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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Feb 23. 2024

마녀와 거북이

 지구 톡방에는 교사들의 괴상한 모습들이 이어졌다. 독려와 경쟁이 엉겨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모두 키득거리고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매니저가 제일 먼저 마녀 모자를 쓴 모습을 올렸다. 빛이 나도록 환하게 웃는 모습에는 '샘들도 뭐라도 해보세요!' 라며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이후 올라오는 사진은 마녀, 머리에 칼이 꽂힌 괴물, 해골, 만화캐릭터, 호박등 다양했다.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단연코 마녀였다. 가성비 있는 재료에 모자와 망토만 걸치면 그럴듯했다. 게다가 마녀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였다. 마녀라는 것이 결코 우습거나 친근한 생명체도 아닐 텐데 아이들은 마녀를 좋아했다. 나처럼 나이가 있는 사람은 그 커다란 마녀모자를 뒤집어쓰면 주름살까지 가려주는 것 같았다. 사실 주름을 가릴 필요도 없었다. 늙은 마녀를 표현하기에 좋은 재료였다. 좀 더 인상적인 모습을 한 교사에게는 상품이 주어진다.



 나도 이날을 위해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졌다. 비쌀 필요도, 더 예쁠 필요도 없는 것으로 골랐다. 저렴한 것은 약간의 손질이 필요했다. 마녀의 모자라 함은 너덜너덜하고 낡은 그것이 연상되는데 주문한 지 하루이틀 만에 도착한 것은 새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토성의 띠처럼 빳빳하게 생긴 마녀 모자의 챙을 살짝 구부려서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텅 빈 고깔 부분이 바람 빠진 기다란 풍선처럼 가라앉았다. 나는 그것에 휴지를 채워놓고 끝부분이 휘어지도록 살짝 찌그러뜨렸다. 그제야 진짜 낡아빠진 마녀모자가 완성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나 두어 번 설치해 본 나였다. 트리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싫어서 벽에 장식하는 납작한 스타일의 신식 트리를 보고 어머어머! 환호를 질렀던 나였다. 극실용주의의 태도를 가진 내가 언제 이런 복장을 해볼까. 톡톡 튀지 않아도 이벤트에 참가한 교사 중 몇 명을 뽑아 카페 기프티콘을 준다고 하니 나쁘지 않다.



 매년 핼러윈이 되면 회사에서는 회원들을 위해 이벤트를 개최했다. 서울의 한 번화가에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회원을 상대로 한 이 이벤트는 매해 이어졌다. 그런 이벤트에 별로 관심이 없는 교사를 위해 교사 게시판에는 핼로윈 관련한 그림 파일을 제공했다. 늙은 호박, 박쥐, 유령, 마녀, 검은 고양이들을 프린트해서 가림막에 붙여놓고 수업 중에 활용을 해도 좋았다. 프린트를 해서 뒤 가림판에 붙이기만 하면 되었다. 몇 년 동안 핼로윈 이벤트를 지켜보면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반짝이 수술장식까지 사서 가림판 전체를 장식했다. 그야말로 무도회장처럼 화려했다. 어느 똘똘한 아이는 화면이 켜지는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시늉을 했다.


"선생님이 이렇게 ㅇㅇ이를 위해 준비를 했지요~." 양손을 펼치고 과장된 몸짓을 보이자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이건 너무 과한데요!"



 이벤트는 핼로윈에 해당되는 날을 기준으로 일주일 전부터 일주일간 이어졌다. 

"선생님 뒤에 있는 것들 중에 동물은 뭐가 있지?"

"여기 중에서 어떤 야채가 보이니?"

"어떤 캐릭터가 가장 맘에 드니?"

