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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Sep 14. 2022

우비강 껠끄 플뢰르 (1917)

빈티지 향수 리뷰

들어가며


플로럴한 향수를 표현하는 법은 내가 여기에서 설명했듯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솔리플로어, 혹은 한 종류의 꽃을 주제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고, 플로럴 부케라고 하여 여러 꽃향이 마치 부케처럼 서로 결합하여 꽃향을 내게 하는 방법이 있다. 현대적인 플로럴 부케 향의 시초로 많은 사람들이 우비강의 껠끄 플뢰르를 꼽는다. 물론 이 전에, 1896년에 나온 우비강의 르 퍼퓸 이데알을 꼽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사실 오늘은 르 퍼퓸 이데알과 껠끄 플뢰르를 비교시향할까 했으나, 이동과정에서 르 퍼퓸 이데알 향수병이 깨져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아주 오래된 병이라, 아마 대체제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오늘은 껠끄 플뢰르만 리뷰할까 한다. 글로 쓰니 굉장히 담담해 보이는데 사실 아주 슬펐다.


https://brunch.co.kr/@abaded695fd0401/3



향수 리뷰


내가 가진 이 향수병의 연대를 측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비강은 코티나 겔랑, 샤넬과 달리 비교적 덕질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정리해놓은 사이트가 많지 않다. 또, 내가 가지고 있는 향수병의 경우 적어도 1939년부터 1978년에 단종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된 병인데, 겔랑과 달리 라벨이나 이런 표시가 전무하기 때문에 이 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기 어렵다. 밑의 사이트에서 조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1927년 광고에서 실크로 안감을 만든 용기에 포장되어 왔다고 했는데, 내 향수병 같은 경우도 그러한 용기에 포장되어 왔기 때문에 이 때에 만들어진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이 용기가 후대까지 계속 사용되었으면 훨씬 이후일 수도 있다.

 

https://houbigantperfumes.blogspot.com/2013/05/quelques-fleurs-by-houbigant-c1912.html


왼쪽: 개인소장중인 1978년 이전 우비강 껠끄 플뢰르. 오른쪽: 담겨져서 왔던 용기.

빈티지 퍼퓸: 시향기


일반적으로 나는 시향기를 적을 때 피부에서와 시향지에서를 나눠 쓴다. 그러나 껠끄 플뢰르는 피부에서와 시향지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거의 똑같은 향이었고, 차이라면 시향지에서 조금 더 은은했다는게 끝이었다. 처음에는 그린하고 약간 시트러스한, 베르가못 향으로 시작했다. 2분 후, 꽃의 향연이 시작되었는데, 정말로 부케처럼 여러 꽃향이 다채롭게 어우러졌다. 은방울꽃, 오렌지 블로섬, 라일락, 자스민, 그리고 소량의 그린함과 허브함이 느껴졌다. 5분 후 굉장히 강렬한 오렌지 블로섬과 자스민이 주가 되어 인돌릭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다가, 10분 후에는 라일락과 함께 장미가 주가 되고 자스민은 뒤로 갔다. 그러다가 21분 후에는 라일락과 자스민, 38분 후에는 장미와 자스민, 그리고 소량의 파우더리한 바이올렛 향이 났다. 그러다 49분 후에는 아름다운 장미와 자스민 그리고 라일락 향, 1시간 18분 후에는 장미와 자스민은 뒤로 가고 라일락과 은방울꽃이 앞으로 오다가, 점점 더 꽃향들이 서로 섞이기 시작하면서 종래에는 그냥 추상적인 꽃향이 되었다. 잔향마저도 굉장히 플로럴한 느낌이 주였고, 약간의 오크모스와 부드러운 바닐라향이 날 뿐이었다. 대략 8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껠끄 플뢰르에 대하여


껠끄 플뢰르는 최초의 복합적인 플로럴 부케라고 불리는 향이라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껠끄 플뢰르는 "꽃 몇 송이"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서 "몇 송이"가 굉장히 가볍고 툭툭 던지는 투의 말이기 때문에, 프랑스인 특유의 미묘한 자존감을 엿볼 수 있다.


출처: https://www.gillianhorsup.com/product/houbigant-vintage-powder-box-unused-flower-basket-design


그러나 동시에 당시 우비강의 상징이 바구니에 담긴 꽃 몇 송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비강에서 자신있게 우리의 상징을 내건 향이라고 발표한 것과 다름 없다. 실제 옛날에는 사람들이 상점을 들릴 때 보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 상점에 간판을 내걸 때 여러 의미를 가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예로 중세시대에는 어떤 귀족의 비호를 받는 상점의 경우 그 귀족의 가문 문장을 걸기도 했고, 아니면 뭐 "장미여관"이런 이름이면 장미 문양을 그린 간판을 걸어 찾기 쉽게 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밑에 첨부한 사진의 경우 이름이 "백조여관"인데, 이에 걸맞게 백조가 그려진 간판을 가지고 있다.  


출처: By michael ely, CC BY-SA 2.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2729124


이런 예시에서 보듯이, 이 향수의 껠끄 플뢰르 라는 이름에는 그냥 꽃 몇개라는 뜻 뿐만 아니라 우비강을 대표한다는 자존심이 들어가 있다. 현재 껠끄 플뢰르는 오랜 기간 단종되었다가 우비강에서 껠끄 플뢰르 르 오리지널 이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끝맺으며


사실 플로럴 향수를 리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모든 향보다 플로럴 향들이 제일 유행에 민감한 것 같기도 하다. 알데하이드가 들어갔는지, 얼마나 파우더리한지, 어떤 플로럴이 쓰였는지, 표현방식을 어떻게 했는지, 얼마나 강렬한지에 따라 구식이 되기도 하고 모던해지기도 한다. 예로, 장미향 같은 경우 구닥다리같다는 평가가 나오다가 스텔라 맥카트니의 스텔라라는 향수가 나오며 다시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화이트 플로럴 같은 경우 소위 BWF(빅 화이트 플로럴, 강렬한 화이트 플로럴 향연이 주가 되는 향수)들이 80년대에 유행했다가 깔끔한 향이 다시 대세가 되기도 하고, 꽃향이니까 다 비슷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랬다 저랬다 한다.


동시에, 플로럴 향수를 리뷰할 때 이것이 현대 감성에 맞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현대 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힙스터들? 유행에 민감한 인플루언서들? 그냥 향수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 껠끄 플뢰르가 있었기에 장 파투 조이라던지, 아니 그걸 빼놓고도, 모든 플로럴 부케 향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런 영향력이 현대에도 충분히 메아리쳐서 유효한 형태로 잔존해 있을까? 백화점에 가서 모든 브랜드의 모든 플로럴 향을 맡지 않는 이상 이런 질문에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을 써야 하는데 질문만 하고 있다니 부끄럽다. 어쨌건, 클래식한 빈티지 플로럴의 느낌이 어땠는지 잘 보여주는 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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