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향수 리뷰
코티 로리간은 프랑스어로 "오레가노"라는 뜻도 되지만, 어떤 곳에서는 "금빛인 자"라고 해석된다는 말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대표 사진을 금빛 가루가 뿌려져 있는 것으로 골랐는데, 이 향수 자체에서 오레가노 향을 감지하지 못했고, 따스한 느낌이 나는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금빛이 더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플로럴 오리엔탈이라고 불리던 소프트 앰버 계열의 탄생을 불러온 향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코티의 향수 같은 경우 로리간은 다양한 향수병에 담겨 팔려나갔다. 때문에, 내가 소장하고 있는 향수병이 언제 나왔는지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밑의 링크에서 로리간이 담긴 여러 향수병을 볼 수 있는데, 내 향수병은 1920년대의 향수병과 외관은 같지만, 스티커가 붙어 있어 아마 후대에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80년대 병하고는 다른 외관을 가지고 있어, 아무래도 1920~80년대 중간 어딘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https://cotyperfumes.blogspot.com/2014/08/lorigan-by-coty-c1905.html
로리간은 겔랑의 뢰르 블루와 많이 비교되곤 한다. 하지만 이전에 인스타그램에 비교시향했던 리뷰를 보면, 분명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비교적 단선적인 향수지만 그럼에도 조금씩의 변화와 변주가 확실히 존재하여 즐거웠다. 옛날 할머니들이 사용하시던 코티분은 로리간 향이 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 향에 익숙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시향지에서 로리간은 스파이시함과 시트러스로 시작하였다. 1분이 지나자 스파이시함보다는 시트러스가 조금 더 느껴지며, 2분 후에는 앰버리한 파우더리함과 스파이스, 그리고 소량의 추상적인 플로럴함이 느껴졌다. 3분 후에는 더욱 플로럴해졌는데, 피부에서보다는 덜 파우더리하고 조금 더 맑은 느낌, 그리고 스파이스가 남아 있었다. 7분 후에는 따스한 앰버리한 향과 플로럴, 특히 오렌지 블로섬과 일랑일랑, 추상적으로 변해버린 스파이시함이 느껴졌으나 여기에 시트러스함이 조금 남아있었고, 10분 후에는 플로럴한 파우더리함과 앰버 느낌으로 변했다가, 11분 후에는 플로럴함의 향연이 펼쳐졌다; 카네이션의 클로브 같은 스파이시함, 바이올렛, 헬리오트로프, 그리고 장미향과 함께 약간의 우디함과 파우더리한 앰버향이 느껴졌다. 19분 후에는 역시 플로럴함이 남아 있었고, 장미향이 제일 강하게 느껴졌으며, 파우더리한 앰버향이 그 뒤를 받춰주었다. 28분 후에는 스파이스와 파우더리한 앰버가 주였고, 플로럴함은 약간의 화이트 플로럴 뉘앙스와 장미향으로 변했다. 31분 후에도 큰 변화는 없었으나, 43분 후에는 플로럴, 스파이스, 파우더리, 앰버와 함께 뭔가 그린하고 프레쉬한 향이 더해졌다. 이 그린함은 점점 사그라들다 1시간 41분 후에 완전히 없어지고, 파우더리하고 따스하면서 약간의 플로럴함이 느껴지는 향으로 바뀌었고, 잔향 역시 위와 같았다. 대략 15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피부에서 로리간은 조금 달랐다. 약간의 후추와 넛멕이 연상되는 스파이시함이 있었지만 대부분 시트러스의 프레쉬한 느낌이 주였고, 1분이 지나자 여기에 굉장히 플로럴해지기 시작했는데, 오렌지 블로섬, 자스민, 일랑일랑 등의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함에 바이올렛이 소량의 파우더리함을 더했다. 2분 후에 플로럴한 파우더리함에 벤조인 같은 앰버리한 향이 섞여 향을 더욱 따스하게 가져가기 시작하였고, 6분 후에는 오렌지 블로섬과 일랑일랑, 따스한 앰버, 그리고 파우더리한 향이 주가 된 위에 약간의 스파이시함이 있었다. 9분 후에는 굉장히 파우더리해졌지만, 시향지에서와는 다르게 뭔가 우디한 향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10분이 지나자 