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마틱 푸제르 계열의 향은 예전에는 아로마틱과 푸제르가 분리되어서 불리기도 했다. 아로마틱한 향은 주로 허브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라벤더, 바질, 로즈마리, 세이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그러면 푸제르 향은 무엇일까? 사실 이 글을 쓸지 말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봤다. 브런치에 이미 푸제르가 뭔지 다룬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toledo900/3 이 링크에 가면 읽어볼 수 있는데, 그래도 설명을 안 하고 링크를 단 다음에 이걸 읽으세요 라고 하는 것은 좀 마음에 걸리기 때문에 여기에서 조금 더 설명하겠다.
이 링크에서 나왔듯이, 푸제르는 프랑스어로 고사리, 혹은 양치식물류를 뜻하는 단어다. 대부분의 고사리는 향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은 처음으로 이 향을 만든 우비강의 푸제르 로열(1882)에서 따온 계열의 이름이다. 이 향수는 처음으로 통카빈에서 추출해낸 합성 쿠마린(바닐라같은 향이 난다)이 들어가, 첫 모던 향수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 향수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에 존재하는 향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아닌 고사리라는 "아이디어"를 향으로 만든 것이다. 푸제르 로열을 조향한 폴 파케는 "만약 신이 고사리에게 향을 줬다면, 푸제르 로열같은 향이 났을 것이다."(마이클 에드워즈, Perfume Legends, 1997, pg.12)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이 푸제르 로열이 성공한 이후 여기에서 쓰인 향의 구조가 하나의 향 계열을 탄생시켰는데, 그게 바로 푸제르 계열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우비강 푸제르 로열. 오 드 코롱 버젼이다.
푸제르의 기본 구조는 라벤더-오크모스-쿠마린으로 정의되는데, 요새는 오크모스가 여러 이유로 규제가 심하기 때문에 이걸 빼고 다른 향을 넣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용으로 나온 향수에 많이 쓰였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이발소 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남성용으로 나왔다고 해서 여성들이 쓸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 이 계열의 향이 좋다면 성별 무관하게 편히 쓰고 다녔으면 좋겠다. 어쨌건, 예를 들어서 우디한 향을 넣고 확대하면 우디 푸제르, 탑의 라벤더와 함께 허브향을 강조하면 아로마틱 푸제르, 시트러스한 향을 많이 넣으면 시트러스 푸제르 등으로 여러 방면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쓰이고 있다.
3. 우디 계열
이것 역시 직관적이다. 나무 향이 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주의할 점은 이것은 나무 잎사귀 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그린 향이다. 우디 향은 나무 껍질, 혹은 나무 본연의 향이다. 목공예를 해봤거나, 통나무집에 들어가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나무로 된 가구가 많이 쌓여있는 곳에 가면 나무향을 맡을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우디한 향이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모시 우드, 즉 시프레 계열은 빼고 우드와 드라이 우드 계열만 설명하겠다. 시프레는 설명하다보면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따로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 왔다갔다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다.
마이클 에드워즈의 우드 계열의 분류에서 모시 우드를 빼면 우드와 드라이 우드가 남는다. 우드 향은 나무 향이 주가 되는 향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보통 우디한 향수에는 샌달우드(백단향), 오우드(침향), 시더우드(삼나무), 소나무/전나무, 측백나무, 향나무, 패츌리, 베티버가 많이 쓰인다. 샌달우드는 크게 나누면 마이소르산, 혹은 인도산 샌달우드, 그리고 호주산 샌달우드로 나뉜다. 마이소르산 샌달우드는 과도한 벌목으로 인해 90년대에 멸종위기를 맞아, 지금은 인도 정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빈티지 향수를 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맡아볼 일이 없겠지만, 대략 묘사하자면 나무향이 나긴 하는데 동시에 버터와 크림향이 난다. 굉장히 부드럽고, 매끄럽고, 진한 향이 난다. 이와 비교해서 호주산 샌달우드는 좀 더 날카롭고 나무향이 더 많이 나고, 마이소르산 샌달우드만큼 부드럽거나 달콤한 향이 나진 않는다.
오우드, 혹은 아가우드라고도 불리는 침향의 경우에도 지역마다 차이가 나는데, 나는 오우드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잘 알고 있지 않아 여기에 설명하기가 어렵다. 또한, 오우드 자체가 굉장히 희귀한 나무고 비싸서 요새는 합성향을 많이 쓰고, 자연산 오우드를 쓴다고 해도 보통 상업적 향수에서는 야생 오우드 나무를 찾아 벌목하는 것이 아니라 플랜테이션 형식으로 키워서 오우드향을 내게끔 균을 주입한다(오우드는 정확히 말하면 나무가 병충해나 기타 충격을 입었을 때 자신의 몸을 보호하게끔 물질을 분비하는데, 거기에서 나는 향이다). 이후 추출방식이나 기타 기술을 통해 인도산, 보르네오산, 라오스산 오우드에서 나던 향과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진짜 야생 오우드 향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방식을 쓴다.
다시 향수 계열로 돌아가서, 드라이 우드향은 무슨 뜻일까? 드라이 우드는 우디한 향에 레더나 토바코 향을 넣어서 좀 더 연기 냄새 같은, 스모키한 향을 첨가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더 건조하고, 더욱 메마른 것 같은 뉘앙스를 가지게 된다.
