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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 Jul 29. 2022

Ep 13. 한 데 모아두기

흩어져있는 기록보단 모아둔 기록이 아름답다

기록을 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그 기록들을 한 데 모아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기를 예로 들어보자. 어렸을 때 썼던 일기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흩어져 있다면 단편적인 것들만 기억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별로 묶여있다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생각의 변화,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의 변화처럼 보다 의미 있는 것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록 모음 중 하나는 고등학교 때 작성한 연습장이다. 아무런 줄도 없는 빈 종이들이 엮여있는데, 나는 그 연습장에 수학 문제를 풀기도 했고 암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작성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기도 했다. 3년 동안 항상 뒷 페이지로만 넘기다가 졸업 후에 맨 앞장부터 다시 펴보았다. 


 "졸업 후에 이 연습장을 펼쳐보며 후회보단 보람을 느끼도록." 고등학교 생활을 함께 시작했던 첫 연습장의 첫 장에 적힌 문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살자는 정도의 의미였는데, 정말 졸업 후에 다시 펴본 그 페이지는 단순한 보람 이상의 감동을 줬다. 연습장에 풀어둔 문제들을 유심히 보진 않지만, 암기했던 내용들에 이젠 큰 관심이 없지만, 기록은 그 자체로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떠올리게 해 준다. 만약 이 연습장도 각 장마다 따로 떨어져 있었다면 실력의 발전이나 당시에 목표했던 암기의 성과, 학기가 지날수록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의 변화를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또한 모아둔 기록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는 업무를 좀 더 원활하게 배우기 위해 어떤 업무를 배웠는지 매일 서너 줄씩 기록하기 시작했었다. 인수인계를 받았던 시점이라 헷갈렸던 점, 궁금한 점 등을 상세하게 기록해뒀다. 시간이 흐르고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내일, 다음 주, 다음 날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작성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내 후임에게 일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내가 없을 때는 작성해둔 기록들이 그 자체로 지침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기록을 모아둔다는 건 그 기록의 가치를 더하는 일이다. 보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고, 다른 사람이 볼 때에도 다양한 것들을 전달할 수 있다. 브런치와 @unbounders.club 인스타그램에 몇 가지 글들을 올리고 나서야 매거진의 기능을 알 수 있었다. 두 플랫폼 모두 제공하는 기능인데, 앞으로는 해당 기능을 활용해서 관련된 기록을 한 데 묶어보려 한다. 관심 있다면 한 번씩 들어가 주시길! (예를 들어, Ep 1_1의 의미는 Ep 1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뜻이다. 앞으로도 같은 주제의 글들을, 여러 언바운더들의 기록을 이렇게 모아보려 한다.)


P.S. 부대에서의 기록을 남긴 파일의 첫 장엔 이렇게 쓰여있다. "전역하는 날, 명예롭다고 느낄 수 있게"


* Photograph @henry_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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