 


 수량을 묻는 질문도 하면 좋겠구나 싶어 다음 날에는 캐릭터를 두어 개씩 더 추가해서 붙여 넣는다. 그러면 호박은 몇 개니, 박쥐는 몇 마리니라고 물어볼 수도 있다. 오후부터 마녀 복장을 차려입고 수업이 끝나는 밤시간까지 그 복장을 유지해야 했다. 예쁘게 찌그러진 부분이 화면에 잘 잡히도록 나름 신경을 써놨기 때문에 중간에 복장을 벗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오면 마녀 복장을 한 채 저녁을 같이 차리고 마녀 복장을 한 채 같이 가족이 식사를 했다. 몇 년 동안 그 시기가 되면 진행되는 모습에 남편은 익숙해진 것 같았다.



 마녀가 한창 수업 중이었다. 구부러진 모자의 챙을 보며 한뜻 민족했다. 컴퓨터에 설치해 놓은 카톡 한 대화창에 새 톡을 알리는 표시가 떴다.

[엄마. 나 오늘 과외 못해. 거북이 죽었어]

 저쪽에 아들 방에 있던 아들이 톡을 보냈다. 보름 전쯤 충동구매로 산 거북이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거북이가 며칠 동안 골골하더니 먹이를 주려고 보니 눈이 까맣게 그을린 것처럼 푹 꺼져있었다고 한다. 거북이가 죽으면 눈이 푹 꺼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이는 며칠 동안 골골하던 거북이를 살리려고 나름 애를 썼다.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의 온라인 수업이 한창이었다. 아이가 집에서 머물며 신나게 본 유튜브 중에 하필 거북이 영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알고리즘에 뜬 큰 거북이를 우연히 보다가 점점 크기가 작아지더니 나중에는 거북이 키우는 유튜브까지 보게 되었고 결국에는 한 마리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아직 받지도 않은 앞으로의 용돈을 가불 해달라고 했다. 거북이 값, 사육장, 잡다한 장비 및 영양제까지 합하면, 현재의 용돈을 유지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도 용돈을 받지 말아야 했다.



 아이는 그런 아기 손바닥만 한 거북이를 애지중지했다. 신생아 같은 거북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거북이는 할인하여 8만 원 정도였지만 나보다도 더 실용주의인 아빠한테는 5만 원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우리 집에서 5만 원짜리가 된 거북이를 들고 병원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파충류를 받는 몇 안 되는 동물병원에 이 장난감 같은 것을 들고 가면 의사도 웃을 것 같았다. 이후에 남편이 심심하면 입에 달던 '죽으면 새로 하나 사는 게 낫다니까' 소리를 예쁘게 포장하며 위로를 해주지는 않았을까.



 아이는 나름의 민간요법을 이용하여 거북이를 돌보려고 노력을 했다. 불쌍한 거북이는 아이의 애씀을 아는지 모르는지 숨을 거두었다. 아이는 거북이가 죽어서 너무 슬프다면서 조금 이따가 시작할 과외를 못하겠다고 했다. 슬픈 것도 슬픈 것이지만 흉한 모습을 한 채 죽은 동물을 발견한 만큼 충격을 받았을 아이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마녀의 망토를 휘날리며 아이의 방으로 간 나는 아들을 안아주며 위로했다.



 아이는 이미 울어서 눈이 벌게져있었다. 몇 년 키워서 정든 동물이 죽은 분위기였다. 살리고자 했던 노력이 좌절되는 상실감이 더 컸으리라. 마녀 복장이 비뚤어질까 봐 꼭 안지는 못하고 어정쩡하게 안아주는 시늉만 했다. 모자의 챙이 넓어서도 안아주는 모습이 어설펐다. 우스꽝스럽게 마녀 복장을 하고 아들과 울었다. 처음 키워본 애완동물이 죽어서 슬퍼하는 아이가 가엾었다. 나는 거북이 때문이 아니라 아이가 애처로워서 울었다. 눈물이 지나가 얼룩이 생긴 얼굴은 더 주름져 보이고 진짜 마녀 같았다.


 짧은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목을 가다듬고 다시 신나는 말투로 아이를 맡았다.

"이번 주는 핼로윈 이벤트 주간이라 선생님이 이렇게 꾸며봤어요! 두 유 라이크 잇?"



 마녀는 수업을 하면서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을 돌아다니다던 닭이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뒀던 때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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