4. 시프레 계열(모시 우드)
시프레도 푸제르처럼 근대에 와서 구조가 잡힌 계열이다. 마이클 에드워즈의 향 유형에는 모시 우드(여기에서 모시는 mossy, 즉 이끼같다는 뜻이다)라고 적혀있는데, 사실 이 이름보다는 시프레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그냥 시프레라고 쓰기로 했다. 이 역시 https://brunch.co.kr/@toledo900/4 이 분이 잘 써놨기에 굳이 더할 게 있을까 라는 게으른 생각을 하다, 그래도 써야지 라는 마음에 설명을 추가하기로 정했다.
사실 어떤 향을 시프레라고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명칭이고,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코티의 시프레가 시프레라는 이름을 향수에 붙이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많이 보는 착각 중 하나인데, 코티의 시프레는 현재 우리가 시프레라고 부르는 향 계열의 구조를 정해놓게 된 것이지, 실제로 이 이전에도 시프레는 많았다. 잠시 역사를 다루자면, 시프레는 키프로스 섬을 가리키는 말으로서, 키프로스 섬은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향수로 유명했다. 중세시대에는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오는 기사들이 키프로스 섬에서 향료를 사오곤 했고, "oiselets de Chypre"라고 해서, 직역하면 시프레의 새인데, 새 모양으로 향료를 뭉쳐서 천천히 녹여 방에 향을 채우곤 하는 것들이 유행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조향사들은 각자 "시프레"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1857년에 셉티무스 피세라는 사람은 시프레를 "예스러운" 향수라고 부르면서, 앰버그리스, 바닐라, 아이리스, 머스크, 그리고 장미향이 주가 되는 향수 레시피를 적기도 했다. 겔랑은 1840년에 오 드 시프레, 1854년에 시프리시메, 그리고 1909년에 시프레 드 파리라는 향수를 만들었고, 림멜은 1880년에 시프레, 로저 앤 갈레의 경우 1893년에 시프레, 루빈은 1898년에 시프레, 고데는 1908년에 시프레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코티의 시프레가 시프레라고 이름붙인 첫 향수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코티의 시프레는 현대에 우리가 아는 시프레 계열을 탄생시킨 향수이다. 이 향이 너무 혁신적이었고 시프레라는 명칭을 퍼트린 장본인이기 때문에, 푸제르 계열이 우비강의 푸제르 로열에서 나왔듯이, 현대의 시프레 계열도 코티의 시프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코티 시프레. 왼쪽은 퍼퓸 엑스트레, 오른쪽은 오 드 뚜왈렛 버젼이다.
푸제르와 마찬가지로 시프레도 역시 구조가 존재하는데, 베르가못-라다넘-오크모스가 시프레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푸제르처럼 여기에 조향사의 재량에 따라 더 많은 것을 넣고, 다른 것을 강조하고 이런 식으로 여러 방향을 가지고 시프레향을 다양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과일향을 넣으면 프루티 시프레가 되고, 꽃향을 강조하면 플로럴 시프레, 알데하이드를 넣으면 알데하이딕 시프레, 레더향을 넣으면 레더 시프레, 이런 식으로 다변화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푸제르의 경우 상대적으로 오크모스는 덜 중요하고 라벤더와 쿠마린이 더 중요하다. 그러나 시프레의 경우 베르가못과 오크모스, 특히 이 오크모스가 시프레의 정체성이자 중심이 된다. 베르가못도 물론 광민감성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것은 그래도 합성향료로 어느 정도 대체가능한 반면, 오크모스는 오크모스 특유의, 이끼스럽고 약간 우디하고 숲이 연상되는 향이 있을 뿐만 아니라 향이 더 오래 남게 해주고, 향수에 자신만의 질감을 넣어주어 굉장히 푹신하고 안락한, 고급스러운 느낌을 넣어주는데, 이걸 현재로는 합성향료로 대체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이 때문에 현존하는 여러 클래식 고전 빈티지 향수, 예로 겔랑 미츠코, 디올 미스 디올 오리지널, 로베르트 피게 방디, 기타 등등 여러 향수를 만들던 브랜드에선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한 가지 방법은 알러지 유발 성분을 일으키는 분자를 오크모스에서 빼고 넣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오크모스가 주는 향과 그 효과를 다른 향으로 대체하는 것인데, 예로 샤넬의 31 뤼 깡봉이나, 딥티크의 오 카피탈 등이 있다. 그러나 "오크모스 순수주의자들"은 오크모스가 들어가지 않는 시프레는 진짜 시프레라고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샤넬의 31 뤼 깡봉이나 딥티크의 오 카피탈에 대해 특별히 오크모스가 들어간 시프레스럽다고 느끼진 못했지만, 이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이고 내가 고전적인 빈티지 시프레 향수를 너무 너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주관적인 평을 조금 넣자면, 내가 시프레 향수를 좋아하는 이유는 시프레 향수는 현재에 나오는 향수처럼 달고 상큼하고 발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프레 향수를 처음 맡았을 때 내 반응은 이게 왜 향수라고 하고 팔리지? 왜 이런 향이 몸에서 나고 싶어하지?에 더 가까웠다. 시프레는 처음부터 자극적인 달콤함과 향기로움으로 당신을 매혹시키지 않는다. 서서히 즐겨야지만 그 아름다움이 천천히 몸에서 피어나는데 나는 이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고, 당신이 클래식한 빈티지 시프레를 싫어한다고 해서 당신이 교양이 없거나 부족하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