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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Oct 23. 2023

사치의 가격이란?

왜 모든 게 점점 비싸질까

예전에 향수를 취미로 가지는 거 자체가 비교적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명시한 적이 있는 거 같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향수 덕질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쓴 돈에 의존해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게 제대로 된 지표로 작용하려면 돈의 액수 가지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차라리 내가 현재 쓸 수 있는 돈이 얼마고, 거기에서 향수가 얼만큼을 차지하는지 비율로 나타낸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누가 덕심을 인증하기 위해서 자신의 연봉, 부동산, 기타 등등 여러가지를 내보이겠는가? 그리고 그 역시 결론적으로 정말 '진심'을 측정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소비 패턴, 즉 과소비를 부추기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생각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계속 향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 사람들이 비싸면 니치 향수다, 혹은 남들이 모르는 비싼 향수일수록 향이 좋다,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천하제일 부자대회 나온 것 마냥, 향수를 향이 아니라 어떤 부의 과시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런 방식으로 향수를 즐기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향수를 취미로서 사람들에게 퍼트리는데에는 일조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소수가 좋아하는, 마니아 층만 있는 시장이 될 것이고 그러면 지금이야 한국에 여러 브랜드가 들어와 있지만 하나둘씩 철수하고 다양한 향수를 접하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예측된다.


니치 향수가 왜 나왔는지 생각하면 이 점은 더욱 명확해진다. 프레데릭 말의 경우, 90년대 후반부터 향수는 그 중요성을 잃었고, 모든 향수들이 더욱 대중친화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개성을 잃고 비슷비슷한 향이 났으며, 향보다는 향수를 홍보할 모델이나 포장, 그리고 런칭 파티에에 더 신경을 썼다고 말한다. 때문에 향수의 향 그 자체는 가장 나중에 고려대상이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향수라는 예술 분야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_1t0BvNYJ5A&t=89s


그렇다면 니치 향수의 역할은 다시 향수에 대한 관심, 향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일 테다. 향의 예술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하든, 아니면 향에 대한 어떤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든 향수의 향 외 다른 부분이 아니라 향 그 자체에 집중하게끔 말이다. 그런데 현재 니치 향수들이 한국에서 그런 역할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향을 체험하고 관심을 갖고 이게 이렇게 표현될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주기보다는 조금 뭐랄까, 배제적이고 당신이 돈이 없다면 여기에서 나가세요, 라는 느낌을 더 주는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편한 옷을 입은 채 프레데릭 말 플래그십 스토어에 갔다가 초반에 매우 불쾌한 경험을 하다가, 이후에 좀 향수에 대해 아는 티를 낸 다음에야 직원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프레데릭 말 본사나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를 탓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바쁜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프레데릭 말 브랜드에서만 이러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이런 경험이 향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위축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니치 향수들이 대체 어떤 역할을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 다시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간에, 서양 향수 포럼 등을 돌다 보면, 가끔 좀 나이대가 있는 사람들이 현재 향수가 너무 비싸다고 말하며 예전에는 향수의 적정 가격이란 근사한 저녁 한 끼 정도의 가격이었다고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향수가 예전에 비해 물가상승을 고려했을 때도 비싸졌는지가 궁금했다. 이러려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팔리고 있는 향수의 가격이 필요한데, 다행히도 샤넬 No.5의 가격을 물가상승을 고려해 현2019년 기준 얼마인지 써놓은 블로그 포스트를 발견하였다.

https://chanelperfumebottles.blogspot.com/2020/02/prices-of-chanel-no-5-in-1940s.html 


1940년에 1온스, 즉 30ml의 퍼퓸 엑스트레가 20달러, 2019년 기준 368.84달러였고, 1949년에 60ml가 35달러, 2019년 기준 380.80달러다. 그러나 현재는 더욱 인플레이션이 심해졌기 때문에 2023년을 기준으로 하면 1940년에 20달러였으면 439.70달러, 1949년에 35달러면 지금은 452.63달러다. (출처: https://www.usinflationcalculator.com/)


그러면 지금 현재 샤넬 No.5 퍼퓸 엑스트레는 얼마일까? https://www.chanel.com/us/fragrance/p/120150/n5-parfum/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30ml가 355달러다. 사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1940년대에 샤넬 No.5 향수를 사고 싶었던 어떤 사람보다는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1940년대는 제 2차대전이 유럽에서 절정을 향해 다다르던 때였고, 전후 유럽은 굉장한 물자 부족에 시달렸으며, 샤넬 사 역시 내부적으로 코코 샤넬과 베르트하이머 형제간 갈등이 있던 때였다. 그래서 어쩌면 이 당시의 가격은 이례적인 상황이었기에 현재와 비교하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70년대 샤넬 No.5 광고를 찾았는데, 정확히 이 포스터가 언제인지도 불확실한 경우가 많았으며 광고 포스터에 향수 가격이 나와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이하 포스터를 찾을 수 있었다.


