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야생의 사향노루를 잡아 죽인 후 향낭을 채취해 알코올에 녹여 그 향을 맡아본 적이 없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시를 들지 않아도, 사람들은 향수에 들어가는 여러 향에 대해 잘 모른다. 장미향, 후추향, 라일락향 같은 대중적인 향은 그나마 사람들이 대략 파악하고 있지만, 예를 들어 마이소르산 샌달우드(백단향, 그 중에서도 노산백단)이나 앰버그리스(용연향)에 대해서는 일반인이 알기도 어렵고, 바이올렛향이나 카네이션향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향제비꽃이나 향카네이션이라고 일부러 찾지 않으면 향이 없는 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뭔 향인지 평생 모르고 살 수 있다. 하물며 이제 향의 종류를 지칭하는 여러 용어를 읽기 시작하면 대체 이건 무슨 뜻인가 하고 더욱 막막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향의 유형과 향을 설명할 때 쓰이는 많은 용어를 정리할 것이다.
향의 유형
향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플로럴(플로럴, 소프트 플로럴, 플로럴 앰버), 프레쉬(아로마틱 푸제르, 시트러스, 워터, 그린, 프루티), 우디(우드, 모시 우드(시프레), 드라이 우드), 앰버(소프트 앰버, 앰버, 우디 앰버).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다. 플로럴 앰버같은 경우 앰버와 플로럴과 겹치고, 우디 앰버는 우디와 앰버와 겹치고, 프루티는 프레쉬와 플로럴 사이에 있고, 아로마틱 푸제르 같은 경우 프레쉬와 우디 사이에 있다, 여기서 앰버 계열의 향수에 대해서는 원래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것이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에 서양인들이 동양, 특히 중동에 가졌던 환상-향락, 화려함, 사치스러움 등-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단어기 때문에 현재 서양쪽에서는 오리엔탈보다는 앰버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빈티지 향수를 찾다 보면 오리엔탈이라는 단어를 쉬이 볼 수 있긴 하지만, 현재 표기법에 따라 적는게 낫다 생각하여 일단 앰버라고 표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네 개 안에서도 여러가지로 세분화되기 때문에, 참고자료로 마이클 에드워즈라는 저명한 향수 전문가가 1984년에 고안해낸 향 분류법을 보여주는 자료를 첨부하겠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맨 위 12시 방향 빨간색 깔대기같은 것들이 있는 것부터 시계방향으로 돌아, 모든 향수는 이렇게 분류된다: 소프트 앰버, 앰버, 우디 앰버, 우드, 모시 우드(시프레), 드라이 우드, 아로마틱 푸제르, 시트러스, 워터, 그린, 프루티, 플로럴, 소프트 플로럴, 플로럴 앰버. 물론 여기에 나오지 않는 향도 있는데 그게 바로 구르망 계열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향수를 만들 때 이 향 계열 중 하나만으로 딱 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서 샌달우드와 장미향이 주가 되는 향수를 만든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것은 우디 플로럴 향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장미향과 딸기향이 주가 되는 향수의 경우, 프루티 플로럴 향이 될 수 있다.
어쨌건, 향 계열이 궁금해서 클릭했는데 생소한 단어가 15개나 등장했다. 모르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왔다고 해서 긴장할 필요는 없다. 찬찬히 이해하기 쉬운 것부터 살펴보자. 시트러스는 레몬, 오렌지, 라임, 베르가못, 귤, 자몽 같은 과일을 말하는 것이다. 워터는 바닷물, 강물, 비 내린 후 냄새 등 물기를 표현하는 향이다. 아쿠아나 마린 노트라고 하기도 한다. 그린은 나뭇잎이나 잔디 등을 표현하는 향이다. 프루티는 과일향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시트러스가 아닌 과일이 주로 여기에 들어간다. 구르망은 "후각적 디저트"라고 묘사되기도 하는 향인데, 주로 디저트류 음식의 향, 예로 솜사탕, 카라멜, 초콜릿, 커피 같은 향이 들어간 향이다. 전기구이 통닭이나 마라탕이나 가지나물 등의 향이 들어간 대중적으로 성공한 향수가 아직 안 나와서인지, 구르망이라는 단어 자체는 디저트가 아닌 요리에도 쓰일 수 있는데 아무튼 지금까지는 이런 달콤한 디저트에 많이 쓰이는 식재료의 향이 들어간 향수 계열을 가리킨다. 이렇게 구르망 계열과 프레쉬 계열을 대강 해결했다. 이제 플로럴계열, 우디계열, 아로마틱 푸제르, 그리고 앰버계열만 남았다. 그나마 직관적인 플로럴부터 설명하겠다.
