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mellperfumes May 18. 2023

디올 디오리시모 (1956)

빈티지 향수 리뷰

들어가며


프랑스에서는 은방울꽃이 행운의 상징이고, 5월 1일에 서로 은방울꽃을 건네는 전통이 있다. 향수 노트에 은방울꽃을 프랑스어로 뮤게라고 적어놓는 경우가 흔하니 그런 경우엔 은방울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른 데서도 여러 사람들이 많이 말했듯이, 은방울꽃은 아주 최근까지 꽃에서 직접 향을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향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향료를 써서 은방울꽃 향을 재현해야 했는데, 여기에는 릴리알과 하이드록시시트로넬랄이라는 향료가 주 역할을 했고, 해당 향료들이 최근에 건강상 이유로 제한되거나 금지되자 은방울꽃 향을 재현하기가 조금 더 어려워졌다. 물론 이후 여러 대체향료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번에 피르메니히라는 향료회사가 은방울꽃에서 신기술을 이용해 직접 향을 추출하는 법을 찾아냈다고 했지만 현재 나오는 은방울꽃 향수들이 이전의 은방울꽃 향수만큼 풍부하고 아름다우며 깊이감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가볍고 신선하고 그린한 느낌에 초점을 두는 것을 보면 이전의 풍성함을 따라가기엔 아직 힘들어 보인다. 비슷하게, 향료를 직접 추출하지 못하거나 어렵거나 결과물이 해당 꽃향과 다른 향을 내어서 다른 향료로 꽃 향을 재현하는 경우도, 혹은 꽃 자체에 향이 없거나 매우 약해서 꽃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경우도 있다.


크리스챤 디올의 은방울꽃에 대한 애정,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의 디오리시모를 만들게 된 계기, 기타 이 향수에 대한 여러가지를 말하고 싶지만, 서론이 너무 길어지면 좀 그래서, 뒤에 쓰기로 하겠다.


피르메니히의 새로운 향료 추출법이 궁금하다면 밑의 기사를 읽어보기 바란다. 모든 생물의 세포 안에 있는 물을 이용해서 어떻게 향을 추출한다고 하는 거 같은데, 나는 이쪽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원리를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매우 흥미롭다. 한글 기사는 여기 있다.

https://www.beautynury.com/news/view/96093/cat/10




향수 리뷰


내가 가진 빈티지 디오리시모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오 드 뚜왈렛이고, 다른 하나는 아마도 1960년대 후반에 나왔을 퍼퓸 엑스트레다. 만일 왼쪽의 오 드 뚜왈렛 병과 비슷한데 마개에 디올의 하운드투스 문양(병 라벨에 있는 검은색/흰색 문양)이 있는 게 보이면, 그건 1950~60년대의 오 드 뚜왈렛 병이며 소장가치가 매우 높다. 비슷한 시기의 오 드 코롱 병도 마찬가지로 소장가치가 있으며 퍼퓸 엑스트레와 비교했을 때 저렴하니 구매를 추천한다.


*추가: 이 글을 쓴 후 내가 가진 디오리시모가 1960년대 후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전엔 1950-60년대 사이의 물건이라고 적어놨는데,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수정하겠다.


현재 나오는 디오리시모는 오 드 퍼퓸, 오 드 뚜왈렛이 있다. 무슈 디올의 작품 라인으로 나오는데, 위에서 말한 은방울꽃 향을 내는 향료에 대한 규제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다소 반감되었고, 특히 오 드 퍼퓸의 경우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가 만든 디오리시모가 아니라 2009년에 프랑수아 드마쉬라는 다른 조향사가 만든 디오리시모기 때문에, 원래 디오리시모의 의도된 바하고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 드 뚜왈렛의 경우에는 프랑수아 드마쉬가 재해석했다는 말도 있고 에드몽 루드니츠카의 원래 향을 보존한 채로 규제되는 향료만 이리저리 손댔다는 말도 있기에 어느 것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프랑수아 드마쉬도 매우 뛰어난 조향사고, 그가 만든 디오리시모(들?)도 훌륭한 향수인 것은 맞다. 빈티지 디오리시모를 모르는 사람이 현재 나오는 디오리시모를 맡으면 이 역시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기에, 여기에는 현재의 규제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쏟아내고 싶지 않다.


개인소장한 디올 디오리시모. 왼쪽은 1970년대 오 드 뚜왈렛, 오른쪽은 1950~60년대 퍼퓸 엑스트레


1. 디오리시모 오 드 뚜왈렛 (1970년대)


디오리시모 오 드 뚜왈렛은 아주 그린하게 시작한다. 풀, 잎사귀 등의 향이 나기 시작하는데, 아주 살짝 시트러스 향도 섞여 있고, 2분 후 이 사이에서 은방울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비교적 가볍고, 그린하고, 신선한 느낌이 많이 나며, 4분 후에도 그 반짝이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면서 간다. 9분 후에도 깔끔한 은방울꽃 특유의 향이 계속 주가 되며 히아신스같은, 조금 그린한 향이 섞인 채로 유지되다가 34분 후에야 약간의 다른 꽃들, 특히 자스민의 인돌릭함과 라일락같은 향이 느껴지지만, 아직도 주는 맑은 은방울꽃이다. 56분 후에는 반짝이는 은방울꽃과 함께 우디한 향 조금, 시벳향 아주 조금이 섞여 은방울꽃을 받쳐주지만, 그래도 은방울꽃의 청량한 느낌이 가볍고 은은하게 계속된다. 대략 3시간 정도 지속된 것 같다.


