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수 Feb 20. 2024

교복 가게에서

 작은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아이는 운 좋게 가고 싶은 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운 좋게 신이 난 토끼가 된 아이로부터 기쁜 소식을 전해 듣는 첫 번째 가족이 되었다. "엄마! 나 OO여고 붙었어!"라며 들뜬 목소리로 외치는 아이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소위 8 학군이라고 하는 강남에서도 엄마들이 기피하는 고등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를 일부러 지망하는 학생수는 다른 학교보다 현저히 낮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강제배정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 학교에 배정된 아이의 친구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아이는 K여고 여학생이 될 예정이다. 교복 가게에 방문하여 아이의 치수를 확인하고 주문을 하는 기간이 이틀정도로 제한되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주말 아침 평소 같으면 한참 잘 아이를 깨워서 집을 나섰다. 오전이라 그런지 가게가 생각보다 북적이지는 않았다. 문 앞에 자그마한 책상을 두고 앉아 있는 어린 여자 직원은 손바닥만 한 종이를 내어주며 학생의 이름과 학부모의 전화번호, 진학 예정 학교를 적으라고 했다. 인터넷에서 미리 예약을 하면 더 빠르다고 했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교복 대금을 지원하여 지원 물품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카디건 비용만 5만 원가량을 계산했다.



 27년 전쯤 교복 가게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그때가 벌써 27년이나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때인지 쓰고 보니 까마득한 옛날일이 되었다. 바야흐로 20세기였다. 내가 일했던 한 교복 가게에 아르바이트생이 대여섯 명 정도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여학생들의 치수를 재는 것이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은 나 혼자였는데 사장이 일부러 그렇게 뽑은 것은 아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온 여자들은 일을 시작한 지 이틀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고 한다. 걸어서 5분 거리에는 공장이 있었다. 사장은 공장과 매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물 믿듯이 오는 중등, 고등 신입생들의 교복을 맞추기 위해 공장은 정신없이 돌아갔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공장에서 완성된 교복을 한 아름 안고 매장으로 옮기는 일을 겸했다. 공장은 시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차나 오토바이가 진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사장이 지시하면 아르바이트생들은 공장으로 가서 각자 들 수 있는 최대한의 교복을 품에 안고 매장으로 이동했다. 동복이라 몇 벌만 들어도 꽤 무거웠다. 나는 그 일이 할만했다. 할만한 일이었지만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교복이라는 특성상 한철장사였고 그만큼 다른 매장과의 경쟁이 치열했다.  



 북적대던 손님이 잠시 빠진 시간, 중학교 진학을 앞둔 남자아이와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함께 가게로 들어왔다. 대단한 결심을 하고 온 듯 여자는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주로 손님이 들어오면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아무나에게 'ㅇㅇ학교 교복 사러 왔어요.' 하는데 이 손님은 카운터로 다가갔다. 그때 나는 맡은 손님이 없어서 그 손님을 지켜보게 되었다. 겨울이라 두꺼운 점퍼에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어딘가 이상한 모양이 눈에 띄었다. 아이 엄마의 얼굴 한쪽과 목에는 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점퍼 소매로 가려지지 못한 손목에도 멍이 보였다. 아이는 그런 엄마 옆에서 주눅이 든 얼굴로 잔뜩 얼어 있었다.



 학생의 엄마는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어 유리로 된 널찍한 데스크에 꺼내 놓았다.

"주말이라 현금을 못 찾아왔네요. 이것 좀 맡기고 교복 먼저 찾아가면 안 될까요?"

목소리는 당당했다. 그때부터 매장 안에 있던 손님들은 힐끗힐끗 카운터 쪽을 돌아보았다. 매장 운영을 총괄하는 이대리는 시계를 들어 보았다. 떨떠름한 그녀의 표정을 보니 값이 나가는 시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대로 내려놓고는 메모지를 내밀며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무언가를 적었다. 이대리는 그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거기가 ㅇㅇㅇ씨 댁 맞나요? 하는데 상대 쪽에서 하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안 되겠네요. 다른 가게로 가보세요."