1. 플로럴 계열
플로럴은 꽃향이라는 뜻이다. 이렇게만 보면 복잡할 게 없어 보인다.
플로럴한 계열의 향수를 나눌 때 표현방식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솔리플로어와 플로럴 부케가 그것이다. 솔리플로어란 명확히 한 꽃을 주제로 하고 그걸 조향사가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향이다. 예로, 디올 디오리시모의 경우 은방울꽃을 주제로 표현했고,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의 로즈 토네르(윈 로즈)의 경우 장미를 주제로 표현한 향수다. 사실 조향하기 어려운 향 계열 중 하나인데, 예로 장미를 들자면, 장미향만 들어간 경우 사용하는 사람이 따분해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향이 들어가긴 하나 그게 장미향의 여러 부분을 강조하려는 목적에 부합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향과 차별점을 두기 위해 자신만의 특색이 있어야 한다. 장미같이 역사가 긴 꽃향의 경우 난이도가 더욱 올라간다. 요새는 베티버나 패츌리 등 다른 향을 이런 방식으로 조명하는 향수도 나오기 때문에, 솔리플로어 대신 솔리노트라고 하기도 한다.
플로럴 부케는 솔리플로어와 달리 꽃향이 들어가긴 하나, 한 꽃이 메인이 되진 않고 여러 꽃이 결합하여 마치 추상적인 꽃다발을 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물론 이 중에서도 주로 나는 꽃향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다른 꽃향들도 가세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하면 플로럴 부케가 된다. 예로 샤넬 가브리엘 같은 경우 여러 꽃향-일랑일랑, 자스민, 오렌지 블로썸, 튜베로즈-가 합쳐져서 하나의 플로럴 부케가 된다.
아무튼 마이클 에드워즈의 플로럴 계열 분류으로 돌아가기로 하자. 이 체계에 따르면 플로럴은 소프트 플로럴, 플로럴, 플로럴 앰버로 나눠진다. 소프트 플로럴은 알데하이딕/알데히딕 플로럴이라고도 불린다. 알데하이드(알데히드라고 쓰는 경우도 있으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여기서는 원어 발음에 더 가까운 알데하이드라는 용어를 쓰겠다)가 플로럴, 즉 꽃향과 만나서 부드럽고 파우더리하고(파우더리라는 단어는 향수에서 많이 쓰는 용어인데, 분가루같은, 화장품같은 향을 뜻한다), 많은 경우 하나의 구체적인 꽃(장미, 자스민 등)이 아닌, 추상적인 "꽃"향이 난다. 머스크가 베이스 노트로 들어가는 사례가 많아, 부드럽고 포근한 향을 낸다.
플로럴은 꽃향이 주가 되는 향수를 뜻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플로럴이건 우디건 뭐건 간에 사람들이 주로 착각하는게 이 향이 무조건 직접 꽃에서 추출한 향료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꽃을 여러방식으로 추출해 향료를 내는 경우가 많으나, 어떤 꽃의 경우에는 이게 불가능하다. 예로 은방울꽃 같은 경우 현존하는 추출방식으로는 향료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꽃향을 섞거나, 인공향을 사용해 향을 낸다. 그렇다고 해서 자연향료가 인공향료보다 좋은 것은 아니다. 먼저, 자연에 존재하는 여러 성분이 땅콩처럼 치명적인 알러지를 유발하기도 하고, 광대버섯이나 복어독도 자연성분이지만 사람에게는 유독성분이다. 또한 자연향료같은 경우 그 해 해당 지역의 날씨에 따라 향의 질이 바뀌기도 한다. 인공향료는 이런 식으로 날씨에 따라 기복이 존재하진 않는다. 물론 자연에서 추출한 향은 그 향을 내는 분자 외 여러 다른 분자들이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어 더 풍부하고 아름다운 향을 내는 경우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플로럴 앰버는 사실 앰버가 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넣을까 뺄까 많이 고민했다. 쉽게 말하자면 플로럴 계열에 레진(향수에서 레진은 레진공예할때의 레진이 아닌, 나무 진에서 추출한 향료를 말한다), 바닐라, 스파이스 등으로 따스한 느낌을 첨가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게 플로럴을 분류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이 외에도 플로럴을 분류할 때, 어떤 종류의 플로럴인지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로지 플로럴, 스파이시 플로럴, 옐로우 플로럴, 그린 플로럴, 기타 등등). 그러나 이 분류체계는 아직도 정리가 덜 되어서, 어떤 체계를 고르는지에 따라 플로럴 향에 대한 구별이 달라지곤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분류가 하나 존재하는데, 바로 화이트 플로럴이다.