1974년 카트린 드뇌브가 나오는 샤넬 No.5 광고 포스터. 밑부분에 깨알같은 글씨로 10.00 달러부터 400달러 사이 가격이라고 적혀 있다.

샤넬 No.5 오 드 퍼퓸은 80년대에 나왔기 때문에 밑부분에 써져있는 perfume은 아마도 퍼퓸 엑스트레를 가리키는 것일 텐데, 샤넬 No.5 퍼퓸 엑스트레는 늘 가장 작은 사이즈가 1/4온스, 즉 7.5ml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 좀 가격 비교가 가능하다. 1974년에 10달러면 지금 기준으로 62.43달러이다. 공식 사이트에서 1/4 온스면 140달러로 파는 것을 보면 현재 가격이 훨씬 비싸단 것을 알 수 있다. 혹시 70년대에 유래없는 호황이 있었나 생각해봤는데 이 때 오일쇼크 때문에 미국 유가가 치솟은 것을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혹시나 해서 1957년 포스터 역시 찾아봤다.

1957년 수지 파커가 나오는 샤넬 No.5 포스터

여기서는 제일 작은 용량의 향수가 5달러,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론 54.77달러라고 나와 있다. 아무리 봐도 전쟁시였던 1940년대를 뺴면 기본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향수가 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게 아주 이상한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여러 규제와 환경 파괴 등등의 이유 때문에-물론 아직도 샤넬 No.5의 퍼퓸 엑스트레에는 EDP나 EDT, EDC 등과 달리 정말 그라스에 있는 샤넬 소유의 밭에서 기른 장미와 자스민이 들어간다지만-현대에 들어서는 천연 향료보다는 비교적 값싼 합성 향료가 많이 쓰인다. 물론 합성 향료 중에서도 천연 향료 뺨치게 비싼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떤 합성 향료도 예를 들어서 질 좋은 샌달우드를 만드는 데 걸리는 몇십년의 시간보다는 빨리 만들어지고 값 역시 싸다. 또한 천연 향료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어떤 해에는 더욱 품질이 좋고 어떤 해에는 품질이 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합성 향료는 품질이 일관되기 때문에 굳이 올해 거래처의 천연 장미향 품질이 안 좋기에 다른 곳을 찾아야 하고 혹은 다른 향을 더욱 첨가해 보완해야 하고 이런 노력에 드는 추가적 비용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마케팅이나 혹은 향수 회사의 농간 같은 것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요소도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전 시대에는 노동착취나 환경파괴가 훨씬 더 수월했다는 점이다. 최근 어쩌다가 유튜브 쇼츠에서 연꽃 줄기에서 나오는 끈끈한 섬유질 조직을 사용해서 "로투스 실크"라고 불리는 천을 짜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굉장히 많은 연꽃 줄기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연꽃 줄기가 말라버리면 더 이상 섬유질 조직을 실로 짤 수 없으므로 24시간내 해야 하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인데 미얀마와 베트남 등지에서 소규모로 수작업으로만 생산해내고 있다고 나왔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한산모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던 기억이 났다. 장인들이 손과 이가 다 닳아가면서 만드는데, 엄청난 인간 노동력이 드는 일이었다.


향수 업계의 수요 때문에 멸종위기에 처한 자연물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말했기에 여기에서 또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많은 향수의 원료가 되는 자연물의 산지가 유럽이 아닌 인도, 동남아시아, 중동, 서인도제도, 북아프리카, 남아메리카, 태평양 군도, 마다가스카르, 중국 등에서 이뤄진다. 물론 프랑스의 그라스 같은 경우 향료 재료를 많이 키우고 있고 세계 향의 수도라고 불리곤 하지만, 그라스에서 자란 장미, 자스민, 수선화, 라벤더, 오렌지 블로섬 등의 추출물은 품질은 매우 뛰어나지만 다른 곳에서 자란 재료로 만든 추출물보다 몇배는 비싸기 때문에 가격면으로 경쟁력이 아주 떨어져서 소량 쓰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 출신 재료나 합성 향료를 쓸 것이다. "그라스 자스민이 들어가긴 했습니다" 정도로도 노트 목록에 그라스 자스민을 넣을 수 있기 떄문이다.


