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Jul 09. 2024

당신이 떠난 세계

이별이 어렵다고 느낄 때.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잠시 여행을 떠났다. 어디로 얼마나 다녀오셨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없던 날의 감정은 기억한다. 우리(언니, 나, 동생)는 어렸기 때문에 엄마가 안 계신동 안 우리를 돌봐주시기 위해 할머니가 와 계셨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고, 학교를 마친 뒤 나는 동생을 데리고 놀러 나갔다. 놀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엄마가 안 계신 집이 허전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놀다 보니 날은 어두워졌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길, 동생은 울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즐겁게 놀았으며, 나는 동생에게 친절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이유 없이 동생은 조금씩 어두워지는 저녁 집으로 돌아가며 집에 가기 싫다고 울었고, 나는 동생의 마음을 알았다. 동생은 놀고 싶어서 집에 가기 싫은 게 아니었다. 우리는 엄마의 자리가 비어있는 집의 허전함을 절절하게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어렸지만, 어쩌면 어렸기 때문에 본능적 감각에 더 민감했을지도 모른다. 어두워지던 날은 쓸쓸한 감정에 힘을 실어주었고, 그날의 감정은 오래도록 기억되었다. 


 지금도 선명한 기억이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언니가 떠난 일이 계기가 되었다. 친언니가 외국으로 떠났다. 비행기로 반나절 이상을 가야 하는 먼 곳으로 언니와 조카들이 떠났다고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에 구멍이 크게 뚫리며 마음에 깊은 어둠이 덮쳤다. 일본으로 온 뒤 자주 보지 못한 언니였음에도, 언니가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허전함이었다. 언니가 떠난 자리를 구체적으로 생각하니 조금 막막했고, 너무 먼 곳으로 가버려 나의 마음이 닿을 수 없을 것 같아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지만, '이별'에 노출된 마음은 생각의 물꼬를 '이별'쪽으로 열고 다른 이별의 기억들도 끌어왔다. 

 결혼하고 외국으로 떠난 사촌동생의 빈 방을 보며 그 아이가 이제 정말 떠났다는 생각에 빈 방에서 한동안 울었다는 숙모의 이야기, 내가 아이와 함께 일본으로 떠난 뒤 남은 나의 물건들을 보니 미칠 것 같아서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웠다는 엄마의 이야기, 엄마가 자리를 비운집의 공허감을 느꼈던 어린 날의 동생과 나의 기억들, 그리고 언니와 함께 유학하던 시기 학업을 마치고 먼저 귀국하는 나를 배웅하며 울던 언니의 모습까지... 그동안 깊게 공감하지 못하고 스쳤던 타인의 이별과 지난 이별들이 갑자기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어떤 행위들은 시간이 지나야 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된다. 내게는 지난날의 이별들이 그랬다. 당시에는 크게 앓지 않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던 이별들이 마음에 박혀있다 어느 순간 쏟아져 나오며 그 의미와 감정이 이해되었고, 미처 앓지 않고 넘어갔던 마음들을 새로운 이별과 함께 비로소 앓게 되었다. 

 살면서 듣고, 겪고 흘려보냈다고 생각한 일들은 사실 흘러간 게 아니었다. 그것들은 가슴속 한 구석에 박혀있었고 잠시 다른 것들에 덮여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일들은 어떤 일을 계기로 다시 모습을 내밀수 있을 만큼 딱 그만큼의 깊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 느껴지는 날 중 하나는 이런 날이다. 이별을 겪는 날. 속수무책 수동적으로 이별을 맞이하는 날. (어쩌면, 대부분의 이별은 수동적이겠지만.) 삶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다양한 형태의 이별들은 나를 휘청이게 만들고, 그 강도에 따라 얼마간의 의욕을 앗아가거나 두려움을 심어줄 때가 있다. '이별' 자체가 두려워 몸을 사리게 되는 두려움. 그럼에도 해결책이나 대비책은 없다. 이별이나 슬픔은 여러 번 겪어도 무뎌지거나 익숙해지는 감각이 아니므로. 앞으로도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으므로.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것이 옅어지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것으로 그것을 덮거나, 훗날을 기약할 뿐.. 만약 훗날을 기약할 수 없다면 그저 살아가며 새로운 날의 기억들을 쌓아 그것을 희석시키고 덮는 수밖에. 두려움, 아픔, 슬픔을 덮는 감정이 찾아오는 시간까지 버티며. 


 그렇게 '이별'을 감각하며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잊고 있던 새로운 기억들이 찾아왔다. '만남'에 관한 기억들이. 반가움에 울컥했던 만남과,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재회했던 기억과, 몇 번씩 반추해 보았던 인상 깊었던 지난 시간의 '만남'에 관한 기억들이 애써 끌어오려 하지 않아도 찾아왔다. 갑자기 찾아온 '만남' 그리고 '재회'에 관한 기억들을 감각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만남'에 관한 기억들도 흘러가지 않고 마음속에 남아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비로소 '헤어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것은 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