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향수 리뷰
몰리나르는 1849년에 향수의 수도라고 불리는 프랑스 그라스에서 세워진 브랜드다. 원래 회사 소유였던 향료 생산 공장을 현재 향수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그라스에 가게 되면 꼭 방문하고 싶은 곳 중에 하나다. 공식 사이트에서는 몰리나르의 하바니타가 첫 "오리엔탈" 향수라고 말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겔랑의 샬리마를 첫 "오리엔탈" 향수라고 꼽는 것을 보면 굳이 무엇이 처음인지 다툴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도 든다. 또, 이 향에 그 이전까지는 남성용 향수에만 쓰이던 베티버가 들어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하는데, 베티버는 사실 똑같이 1921년에 나온 샤넬 No.5에도 들어가 있고, 1911년에 나온 까롱 나르시스 느와에도 들어있으며, 무엇보다 이 향에서 베티버가 큰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스럽기 때문에, 이게 맞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중간에 단종되었다 다시 나온 적이 아주 많고, 향수병 모양도 다양하고, 재조합되면서 향이 달라진 경우도 많기 때문에, 리뷰하기 다소 까다로운 향수다.
사실 이 향수병의 연대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1949년에 나온 하바니타 향수 광고 포스터를 찾았는데, 이 향수병과 흡사해 보여서 1940~1950년대 향수인가 싶었지만, 내가 애용하는 raidersofthelostscent 블로그에서 하바니타 향수병 연대 측정법을 써놓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향수병밖에 없었고, 좌절하고 있다가 맨 끝부분에 1921~1960년대 향수병 사진을 나열한 것이 있었다. 여기에서 내가 소장한 향수병과 똑같이 생긴 향수병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http://raidersofthelostscent.blogspot.com/2015/09/habanita-de-molinard-yesterday-and.html
때문에, 이 향수병 역시 1921~1960년 사이 어딘가의 빈티지 향수병일 것이다.
시향지에서 하바니타는 약간의 프루티함과 시트러스가 메인이 되었다. 밝고 상쾌한 시트러스향과 달콤한 프루티함이 있었는데, 2분이 지나자 플로럴함, 특히 자스민과 장미, 그리고 다소 파우더리한 향이 났는데, 아마도 아이리스와 헬리오트로프(살짝 바닐라향 같은 향이 난다)였던 거 같다. 3분이 지나자 플로럴향이 조금 더 강해지며 향에 밝은 느낌을 주었고, 10분이 지나자 정말 플로럴함의 향연이 펼쳐졌는데, 장미, 자스민, 오렌지 블로섬, 라일락, 일랑일랑, 그리고 파우더리한 아이리스와 헬리오트로프의 향이 났다.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되다 34분이 지나자 플로럴함과 파우더리함에 앰버향이 섞이기 시작했고, 43분이 지나자 이 향 전반(플로럴+파우더리+앰버)에 조금의 애니멀릭함이 섞이다가, 59분에는 소량의 스모키한 매캐함까지 났다. 그러나 1시간 12분이 지나자 다시 플로럴해졌다가, 1시간 27분쯤에 파우더리함이 플로럴함에 또 섞였고, 이 상태로 큰 변화 없이 지속되다 2시간 34분 쯤에 플로럴한 파우더리함과 함께 약간 애니멀릭하고 가죽을 연상시키는 향이 첨가되었으며, 2시간 53분 즈음엔 소위 "플레이도우" 같은 앰버리하면서 파우더리한, 약간의 플로럴향이 나는 향으로 바뀌었고 잔향은 여기에서 큰 변화 없이 계속 지속되었다. 대략 15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피부에서는 놀랍게도 당시 향수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향이 아주 달콤하게 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라즈베리와 복숭아향,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 약간의 플로럴한 파우더리함이(아이리스와 헬리오트로프 같다) 섞여 만드는 프루티-플로럴한 향이다. 