현재는 많은 기업들이 그래도 지속가능한 정책을 보여주기식으로라도 하고 있고 공정한 값이 돌아가게 노력하는 척이라도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정말 돈 같지도 않은 돈을 주고 재료를 사오는 게 훨씬 더 쉬웠을 것이고, 소위 선진국에서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을 고용방식 혹은 노동방식이 진행되는 걸 묵인하기도 더 쉬웠을 것이다. 그런 일들이 선진국의 언론까지 보도되기는커녕 해당 국가 내에서도 보도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쉽고 편하지 않았기에 훨씬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해외로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간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런 농지에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부러 구경하려 하겠는가?


특히, 그 집단 안에서도 더욱 소외된 집단이 손이 많이 가는 노동에 종사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튀르키예 장미 수확 사진을 구글에 쳐보면 대부분 나이 많은 여성들이 일하는 것을 볼 수 있고, 일랑일랑 생산지인 마다가스카르 역시 구글에 사진을 쳐 보면 대부분 여성들이 일랑일랑을 바구니 가득 넘칠 듯이 들고 길을 가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인도나 이집의 자스민 수확, 케냐의 제라늄 수확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남성들이 수확시 일꾼으로 일하는 것들도 있다. 마다가스카르의 시나몬, 아이티의 베티버 등이 그렇다. 하지만 이미 가격을 절감할 수 있는 지역이더라도 더욱 낮게 줄 수 있다면 그러겠다는 것 같다.


결국 지금처럼 합성 향료가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하기 전의 사치란, 각종 노동착취와 환경파괴를 통해서 이뤄진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치는 어떠한가? 물론 향수를 리뷰할 때, 공식 사이트에서의 노트를 나열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향수에 어떤 노트가 있다는 것이 실제 그 노트를 만들어내는 천연 향료는 물론이고 원료 자체가 그 향에 들어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가드니아 즉 치자꽃의 경우 많은 향수에 노트로 들어가 있지만, 실제 자연의 가드니아 향을 추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특히 현대 시대에 너무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자스민과 튜베로즈를 이리저리 섞어서 가드니아 노트를 만들기도 하고, 혹은 아예 합성 향료로만 가드니아를 만들기도 한다. 물론 이 향료들이 매우 비쌀 수도 있지만 전통 방식으로 치자꽃을 하나하나 따서 향이 없는 지방이 묻은 유리판 위에 예쁘게 잘 올려놓고 향이 다 흡수되면 지방을 알코올에 녹이는 냉침법을 통해 얻은 가드니아 압솔뤼보다는 훨씬 쌀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러면, 예전의 사치품이란 노동착취와 환경파괴로 인해 짜낸 천연향료의 범람으로 비싼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때보다 합성 향료가 많이 쓰이는 현재의 여러 향수들은 대체 왜 그렇게 비싼 것일까? 샤넬 No.5 퍼퓸 엑스트레의 경우 샤넬이 소유한 그라스의 장미, 자스민 밭에서 추출한 향료들이 들어간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원료가 들어가고 개중에는 합성 향료도 있겠지만 샤넬은 전반적으로 다른 브랜드(디올 등)보다 훨씬 더 클래식 향수들의 품질 관리에 열성적이고 여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일관적인 향을 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나마 천연 향료를 많이 쓰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샤넬 No.5 퍼퓸 엑스트레 30ml는 330달러다. 나는 솔직히 다른 브랜드들이 양심이 있으면 30ml에 이걸 넘는 가격을 책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터키산 장미, 뭐 어디산 패츌리를 가져왔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 이런 향료들은 피르메니히나 지보단, 심라이즈, IFF 등 거대 글로벌 향료회사에서 사고 팔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슨 그 브랜드 직원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따고 이러지는 않는다.


그래서 현대의 우리가, 향수라는 사치품을 살 때, 나는 우리가 대체 무엇을 위해 가격을 지불하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브랜드 이미지인가? 남들에게 이게 뭐라고 자랑할 기회? 그런 거라면 사실 별로 향수를 살 가치가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또 가격이 싼 향수들 역시 요새는 특히 합성향료를 많이 쓴 향수일수록 비슷하게 카피하기가 쉽기 때문에(예로 아리아나 그란데의 클라우드는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바카라 540하고 흡사하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유사한 향이 나기도 하고, 그와 별개로 괜찮은 향이 나는 경우도 많다(퀸 라티파의 퀸, 레이디 가가의 페임 등등). 우리는 정말로 향만을 위해서 향수를 사고 있는 건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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