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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24. 2024

진짜 '나'로 머무는 시간

개인적인 군생활의 한 단면

 눈뜨면 출근하기 바빴다. 선크림을 바르고 기초화장을 하고 정신없이 출근준비를 마치고 행정반이나 사무실에 앉으면 정신을 챙길 새도 없이 쓰나미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고, 메일을 읽고, 회의를 하고,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일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진짜 '나'는 없었다. 전투복을 입고 계급장을 부착한 외형 속에 진짜 '나'는 없었지만, 아예 사라져 버린 건 아니었기에 아픔과 짜증과 괴로움 피곤은 고스란히 흡수되어 아팠고 상처를 느꼈다. 외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당하는 것은 아니었기에(물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모든 것은 대부분 내면에서 일어났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고, 혼자 곪았다. 아주 가끔 주변 사람들과 진짜 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괴로움이 없어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 바빴던 우리는 자신의 멘털을 챙기기에 급급해 상대에게 진심 어린 관심을 내비칠 여력은 많지 않았다. 나조차 그랬다. 내가 챙겨야 할 입장인 누군가가 잘 지내기를 바랐고, 잘 지낸다고 지레 짐작 할 때도 많았으니깐. 

 가끔씩 지난 시간들을 복기하고 가정을 해볼 때가 있다. 의미 없을지언정 궁금한 마음에 가끔 그 시간으로 돌아가볼 때가 있다. 오늘 꽂힌 마음은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군인으로 머물던 많은 시간 나는 '나'와 함께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가정해 본다. 진정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있었다면, 매일 아침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에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나는 덜 힘들었을까. 

 지금 나는 오직 나만 머무는 시간의, 나만 아는 일련의 루틴이 있다. 그 시간들을 갖고, 가벼운 달리기를 한다. 그리고 하루를 보낸다. 가끔 무언가 쓰나미 같이 몰려들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하루를 보내지만,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껍질과 내면을 모두 '나'로 보낸다는 사실이다. 나로 사는 일은 자주 충만하고, 스스로의 보호막이 되어 주기에 다시 그때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 물론 군생활과 지금의 삶은 모든 것이 많이 다르고 나 역시 그때의 내가 아니지만. 

 만약 군생활의 시간 모든 것이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하루가 시작되기 전,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나'를 붙잡고 그 하루를 '내'가 보냈다면 어땠을까. 지금 기억하는 그때보다 조금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상황에 덜 휘둘릴 수 있었을까. 아니면, 혹시 더 아팠던 건 아니었을까. 지금도 나는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몰려오면, 잠시 내면의 나와 거리를 두고 그곳에 껍데기만 남기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만약 군생활의 모든 시간 온전히 나였다면 모든 스트레스를 나는 감당할 수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어쩌면 필요한 것은 상황에 따른 자신과의 거리두기 일지도 모른다.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집중해야하고 온전히 마음을 두어야 할 시간에는 온전히 자신이 되어 머물되, 많이 힘든 시간에는 잠시 내면과 거리를 두고 껍데기만 그곳에 머물게 하는 것. 그것이 비겁한 태도라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 이기에. 그 스킬이 좀 더 유연해지면 사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침저녁 달리기 좋은 날들이 찾아오고 있다. 할 수 있는 만큼 달리며, 내면에 찾아오는 이 마음들을 파고들어 봐야겠다. 


 더운 여름 잘 보내셨나요? 오랜만에 글을 남깁니다. 더위가 가고 있네요. 여름 간 고생하셨습니다. 모쪼록 남은 여름 잘 마무리 지으시고, 다가오는 가을 즐겁게 보내시길 바라요. 오늘도 이곳에 오셔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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