플로럴함의 향연이 펼쳐졌는데, 카네이션, 바이올렛, 헬리오트로프, 바닐라향과 앰버리향이 섞인 파우더리함, 그리고 샌달우드 향이 나기 시작했다. 18분이 지나자 뢰르 블루보다는 바닐라향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두 향을 맡아봤으면 비슷함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파우더리한 앰버향이 강렬하게 나기 시작했는데, 27분이 지나자 앰버, 화이트 플로럴의 인돌릭한 느낌 조금, 파우더리함, 소량의 머스키한 애니멀릭함, 그리고 샌달우드향이 다소 느껴졌다. 30분이 지나도 앞과 비슷했지만, 차이라면 어둡고 따스한 앰버향이 점점 강렬해졌는데, 마치 카라멜같은 진한 느낌을 주었다(카라멜 향이 났다는 얘기는 아니다). 53분이 지나자 피부에서는 인센스향과 우디향이 파우더리한 앰버향에서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지다, 다시 1시간 42분 후에는 따스한 파우더리함으로 바뀌었다. 잔향 역시 마찬가지였고, 12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해외 향수 리뷰 블로그에서, "나는 왜 프랑수아 코티가 자크 겔랑에게 주먹을 날린 적이 없는지 모르겠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웃기 시작했는데, 당대 향수 업계가 합성향을 배척하고 자연 그대로에 충실하려 노력했을 때 프랑수아 코티는 새로운 합성향이나 조합 등을 많이 시도해봤고 때문에 혁신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티가 그런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향수를 내놓으면 자크 겔랑은 그것을 한층 더 고급스럽고 아름답게 변주해서 발표하곤 했다. 코티의 시프레에 대해서는 겔랑은 미츠코, 코티의 로리간에 대해서는 겔랑은 뢰르 블루, 코티의 에메로드에 대해서는 겔랑은 샬리마를 내놓았다. 나 같으면 질투와 분노에 길길이 뛰며 자크 겔랑을 험담하고 짜증낼 사항에 대해서도, 코티가 그런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는 기록은 없다. 코티는 1920년대에 프랑스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폭력배나 이런 사람을 고용하지도 않았고, 사적으로 얼마나 화를 냈을지에 대해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공적으로는 무슨 탄원이나 인터뷰나 심지어는 자크 겔랑에게 편지 한 통 보낸 적이 없다.
로리간이 출시된 후 바로 다음 해에 아프레 롱데가 나왔고, 이후에 뢰르 블루가 나왔다. 아프레 롱데와 뢰르 블루가 어느 정도 흡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자크 겔랑은 아프레 롱데로 플로럴-파우더리-앰버라는 조합을 시험해보고, 6년 후에 뢰르 블루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아프레 롱데를 만들 때 어떠한 추상적인 개념이 이미 잡혀 있었고, 로리간을 접한 후에 그 개념을 조금 더 로리간과 비교해 가며 발전시켜 뢰르 블루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저 추측만이 난무할 뿐, 우리가 궁금한 여러 것들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뢰르 블루를 맡았을 때 프랑수아 코티의 표정이 궁금하긴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뢰르 블루보다 로리간을 맡을 때 조금 더 많이 파우더리한 뉘앙스를 느낀다. 예전에 언급한 적 있듯이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교사셨고, 여기에서 조금 더 밝히자면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멋쟁이셨는데, 아주 어릴 때 동생과 할머니네 집에서 놀때 할머니 방에 들어가면 로리간 향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할머니께서 코티분을 소장하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기억 어딘가에 아주 빈티지한 파우더 화장품 향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