2. 디오리시모 퍼퓸 엑스트레 (1960년대 후반)


디오리시모 퍼퓸 엑스트레 역시 은방울꽃과 그린함으로 시작하지만 훨씬 더 플로럴한 뉘앙스가 많이 있다. 그린함은 매우 소량 느껴지고 은방울꽃 역시 오 드 뚜왈렛보다 더 풍성하고 마냥 맑기보다는 다소 깊이감이 있는 은방울꽃 향이다. 2분 후 향은 조금 더 강렬하고 플로럴해진다. 3분 후에도 마찬가지인데, 은방울꽃 향이 안 난다는 말이 아니다. 은방울꽃 향임은 당연하지만, 여러가지 요소가 은방울꽃을 더욱 은방울꽃스럽게 만들어줘서 풍성하고 단순해보이지만 그 안에 많은 복잡한 면이 있는 풍부함을 선사해준다. 자스민의 인돌릭함과 장미향이 언뜻 모습을 비춘다. 9분 후에도 마찬가지로, 마치 여러 사람의 얼굴 사진을 조합해서 멀리서 보면 하나의 큰 사람 얼굴 사진으로 보이게끔 모자이크 하듯이, 가까이 코를 들이대면 꽃밭같은 풍부함이 있지만 멀리서 맡을 때는 향기로운 은방울꽃의 맑은 향으로 느껴지게끔 한다. 계속 이런 플로럴함이 이어지다가 56분쯤 가면 플로럴함에 우디함과 어두운 그린 향이 느껴진다. 은방울꽃은 나무 그늘 하에서 잘 자라는 반그늘-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인데, 마치 실제 은방울꽃을 묘사하면서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무와 떨어진 이파리, 이끼 등을 함께 스케치한 듯 나무 껍질 향과 숲 바닥 향이 섞인 느낌이다. 꽃향 역시 아까전의 은방울꽃+장미/자스민보다는 은방울꽃+라일락과 백합이 더 많이 느껴진다. 1시간 18분 후엔 다시 은방울꽃이 주가 되는데 이번에는 자스민의 인돌릭함과 꼬릿한 시벳향이 조금 느껴지고, 2시간 1분 후에는 은방울꽃과 로즈마리같은, 허브의 아로마틱한 향이 느껴진다. 2시간 45분 후에도 은방울꽃과 시원한 아로마틱함이 느껴지다가 샌달우드의 우디함이 다시 들어오고 시벳의 애니멀릭한 꼬릿함이 섞이는 식으로 서서히 추상적으로 변한다. 3시간 2분 후, 은방울꽃은 더 이상 신선하거나 맑기보다는 나른한 플로럴함으로 변하지만, 그 밑에 약간의 애니멀릭함과 그린함, 샌달우드의 밀키한 느낌이 숨어 있다. 이 상태로 10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디오리시모에 대하여


왜인지 한국에서는 겔랑의 뮤게만이 참된 은방울꽃 향의 정석이며 가장 그 정수를 담아내고 있다고 알려진 것 같다. 아름다운 향수병 디자인과 매우 비싼 가격과 한정판 향수라는 것 모두 그런 소문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겔랑의 뮤게는 그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예전에 나왔던 빈티지 겔랑 뮤게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나오는 겔랑의 뮤게는 매년마다 다른 향의 조합으로 나오며, 그 때문에 어떤 년도에는 더욱 사실적이거나, 아름답거나, 풍부한 은방울꽃 향이지만 다른 년도에는 매우 날카롭거나, 은방울꽃보다는 라일락에 가깝거나, 향이 은방울꽃에서 흔한 화이트 플로럴 향으로 변하거나, 아니면 100만원을 넘는 가격에 비해 몹시 격이 떨어지는 단조로운 향이다. 내가 아무리 겔랑을 사랑해도 이 의견은 굽히지 않을 것이다. 비싸기 때문에 더욱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정도 가격이면 차라리 매우 아름다운 뮤게 향을 동일하게 만든 다음 매년 향수병 디자인만 바꿔가며 팔 수도 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매해 향을 바꾼다. 사실 매우 현실적인 은방울꽃 향이라 하더라도 100만원을 넘는 가격의 가치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반면 향수 역사가 더 긴 유럽과 미국에서는 디올의 디오리시모, 특히 빈티지 디오리시모를 은방울꽃의 고전, 정석이라고 부른다.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는 우리에겐 장 클로드 엘레나의 스승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20세기 최고의 조향사 중 한명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이 향수가 만들어진 1950년대에는 다소 달콤한 향(에스티 로더의 유스 듀 등을 생각하면 편하다)이 유행하고 있었고, 루드니츠카씨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마이클 에드워즈(향기를 분류한 아로마 wheel을 만든 사람이다)의 Perfume Legends라는 책의 페이지 111에서 루드니츠카는(번역은 내가 했다), "향수를 너무 음식에서 나는 향의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을 뿐더러, 너무 많은 향료를 넣고 있다. 향수를 과하게 복잡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맑고 깨끗한 은방울꽃 향을 어떻게 조금 더 단선적이고 깔끔하군더더기 없이 재현할까 고민하며 본인의 정원에 은방울꽃을 심고 관찰하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가 "표피가 아니라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봤으면 좋겠다"라며 향을 감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교한 미적 담론의 주제가 되게끔 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에드몽 루드니츠카의 아들 미쉘 루드니츠카: https://cafleurebon.com/the-history-of-edmond-roudnitska-diorissimo-1956-by-michel-roudnitska-the-fragrance-of-may-day-altered-after-55-years/ 해당 링크에서 미쉘 루드니츠카씨가 아버지가 조성한 은방울꽃 화단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볼 수 있다.)  


