이들과 나를 가로막고 있다고 여기던 모니터는 그런 종류의 아이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방탄유리가 되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그 푸드트럭을 떠올렸을 때 당시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앞쪽에서, 게다가 눈높이가 살짝만 높아도, 눈이 특별히 침침하지만 않다면 매의 눈이 된 것처럼 눈앞의 상황이 훤히 시야에 담긴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다 지켜보고 있었어. 모두 다. '



 그러다가 문득 그분이 읽고 있던 소설 속 장면이 궁금해졌다. 마침 읽고 계셨던 페이지에 비행 청소년들이 위아래 가리지 않고 버릇없이 구는 장면이 나왔을까. 그래서 저 또라이같은 여자애들을 잘못 건드렸다가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 그냥 참고 계셨던 걸까. 성깔이 있는 분이었으면 슬그머니 도망치는 여학생들을 향해 빽 소리를 지르고 멱살을 잡아 교무실까지 끌고 가도 남을 상황이었다. 그분은 그러지 않았다.



나는 글을 조금씩 쓰겠다고 맘을 먹은 이후로 전에는 잘 읽지 않았던 소설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그분도 혹시 글쓰기에 관심이 있어서 훗날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셨다거나 만에 하나 등단까지 하신 작가분이 아닐까 상상을 해본다. 그렇다면 푸드트럭을 운영할 당시 어묵을 먹고 튄 여학생들의 이야기가 그분의 글 어딘가에 담겨있을 수도 있겠다 또 상상을 해본다. 세상은 돌고 도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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