하지만 1분이 지나자 바로 변해 버리는데, 가죽향과 앰버향, 그리고 벤조인의 나무수지 특유의 짙고 따스한 향이 나기 시작한다. 2분 후 향은 아주 앰버리하고 어두워지는데, 일랑일랑과 장미향, 약간의 자스민이 향이 너무 어둡지 않게 해주지만 주는 앰버와 가죽향 등의 깊은 느낌이다. 3분이 지나자 피부에서는 오래된, 손때를 탄 가죽향, 매캐한 연기를 연상시키는 스모키함, 그리고 프루티 플로럴한 달콤함과 파우더리함이 함께 난다. 그러나 12분이 지나자 다시 한 번 플로럴함이 강해지는데, 지금까지는 가죽향과 앰버향 등에 밀려 추상적인 "꽃"향으로밖에 인지되지 않았던 플로럴함이 장미, 자스민이 구별될 만큼 강해진다. 동시에 파우더리한 플로럴함 역시 조금 더 강렬해져, 앰버향과 레더향, 스모키함은 뒤로 밀려나게 된다. 17분이 지나자 파우더리함이 주가 되고 플로럴함은 다시 한 번 서로 섞이기 시작하나 아직까지는 장미와 자스민향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앰버와 가죽향은 뒤로 물러난다. 25분이 되자 앰버와 레더, 약간의 오크모스 특유의 씁쓸함와 함께 애니멀릭한 꼬릿한 향이 나면서, 파우더리한 플로럴함이 이 번엔 뒤로 물러나는데, 34분이 지나자 꼬릿한 시벳과 머스크가 가장 강렬하고 그 다음으로 파우더리함, 앰버향이 섞인다. 계속 이 상태로 지속되다 1시간 53분쯤에 다시 한 번 플로럴한 파우더리함이 강해지지만, 머스크가 주인 애니멀릭함이 섞여 있다. 2시간 34분쯤에 오크모스향이 애니멀릭한 앰버향과 파우더리한 플로럴함에 섞였다 사라지고, 3시간 57분 쯤에는 앰버리한 애니멀릭함과 플로럴한 파우더리함으로 남게 되는데, 6시간쯤에는 달콤한 파우더리함이 주가 되고 애니멀릭한 앰버리함은 뒤로 숨은 채로 잔향이 지속된다. 대략 12시간을 조금 넘게 지속되었다.
하바니타는 원래 향수가 아니었다. 1921년에 몰리나르에서 판매한 것은, 하바니타 향이 나는 향낭이었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담배에 향을 입히곤 했었다. 또 일종의 향 오일로서 비슷하게 담배에 뿌려 향을 입히는 용도의 제품도 팔았었는데, 이 향이 너무 인기가 좋자 향수로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판매 당시에는 600가지의 재료가 들어갔다고 하고, 아마 내가 가진 빈티지 향수에는 그럴 것이나, 지금 파는 하바니타는 매우 인공적이고 과하게 달며 파우더리하다고 한다.
하바니타라는 이름 자체가 하바나를 스페인어 규칙에 따라 여성명사화한 것으로, 판매 당시부터 여성용으로 나온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1980년 샌 디에고 잡지에서 나온 말에 따르면 "중성적인 향의 선구자 중 하나는 몰리나르의 라 하바니타였다. 1930년대 초반에는(...) 신사들이 모범적인 행위를 보이기 위해 레스토랑이나 다른 공공장소에서 시가를 피울 때 라 하바니타 한 방울을 시가 위에 뿌리곤 했다. 이것은 담배 향을 매캐하지 않게 했다(...)" 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남성들도 많이 사용한 것으로, 혹은 적어도 품격을 중시하는 남성들은 많이 사용한 것이라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원문은 여기서 볼 수 있다:
https://cleopatrasboudoir.blogspot.com/2013/12/habanita-by-molinard-c1921.html
이런 식으로 향수 역사에 관해 찾다 보면, 최근에는 많이 완화되었지만 우리가 향이 남성용/여성용으로 딱딱 구분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예전 사람들은 별로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의 증거를 볼 수 있다.
리뷰할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향지에서 나는 향과 내 피부에서 나는 향이 너무 다르다. 그리고 시향지에서 나는 향은 전반적으로 가볍고 상쾌한 향이 부각되는 반면, 내 피부에서는 베이스 노트, 즉 무거운 향들이 너무 잘 발향된다. 때문에 같은 향수를 뿌렸음에도 왜 이렇게 다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보듯이 여러분들도 시향지에서 어떤 향수가 좋았다고 해서 착향해도 이런 향이 날 거라고 생각하며 곧장 구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향수는 꼭 착향을 하고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