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mellperfumes Aug 30. 2022

겔랑 아프레 롱데 (1906)

빈티지 향수 리뷰

들어가며


아프레 롱데는 한국에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향수다. "비 온 뒤"라는 낭만적인 이름을 가진 이 향수는 조향사 자크 겔랑이 시골 동네를 걸어가다가 소나기가 오자 자연에서 나는 향에 깊은 인상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자크 겔랑의 로맨틱한 느낌이 물씬 나는 향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사람들이 이 향수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자크 겔랑의 클래식한 걸작 3개-뢰르 블루, 미츠코, 샬리마-에는 미치진 않지만, 이 셋 중 하나 이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아프레 롱데는 좋다고 하거나 아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향수 중 하나라고 말하곤 한다. 너무나 밝고, 맑으며, 투명한 느낌을 주면서도 뭔가 미묘한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아프레 롱데에 대해 굉장히 궁금한 점이 많았는데, 2000년대 중반에 (아마 2005년 아니면 2006년이었을 것이다) 이미 여러 규제 때문에 아프레 롱데의 퍼퓸 엑스트레가 단종되었다. 지금은 오 드 뚜왈렛 버젼밖에 없는데, 레전더리 컬렉션에서 2021년에 재조합하여 팔고 있다.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고, 직구해야 한다는 점이 아쉽다.


https://guerlainperfumes.blogspot.com/p/guerlain-flacon-list.html

https://raidersofthelostscent.blogspot.com/2016/11/guerlain-stickers.html

저번 겔랑 샬리마 글에서도 링크했지만, 이 두 개의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소유중인 빈티지 겔랑 향수 병이 대략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추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향수 리뷰


나는 현재 겔랑에서 레전더리 컬렉션에 넣어 파는 아프레 롱데 말고 그 이전에 산 아프레 롱데 오 드 뚜왈렛을 소유하고 있다. 아마 2018년 아니면 2019년에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아프레 롱데 퍼퓸 엑스트레를 사려고 이곳저곳 뒤져봤지만, 1980년대에 나온 것마저도 600달러를 호가하는 가격 때문에 쉬이 구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운 좋게 아주 예전에 만들어진 아프레 롱데 퍼퓸을 찾게 되었는데, 스티커 라벨에 의하면 1930년대~1940년대 말까지 만들어진 스티커고, 병 같은 경우 1902~1959년 사이에 만들어진 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난 이 스티커 라벨이 1800년대 말에 나온 병에 붙어있는 것도 봤기 때문에, 늦어도 1930~1940년대 말 병이고 그 이전에 나온 병일 수도 있다.


왼쪽: 2019년 즈음에 산 아프레 롱데 오 드 뚜왈렛. 오른쪽: 1940년대 말 혹은 그 이전에 나온 아프레 롱데 퍼퓸 엑스트레.


1. 현대 오 드 뚜왈렛: 시향지에서


시향지에서는 굉장히 은은하고 가벼운 향이 나기 시작했다. 헬리오트로프의 구운 아몬드나 바닐라가 연상되는 향, 그리고 바이올렛의 파우더리한 향이 났는데, 동시에 아니스의 스파이시한, 매콤한 향도 조금 섞여 너무 텁텁하진 않았다. 시향지에서는 피부보다 조금 그린한 뭔가가 있어서 프레쉬한 느낌이 났다. 1분이 지났을 때, 달콤한 느낌이 피부보다 덜했고 나머지는 비슷했다. 4분이 지난 후, 그린한 향이 조금 더 강해지며 파우더리하고 플로럴한 향과 섞이기 시작했다. 6분이 지나자 다시 플로럴한 달콤함이 나기 시작했는데, 10분이 지나자 파우더리함이 다시 주가 되어 플로럴함과 조금 섞였다. 16분이 지나자 화이트 머스크 향이 파우더리한 플로럴 느낌과 조금 섞였고, 20분이 되었을 때도 비슷했으며, 25분이 지나자 화이트 머스크 향은 사라지고 다시 파우더리한 플로럴로 돌아왔다. 이 상태로 계속 유지되다 대략 6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2. 현대 오 드 뚜왈렛: 피부에서


피부에서도 굉장히 가볍고 은은했는데, 헬리오트로프와 바이올렛, 그리고 아니스의 향으로 시작한 것은 똑같았으나 그린한 느낌은 크지 않았다. 시향지와 큰 차이가 없었으나, 4분 후에 아니스 향이 갑자기 굉장히 강렬해지면서 거의 매콤한 향이 났다. 6분이 지나자 달콤한 플로럴향이 다시 주를 차지했고, 매콤한 향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10분이 지나자 부드러운 파우더리함에 약간 플로럴함을 가미한 듯한 향이 났고, 16분이 지나자 화이트 머스크향이 파우더리한 플로럴함과 함께 나기 시작했는데, 나는 화이트 머스크 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다. 20분이 지났을 즈음 점점 더 화이트 머스크향이 강해져서 약간의 플로럴함을 제외하면 거의 화이트 머스크 향만 났다. 25분이 지난 후 다시 플로럴함과 파우더리함이 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화이트 머스크가 남아있었다. 34분이 지나자 향이 훨씬 옅어지고 파우더리함이 남아있었다. 잔향은 아주 옅은 파우더리함과 화이트 머스크향이었으며, 대략 2시간 정도 유지되었다.


