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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Feb 28. 2024

맛없는 삼계탕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날따라 엄마는 삼촌의 방문이 무척 반가운 것 같았다. 삼촌이 등장하자마자 엄마는 닭이 어디 있나 둘러보았다. 닭은 아무것도 모르고 마당 한 구석에서 벌레를 잡으며 놀고 있었다. "야! 너 잘 왔다!" 삼촌을 맞는 엄마의 인사는 더욱 밝았다. 삼촌은 자신에게 어떠한 거사가 맡겨진지 모르고 대꾸도 하지 않고 자기 집에 귀가하는 모양으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그때부터 안 좋은 조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삼촌은 엄마가 차려주신 식사를 마치고 마당으로 나갔다.

"비 올 거 같으니까 저거 빨리 잡아봐라." 엄마는 손가락으로 닭을 가리켰다. 여전히 닭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이 싼 똥을 지나쳐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다. 하늘이 흐리고 비가 올 거 같았다. 

 

 마침 방학이어서 일을 나가신 아버지를 빼고는 모두 집에 있었다. 닭의 마지막 길을 기리는 것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닭에게 별로 정을 주지 않았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사실 나는 닭이 삼촌에게 잡혀서 마지막 비명을 빽빽거리기 전까지 모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2층 방에서 그날따라 다르게 들리는 닭의 울음소리에 마당을 내다보니 삼촌이 닭을 움켜쥐고 수돗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동생은 내 옆에서 숨이 넘어갈 듯이 울고 있었다. 나는 동생이 우는 것을 보고 풉 하고 웃으며 전날 그 시간에 하던 일을 했다. 주산 학원을 가려고 가방을 챙기다가 닭이 빽빽거리는 소리가 조금 듣기 싫어서 귀를 막고 얼굴을 찡그렸다.



 닭의 비명은 짧게 들리고 끝이 났다. 단단한 삼촌의 손아귀 속에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닭은 숨을 거뒀다. 동생은 자신의 소중한 단짝 친구가 죽어서 울었다. 옆에 있던 막내 녀석은 저 누이가 울자 같이 따라 울었다.   





"엄마 말이야, 그날 너한테 닭 잡는다고 미리 얘기는 했어?"

"뭔 얘기를 미리해. 삼촌이 왔을 때 닭 잡을 거라고 갑자기 말했는데."

동생은 그날로부터 강산이 변해도 세 번이 더 변했을 어느 날 나와 통화를 하다가 햇님이의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는 삼촌이 잡아서 털까지 깔끔하게 뽑아 놓은 닭을 솥에 넣고 요리를 시작했다. 그 닭은 아버지의 저녁식사가 되었다. 닭을 애지중지한 사람은 동생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닭이 예쁘다면서 닭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동생과 닭, 아버지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내빼는 닭을 아버지가 두 손으로 들고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각자 사진을 찍어주다가 셋이 나온 사진을 찍을 때는 나를 불러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영락없는 반려동물이었다


 아버지는 그릇에 담긴 햇님이를 마주하고 있었다.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면 잘 드시는 아버지였지만 그날 상에 놓인 삼계탕은 무지 맛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삼계탕을 먹는 등 마는 둥 하셨다. 나중에 그 일이 기억나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만날 보던 닭인데 정말 못 먹겠더라고. 기분이 찝찝하고 썩 좋지가 않았어."  



 항상 빈손으로 놀러 왔다가 빈손으로 되돌아가신 삼촌은 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되서인지 닭을 잡고 나서 꽤 만족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날은 엄마에게도 자신의 골칫덩어리 동생이 큰 일거리를 해낸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다. 그날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을 때였다. 삼촌이 이전에 닭을 잡아 본 적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몰라! 하며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나고 자랐지만 닭을 잡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끔찍해서 누가 시킨다 해도 하기 싫다고도 했다. 엄마가 어릴 적 집에 가축을 키웠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평생 실패한 사람 취급받으며 살아온 삼촌에게 누이네 닭 잡는 일은 거역할 수 없는 굉장한 도전이 되지 않았을까.

 


 금방 비가 올 것처럼 날씨가 끄물끄물한 날, 어릴 적 우리 집 최초 반려 동물이었던 닭은 짧게 비명을 지르고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누군가에게는 찝찝한 한 끼 식사를 또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친구를 잃은 경험을 갖게 한 닭이었다. 




"나..... 우리 집 그 꼴란 거북이 죽고 너 생각난 거 있지. 너 그때 정말 마음이 끔찍했겠다." 

"언니도 참!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호호"

"그때 내가 같이 슬퍼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하다. 보다도 나도 철이 없어서 슬퍼하는 너를 위로해주지 못해서.....  "

나는 갑자기 멋쩍어서 말이 많아졌다.

"아니 근데 엄마는 어쩜 그렇게 무심했니? 너 없을 때 닭을 잡든가, 미리 얘기를 해줘서 네가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해 주든가. 엄마도 참....."

동생이 말했다. "엄마 성질에 닭 키우는 거 1년 넘게 봐준 것도 감지덕지지 뭐."


 -그 닭이 암탉이었다면, 그래서 알이라도 하나씩 낳았다면 할머니 생각이 조금 바뀔 수도 있었을까?

 엄마의 어릴 적 그 일을 들은 아들이 물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동생이 대답했다.   

"그러게? 그럼 상황이 조금 바뀔 수도 있었겠네."

동생은 커피를 마시는지 호로록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빠! 예전에 그 닭사진 있잖아. 햇님이! 아빠랑 찍은 거 어디 있어?"

 친정에 갔을 때 아들 녀석이 닭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닭이 함께 찍은 사진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앨범을 가져와서 한 장씩 넘기며 햇님이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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