크리츠챤 디올은 은방울꽃을 자신에게 행운을 가지고 오는 꽃으로 생각했고, 패션쇼를 진행할 때 옷솔기에 은방울꽃 한 줄기를 기워넣기도 했으며, 그의 초기 디자인 중 은방울꽃을 모티브로 한 모자, 드레스 등 옷을 쉬이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크리스챤 디올 사후에 그의 장례식 때 관은 은방울꽃으로 덮여 있었다. 디올은 에드몽 루드니츠카를 1955년에 만나서 그가 하고 있던 작업에 매료되었고, 이렇게 지금까지도 만들어지는 디올의 디오리시모가 탄생했다. 지금 맡아도 매우 모던한, 매끈한 깔끔함이 있고, 이것은 당대 유행했던 향들과 비교하면 더욱 쉬이 도드라진다. 꽃향기긴 하지만 달콤하고 묵직하기보다는 청량한 느낌을, 오 드 뚜왈렛은 물론이고 퍼퓸에서도 간직하고 있다.  


현재 디오리시모도 매우 아름다운 향이지만, 정말로 은방울꽃 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거나, 왜 디올의 디오리시모가 은방울꽃 향수의 고전으로 꼽히는지가 궁금하거나, 디오리시모가 향수사에 남긴 족적-복잡하고 무겁고 다소 혼란스러운 향에서, 조금 더 매끈하고 어찌 보면 미니멀리스틱한, 더욱 모던한 느낌의 향을 제시한 파격성-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으면 빈티지 디오리시모를 찾아보길 권한다. 다행히 디올의 디오리시모는 빈티지 향수 중 그나마 찾기 쉽고 싼 축에 속하고, 네모난 병에 투명한 뚜껑이 아닐 경우 빈티지라고 생각하면 되는 등, 구별 역시 용이하다. 국내에서는 가격이 비싸게 파는 곳도, 싸게 파는 곳도, 아예 빈티지 향수병이라며 소품 가격으로 파는 곳도 있다. 다만 얼마나 잘 보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구매 전 판매자에게 혹시 향이 남아 있는지, 식초나 아세톤 냄새가 나는지 물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


http://perfumeshrine.blogspot.com/2009/05/frequent-questions-ho-do-i-date-my.html



끝맺으며


은방울꽃 열매


은방울꽃은 매우 독성이 강하여 해외에서는 은방울꽃을 꽂아둔 꽃병에 담긴 물을 아이나 반려동물이 마셨다가 죽은 사례도 있다. 아름다운 꽃을 가진 은방울꽃은 이렇게 매우 귀여운 동그랗고 빨간 열매를 맺는데, 이 때문에 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꽃은 에덴 동산에서 추방당하며 이브가 흘린 눈물이고 열매는 이브가 겪게 된 월경과 출산의 고통을 상징한다고 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은방울꽃은 동정녀 마리아의 눈물이라 여겨져서, "마리아의 눈물" 이라 불리기도 했다.


디오리시모를 조향한 에드몽 루드니츠카는 코티의 뮤게 드 브와를 매우 높이 치면서 "이보다 나은 은방울꽃 향은 만들어진 적이 없다. 은방울꽃의 그린한 향을 강조했다. 은방울꽃 향으로서는 참으로 훌륭했다. 내가 만든 은방울꽃 향수보다 훨씬 낫다. 어떻게 재료가 지금보다 없었던 1930년대에 그런 걸작을 만들어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뿌리고 다닐 수 있는 향수가 아니었기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라고 한 적이 있다(마이클 에드워즈의 Perfume Legends, 113페이지, 내가 임의로 번역했기에 한글판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디오리시모를 조금 더 선호한다. 뮤게 드 브와는 가끔 조금 날카롭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만일 루드니츠카씨가 그것을 짚은 것이라면 아주 정확한 지적이 아닐까 싶긴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까롱 나르시스 느와 (191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