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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23. 2024

방망이 깎던 일본 치과 의사

일본 치과에 다녀왔다. 

 두 번째 방문이었다. 접수를 마치고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실 뒤쪽에 화장실로 이어지는 공간을 살펴보니, 정갈한 세면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곳곳을 다니며 느끼는 것은, 일본은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남는 공간이 없도록 깔끔하게 물건 각자의 자리를 정해 배치하고, 그렇게 꾸려진 공간은 무척 정갈하고(정갈하다, 깨끗하고 깔끔하다.) 단아한(端雅하다, 단정하고 아담하다.) 느낌을 주었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선호하는 공간 배치의 형태였다. 이곳 또한 좁은 세면대 공간이 편의를 고려해 꾸며져 있었다. 

 대기실의 모습도 정갈했다. 지역별 차이는 있겠지만 일본을 다니다 보면 신축보다는 오래된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런 곳들은 오래되었지만 ‘낡음’보다는 ‘청결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 대체로 많았다. 이곳 또한 그런 곳이었다. 전에는 겪어야만 알 수 있던 것을, 이제는 몇 가지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청결하게 관리되고 있는 내부 공간과 나이 든 간호사의 다정하고 친절한 응대로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실력 있는 분이 운영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오래되었지만, ‘낡음’보다는 ‘청결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공간

 일찍부터 서두른 덕에 금방 나의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다. 한차례 방문했을 때, 이곳 의사 선생님은 전문가 시구나라고 받았던 느낌은 이 날 확신을 얻었다. 의사 선생님은 전문가시고 인격 또한 좋은 분 이시라는 것을. 손놀림은 섬세했고, 외국인 환자(나)의 눈높이에 맞춘 설명은 정확하고 친절했다. 아픈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며, 사실은 느낌만 그럴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진료가 필요한 지부터 확인하셔서, '과잉진료'에 관한 염려 없이 선생님의 판단에 맡기면 될 뿐이었다.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손놀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느끼기에도 노련했고, 불필요한 움직임은 없었다. 마취약이 모두 흡수될 때까지 환자를 배려한 충분한 대기 시간을 갖고, 본인이 원하는 기준치에 달할 때까지 세공을 가하셨다. 이제 거의 끝났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할 때 확인을 거듭하며 지속적으로 세공을 가하시는 선생님께 진료를 받다가 나는 문득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방망이 깎던 노인'이 떠올랐다. 

 '방망이 깎던 노인'은 1974년 발표된 윤오영(1907-1976) 작가님의 수필로 줄거리는 작가가 길에서 방망이 깎는 노인을 만나 방망이를 하나 사는데 , 노인은 무뚝뚝한 모습을 보이며 한나절의 시간이 걸려 방망이를 깎는다. 사는 사람이 오래 걸려서 지쳐서, 이제 그만 달라고 해도 방망이를 깎고 또 깎으며 본인의 기준치에 달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작가는 마침내 완성된 그 방망이를 가지고 지나친 시간 소요에 조금 불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데, 작가의 아내가 방망이를 극찬하며, 그렇게 알맞은 방망이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며 감탄을 거듭하는 모습에 본인의 태도를 뉘우치는 이야기이다.

 물론 나는 태도도 공손했고 마음으로도 공손했지만, 의사 선생님의 꼼꼼한 진료와 끈기 있는 세공을 겪으며 방망이 깎는 노인의 치과 의사 버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신뢰가 갔고, 치과 진료가 필요하면 이곳을 다시 찾겠노라 마음속으로 단골을 예약했다. 진료를 마칠 즈음 이곳 의사 선생님은 지금도 나이가 있으시지만 오래오래 진료 보시고, 눈도 오래도록 안 침침해 지시길 바라는 마음이 되었다. 

 그럼에도 치과 진료는 무섭다. 그것은 언제나 무서워, 나이가 들어도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어떤 것 중 하나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장점이 있다면 '나'를 잊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진료가 무서워서 온갖 잡생각이 사라지고 치아에 닿는 감각에만 집중하다 보면, 그 공간에는 오직 '진료'와 '나'만 존재한다. 그러다 마침내는 나조차 잊고 오직 '진료'만 존재한다. 진료를 겪으며 잠시나마 '나'를 잊은 덕분에 나는 조금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직 '진료'만 존재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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