왼쪽 위에서부터 가드니아(치자꽃), 화이트 자스민, 아라비안 자스민, 튜베로즈, 오렌지꽃이다.
화이트 플로럴은 직역하면 흰 꽃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백합이나 은방울꽃이 들어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고 요새는 프란지파니도 여기에 포함하기도 하고 그러는데, 어쨌건 제일 대표적인 화이트 플로럴 4가지 종류만 모아보았다(화이트 자스민과 아라비안 자스민은 둘 다 자스민이긴 한데 약간 향이 다르지만, 그래도 같은 자스민으로 치자). 하지만 꽃이 하얀색이라는 것만으로 화이트 플로럴이 되진 않는다. 흰 민들레, 흰 장미, 흰 매발톱꽃이 있다고 해서 이 꽃들이 화이트 플로럴이 되진 않는다. 화이트 플로럴의 공통점은 이들이 인돌릭한 향을 내뿜는다는 뜻이다.
인돌릭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설명하기 어렵다. 나는 이 모든 꽃을 직접 키워서 맡아보기 전까지는 사실 감을 잡기 어려웠다. 향을 글로 표현하는 것의 한계라고 해두자. 그렇다고 이걸 다 키우라는 뜻은 아니다. 희석되지 않은 인돌은 멘솔과 뭔가 썩어가는 것 같은 향이 나는데, 보통 향수에서 "인돌릭하다"라고 쓸 때는 약간 머스키한, 동물적인 애니멀릭(동물이나 땀에 젖은 피부같은 향)한 향이 같이 나는 묵직한 꽃향을 이렇게 부르는 것 같다. 인돌에 민감한 사람, 예로 나의 어머니 같은 경우에는, 다소 오줌냄새같은 지린내가 난다고 표현하던데, 솔직히 나는 그정도까지 인돌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좋은 꽃향으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 향수는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향수 중 하나다. 울렁거린다는 사람도 있고, 나와 같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Y의 경우 화이트 플로럴이 정말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답게 발향되어 화이트 플로럴 향수를 즐긴다.
요새 나오는 화이트 플로럴 향수에서는 이런 인돌릭한 향이 강하게 나는 경우를 많이 보지 못하였다. 좀 더 깔끔하게, 깨끗한 향을 지향하는게 요새 트렌드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 향이 궁금하다면 비교적 싸게 구할 수 있는 향 세 가지를 추천하겠다.
1. 러쉬 러스트
러쉬 러스트는 강한 자스민 향이 나는 향수다. 러쉬 제품은 사실 향 초보인 사람들이 시향해보고 이게 대략 무슨 향이구나 하고 파악하기 좋다. 이 중에서도 러스트는 자스민 향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에 인돌릭한 면모를 보인다.
2. 딥티크 올렌느
역시 자스민 향이 나는 향수다. 등나무 향이나 아카시아 향이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많은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등나무 꽃이나 아카시아 꽃에서도 인돌향이 나기 때문이다. 참고로, 해외 향수계에서 우리가 아는 아카시아는 아카시아라고 불리지 않고 블랙 로커스트라고 불리고, 까시(카시스가 아니다! 카시스는 블랙커런트다)나 미모사를 아카시아라고 부른다.
3. 세르주 루텐 플뢰르 도랑줴
플뢰르 도랑줴는 오렌지 블로섬이 주가 되는 향수인데, 여기에다 쿠민, 즉 양고기집에 가면 찍어먹으라고 나오는 쯔란이 들어가서 더욱 더 애니멀릭한 향이 난다. 그래서 굉장히 강하고 묵직할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화이트 플로럴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이 때문에 추천하기 어렵고 힘들다. 여기에 적힌 화이트 플로럴 향수가 싫다고 해서 모든 화이트 플로럴이 싫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이 좋아질 수도 있다. 인돌릭하지 않은, 깔끔한 화이트 플로럴 향수도 존재한다. 튜베로즈나 가드니아 같은 경우 더욱 추천하기 망설여진다. 가드니아는 내가 느끼기에 실제 치자꽃의, 그 버섯이나 블루 치즈 같은 향까지 포함해서 비슷한 향을 내는 향수가 많지 않을 뿐더러, 튜베로즈 향 같은 경우에는 정말 미치도록 인돌릭하거나 굉장히 깔끔하고 그린한데, 어떤 친구가 "고급 곽티슈 향 같다"라고 한 다음부터 섣불리 추천하기 어려워졌다. 이 공간에서 향수를 이것저것 추천하는 것은 원래 내가 생각해 놓은 공간의 용도가 아니기도 하고, 아무튼 이 정도로 플로럴에 대해서는 끝마치겠다. 다음 글은 앰버 향과 푸제르 향에 대해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