 

 아이의 엄마는 더 당당한 태도로 사람을 그렇게 못 믿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매장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며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아이 엄마의 몸에 난 멍자국을 유심히 살피는 듯했다. 엄마 옆에 선 아이는 표정이 더 굳어졌다. 이대리는 이런 일을 종종 겪어본 사람 같았다.

 "죄송합니다. 다른 데로 가보세요."

하고는 두 모자를 무시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학생의 엄마는 더 성을 냈다.

 "나더러 이 망신을 또 당하라는 말입니까!" 주눅이 든 아이는 그런 엄마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스스로 죄인이 되어 있었다



 학생의 엄마는 되려 화가 난 채로 매장을 나갔다. 아이는 그런 엄마 뒤를 힘없이 따랐다. 이대리는 저만치 멀어지는 두 모자를 보여 말했다.

"시계 저거 싸구려야."



 그 이후로 그 모자의 모습은 내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다. 술이나 퍼 마시고 허구한 날 개 패듯 마누라를 때리는 그녀의 무기력한 남편과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울고 있을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때는 그냥 아이가 불쌍하게만 보였다. 그 두 모자는 교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와서는 연예인을 구경한 것처럼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식구들에게 떠들어댔다. 엄마 아빠는 요즘도 그런 집이 있냐며 안타까워했다. 수십 수백 년 옛날에도 세상이 말세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내가 사는 현시점이 가장 최신의 시대였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든 있었고 그 문제가 공론화되고 돕고 도움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잘 연결이 되느냐의 차이였다. 나는 나 스스로가 굉장한 힘든 일을 겪은 것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소문을 내고 싶었다. 어차피 그 모자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것도 아니었다.




 

 둘째의 옷장 서랍에서 아이가 입던 중학교 교복 및 생활복을 꺼내었다.

"ㅇㅇ아 이것들 다 버리면 되지?"

필요 없게 된 것이지만 아이에게 형식적으로 물어보았다.

"그거 팔면 안 될까? 당근 같은 거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얘가 언제부터 이렇게 장사꾼 같은 기질이 되었지?'



나는 대답했다.

"이 동네에서 이런 걸 살 사람이 있을까? 무료 나눔을 하면 모를까. 게다가 무릎 다 나온 이런 걸 누가 입겠어?" 나는 아이가 입던 바지를 들어 보였다. 무릎만 튀어나오기만 했나,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찢어졌던 부분은 나의 어설픈 바느질 솜씨로 엉성하게 꿰매져 있었다.


 큰아이의 중학교 때 교복을 당근에서 무료 나눔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의 교복을 받아간 분은 아이가 입학시기에는 키가 꽤 작았었는데 덩치가 커져서 조금 더 큰 교복이 필요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 원한다면 당근에서 무료 나눔이라는 것을 이용할 수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국가에서는 (물론 전체 지역에서 시행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입생 전체에게 교복을 사라고 지원금도 주고 있다. 싸구려 시계를 들고 와서 교복을 받아 가겠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게에서 쫓겨나가면서도 더 화가 나서 다른 가게로 향할 모자의 모습은 더 이상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아이의 엄마가 남편에게 맞아서 몸에 멍이 들도록 국가가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충격적인 모자의 모습은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 아이는 무사히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갔을까 혼자 생각에 잠겼다. 교복이 필요해진 '중학교 입학'이 그 아이에게는 큰 짐이 되어 버렸다. 온갖 망신을 당하면서 교복 가게를 찾아다니는 엄마를 보며 오히려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찡해진다. 40이 훌쩍 넘었을 그 아이는 그때의 쓰린 기억을 어떻게 중화시키고 있을까.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다가 귀한 노릇을 할 뻔한 그리고 결국 집에 돌아가서 방 한구석에 툭 던져졌을 그 시계도 그 역할을 하지 못해 역시 슬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당신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