3. 빈티지 퍼퓸: 시향지에서


시향지에서는 아이리스, 바이올렛, 그리고 헬리오트로프의 향이 났으나, 오 드 뚜왈렛보다 훨씬 진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느낌이 있었다. 2분이 지나자 향이 조금 더 플로럴해졌는데, 약간의 아니스 특유의 스파이시함이 났다. 4분이 지나자 이 파우더리한 플로럴 셋과 함께 오렌지 블로섬 향이 나기 시작했다. 오렌지 블로섬의 인돌릭함이 향 전체에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기 시작했는데, 피부에서만큼 어둡지는 않았지만 오 드 뚜왈렛보다는 확실히 어두웠다. 점점 플로럴하고 파우더리한 느낌, 동시에 가벼운 느낌이 나는 상태로 진행되다가 34분쯤에 바닐라와 앰버향이 섞이기 시작했고, 파우더리함, 플로럴함을 뒷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이 상태로 계속 진행되다가 10시간 정도 후에 사라졌다.


4. 빈티지 퍼퓸: 몸에서


피부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아이리스, 바이올렛, 헬리오트로프의 향이 났다는 점은 같으나, 바닐라와 앰버의 무겁고 어두운 향이 시향지에서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2분이 지나자 향의 플로럴함이 강조되었고, 아니스의 매콤한 향이 있었으나, 4분 후 오렌지 블로섬이 나타난다는 점은 같았다. 그러나 7분이 지나자 오렌지 블로섬이 더욱 시럽같은 달콤함과 어두운 향기를 내고, 다른 파우더리한 플로럴함은 이것이 너무 달지 않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11분 후 향 자체는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나는 베르가못 알러지가 있는데 이게 슬금슬금 나타나서 피부가 붉게 변하고 따갑기 시작했다. 베르가못 향 자체는 따로 느낄만큼 강렬하게 느껴지진 않았고, 아마도 오렌지 블로섬의 어두운 향 어드메에서 향이 조금 더 밝게끔 보조적인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향은 점점 더 어두워지다 25분쯤이 지나자 바닐라와 앰버향이 오렌지 블로섬, 그리고 파우더리한 플로럴의 그림자에서 나와 제대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34분이 지나자 이 파우더리한 플로럴+오렌지 블로섬+바닐라와 앰버에 애니멀릭한 향이 나기 시작했고, 44분 후에는 우디한 어두운 향까지 더해졌다. 55분 후에는 오렌지 블로섬의 인돌릭함에 자스민 향이 더해져서 더욱 향을 조금 더 묵직하게 가져갔고, 1시간 8분 후에는 앰버와 오렌지 블로섬이 주가 된 가운데 파우더리한 플로럴함이 향을 옅은 베일처럼 감싸고 있었고, 카네이션의 스파이시한 클로브향과 약간의 장미향도 위에 말한 조합과 더불어 나기 시작했다. 베티버의 우디함도 느껴졌다. 2시간 23분 후에는 앰버와 바닐라, 파우더리한 플로럴향으로 변했고, 잔향은 약간의 바닐라와 파우더리한 플로럴함으로 끝났으며 12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아프레 롱데에 대하여


겔랑의 아프레 롱데는 정말 뭐랄까, 여리면서도 낭만적인 향수(노스탤지아)를 느끼게 하는 듯한 향이다. "비 온 뒤"라는 이름에 맞게, 향 자체도 파우더리함에도 불구하고 촉촉하고 수채화같은 느낌, 동시에 빈티지 퍼퓸에서는 어둑어둑한 하늘의 느낌도 있었지만, 동시에 우리가 마치 비 온 다음 어두운 구름 사이 한 줄기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풀과 꽃에 맺힌 빗방울을 보듯이, 행복한 느낌 역시 존재한다. 예전에 아프레 롱데 오 드 뚜왈렛을 친구에게 뿌려줬을 때, 마치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 가서 회전목마 등을 타는 기억을 떠올리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된다.


가끔 뢰르 블루가 유화라면, 아프레 롱데는 수채화라는 식의 표현을 많이 본다. 아프레 롱데 자체는 뢰르 블루랑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으며, 분위기도 비슷하고, 많은 부분 비슷한 향조를 공유하지만, 실제 리뷰에서 읽을 수 있듯이 둘만의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 아프레 롱데 같은 경우 빈티지 퍼퓸에서 현대의 오 드 뚜왈렛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오렌지 블로섬 향이 강렬하게 나고, 좀 더 촉촉한 느낌이 분명 존재한다. 둘 다 아름다운 향이므로, 각각 시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끝맺으며


미츠코부터 시작해서 뢰르 블루, 지키, 샬리마를 지나 아프레 롱데까지 계속 겔랑 제품만 리뷰한 것 같아서 내 겔랑빠의 면모를 보여준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다음번엔 뭘 할지 지금 고민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겔랑 샬리마 (192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