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우리 집 주변엔 꽃나무들이 많다. 벚나무, 살구나무 그리고 우리 집 바로 옆엔 진한 분홍빛의 꽃이 피는 목련나무도 있다.
봄만 되면, 특히 벚나무와 살구나무에 꽃이 피면 사람들은 금세 이 꽃들에 시선을 빼앗긴 채, 걷다 말고 사진을 찰칵 찰칵 찍어댄다. 나도 그중 하나다. 나무 입장에서도 열심히 꽃을 피워낸 보람이 있을 것 같다. 생물학적 보람 뿐 아니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예쁘다 해주니 어깨가 좀 으쓱하지 않을까?
봄마다 이렇게 나무들이 피워낸 꽃을 감상하는 시간은 참 행복하다. 자연이 만들어 준 갤러리 인 셈이다. 그래서 꽃이라 하면 자연스레 봄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마치 꽃은 당연히 봄에 피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 달 전쯤 동네를 산책하다 참 예쁜 꽃을 발견했다. 빨간색과 핑크 색의 중간 정도 되는 빛깔에 오밀조밀한 크기의 꽃들이 예쁘게도 피어있었다.
'아- 예쁘다' 하고 지나가는데 자세히 보니 이 일대에 같은 꽃이 핀 나무들이 꽤 많았다. 생각해보니 꽃은 봄에만 피는 게 아니지 싶었다. 여름에는 장마라고 덥다고 주변에 핀 꽃들을 감상해 볼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여름이라는 환경적 난관들에 정신을 빼앗겨 이렇게 예쁘게 피어난 꽃들을 알아봐주지 못했던 것이다. 꽃의 이름도 나무의 이름도 몰랐다. 잠깐 걸음을 멈추고 검색해 보니 '배롱나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너 참 예쁜데도 여름에 피어서 관심을 많이 못 받는구나!'
벚꽃만큼이나 살구꽃만큼이나 예쁜 꽃인데 아무도 걸어가며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난 들고 있던 복숭아 상자를 땅에 내려놓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에겐 너도 너무 예뻐'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봄에 피는 꽃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나는 조금 늦게 피어도 괜찮아. 나는 나의 속도가 있어. 너희들보다 조금은 늦지만 나도 너희만큼 예쁘게 꽃을 피울 자신이 있어'라고 생각하며 이 여름을 기다렸을 배롱나무와 꽃에게 찰칵! 찰칵! 사진을 찍으며 내 마음을 전해보았다.
이제부터 나에게 여름 하면 복숭아와 배롱나무다.
봄에 피지 않아도 예쁜 꽃들이 많다.
여름에 피는 꽃도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