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 보면,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욕을 먹을 때가 있다. 오늘은 딱 그런 날이었다.
나는 오늘 내 일을 끝내고 AI(일명 ‘대기’) 근무로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었다. 잠시 후 트램을 2번 노선에서 9번 노선으로 이동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데포 안에서는 속도를 10km에서 5k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니 거의 기어가는 속도다. 그렇게 천천히 트램을 이동하던 중, ‘무조건 정지’ 표시가 있는 선이 보였다. 나는 지시에 따라 더 속도를 줄였다.
그런데 그 순간 트램이 그대로 멈춰버렸다. SI, 즉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선(Section Isolator) 위에서 정지해 버린 것이다. 전원이 끊겨, 아무리 조작해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군대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군 복무 시절, 의무병이었다. 5사단 의무실에서 근무하며 밤샘 당직을 설 때면, 군의관들이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오늘 밤은 환자 올까, 안 올까? 나 자고 있는데 밤에 환자가 오면 네 책임이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됐다. 그건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책임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사람들’의 심리였다. 환자가 오든 오지 않든, 결국 당직 의무병은 모든 상황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직 의무병들은 잘못이 없어도,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욕을 먹는 자리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늘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응급환자가 오면 당직 의무병은 죽일 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당직 군의관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오늘의 나는 딱 그 자리에 있었다. 트램이 멈추자 곧 기술자들이 왔다. 트램을 확인하고, 전류를 다시 연결하고, 트램을 밀어서 옮겼다. 기술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도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규정대로 했고, 누구라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같은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제가 그 선에서 멈춰버렸네요.”
실제로 잘못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 생각이 오래 남았다.
그때 기술자 중 한 명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이 마지막이 아닐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말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누구나 멈출 수 있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인정의 말’이었다. 그리고 직원들 대부분의 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듯 행동했다. 9번에 들어갈 때 자주 발생하는 사고인 것처럼 보였다.
인생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다. 내가 한 행동보다, 내가 서 있던 ‘자리’ 때문에 욕을 먹는 일. 하지만 그 자리에 선 사람만이 상황의 무게를 체감하고, 또 그 무게 속에서 성장한다. 오늘 나는 다시 배웠다. 책임이란 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자리에 따른 태도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나는 최고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내 자존감을 챙겼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