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말았다.
“너는 농구에 소질이 없어, 그냥 하지 마.”
입 밖으로 나온 순간, 말은 이미 화살처럼 날아가 버렸고, 나는 바로 후회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행복이는 잠시 멈춰 서더니,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요? 농구 계속하면 안 돼요?”
그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오늘은 행복이의 테니스 그룹 강습이 있는 날이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있을 대회를 생각하며 더 열심히 해주길 바랐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다. 하지만 행복이는 건성으로 공을 쳤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피로와 긴장, 지난 며칠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나는 잔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그나마 잘하는 테니스에 집중하라고 했잖아.”
“이제 더 이상 못하는 것들은 하지 마.”
말은 점점 거칠어졌고, 농구까지 싸잡아버렸다.
“너는 진짜 농구 못하는 거 아냐. 이번 겨울에는 농구하지 마.”
행복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저는 계속하고 싶은데요. 왜 농구하면 안 돼요? 저는 농구가 좋아요.”
그 말에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려는 듯 물었다.
“너 농구 실력은 피아노보다도 못해. 근데 피아노는 치기 싫고 농구는 하고 싶어?”
잠시 조용하던 행복이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래도 저는 농구가 좋아요.”
그 순간, 나는 완전히 패배했다. 아이가 나를 이긴 게 아니라 내가 아이를 이기려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 네가 못해도 좋아하는 건… 그렇게 하자.”
그 말은 행복이에게 한 약속이었지만, 사실은 나에게 건네는 다짐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잘하는 것을 찾아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밖의 풍경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잘하는 것을 발견해 노력하는 건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못해도, 서툴러도, 아이가 좋아하는 것은 계속해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앞으로는 결과보다 마음을 먼저 보려고 한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기준을 내려놓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좋아해서 하는 일은 느리게 가도, 멈추지 않는 법이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사람들은 흔히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잘하는 일을 하면 인정받기 쉽고, 실패할 확률도 낮다.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능력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잊고 살아갈 때가 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잘해서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좋아서 하는 일도 있다는 사실을.
어떤 일은 결과가 우리를 움직이지만, 어떤 일은 그 순간의 설렘이 우리를 계속 가게 만든다. 비록 서툴고 남들보다 느려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아이의 얼굴에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빛이 깃든다. 그 빛은 성과로는 절대 대신할 수 없는 힘이다.
잘하는 것을 키워주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건 아이가 세상과 만나는 하나의 문이 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지켜주는 일 역시 같다. 그건 아이가 자신과 연결되는 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남들이 인정해 준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해 주는 기쁨 위에서 오래 버티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잘해서 하는 것만이 인생의 답은 아니라고. 못해도 좋으니 좋아하는 것을 해볼 기회를 주자고.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그것은 여전히 유효한 약속이다.
우리는 모두 성장하는 동안 잊어버린 질문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 나는 무엇을 잘하느냐보다, 무엇을 좋아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어쩌면 인생의 큰 그림은 그 질문에서부터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