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4명이 전부 모였다. 케이는 희성이를 무려 11개월 만에 만났고, 나는 7개월 만에, 주현이는 한 달 만에 보는 자리였다. 예전에야 서로의 얼굴을 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각자의 삶이 바빠지면서 이렇게 네 명이 시간 맞춰 모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 되었다.
희성이는 요즘 실습 기간이라 정신이 없다. 하루하루 버티기도 벅차 보이는 얼굴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보니 그 안에 여전히 예전의 따뜻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자주 못 보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견디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게다가 4명이 다 모이는 것도 우여곡절이었다.
나 대신 스티븐이 행복이를 돌보기로 하면서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고, 케이는 오늘을 위해 휴가를 내서 오늘을 준비했다. 우리 3명은 희성이 실습하는 지역 근처에서 만나기로 해서 지하철과 트램을 갈아타며 도착했다. 그런데 날씨는 정말 최악이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고, 우산은 뒤집히고, 신발까지 젖어버리는 그런 날이 오늘이다.
그런데도 신기한 건 그런 날씨 속에서 만나니 우리는 오히려 더 반가웠다. 비를 털어내며 마주 앉아, 따뜻한 커피 잔을 손에 쥐는 순간
“야, 우리 진짜 오래만이다.”
누군가 중얼거리듯 말했고, 그 한마디가 오늘의 분위기를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사는 곳은 달라지고, 상황은 달라지고, 책임도 달라졌지만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이 순간만큼은 10년 전 서로에게 기대고 웃던 그때 그대로였다.
누군가는 새로운 연인을 만났고, 누군가는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고, 누군가는 실습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인생을 처음 배워가던 그 시절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우리는 소년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요즘 들어 사람을 만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는 나이인데, 오늘 이 네 명의 자리는 날씨가 아무리 최악이어도 그래도 함께라서 따뜻했던 하루였다. 참고로 멜버른은 여름이지만 날씨가 여름 같지 않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너무 춥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