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7. 카파도키아 3일 차 - 벌룬 투어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을 떠 빠르게 준비를 하고 호텔 로비로 간다. 먼 동도 트지 않은 시간이라 검은 하늘은 아직 한밤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잠시 로비에서 기다리니 픽업이 왔다. 아직 잠에 취해 정신없이 미니밴에 탑승하니 센스 있게 간식을 준다. 주스와 스폰지 케이크와 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ATV 출발 지점 근처로 이동한 것이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에 어디로 달리는지도 모르겠다. 도착과 함께 투어 잔금을 유로로 지불하자 바로 기구로 안내한다. 기구 반대편으로 달이 떠있고, 조명을 밝혀 놓은 우치사르 성이 먼발치로 보인다. 약간 걸려 있는 구름까지 완벽하게 연출된 것 같은 그림이었다. 지구 같지 않은 뷰를 자랑하는 카파도키아에서도 손꼽히는 몽환적인 풍경이었는데 정신이 없어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 못한 게 참 아쉽다. 하늘을 돌아보니 달빛 덕에 보이는 구름이 어두운 맑은 구역과 절묘하게 섞여 있다. 다행히 날씨는 괜찮은 편인 것 같다. 우리 커플이 맨 먼저 기구에 탑승하자 다른 분들이 탑승하기 시작한다. 바구니 안으로 말 그대로 넘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어르신들 단체 관광 팀인 것 같다. 원래 단체 관광 팀만 받으려고 했는데, 우리 예약을 끼워 넣은 것 같다.
열 기구의 바스켓은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버너와 연료, 무전기 고도계 등의 도구와 조종용 밧줄이 연결되어 있는 중앙 구역은 파일럿 혼자 타고 있고, 좌 우로 각각 두 구역씩 길게 6명씩 타고 있었다.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유가 전혀 없진 않기 때문에 각 구역에 한두 명 정도는 더 태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열기구 예약할 때는 사람 수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안내가 있었지만 사실 최근에는 모든 기구가 30명짜리 바스켓이고 예약 상황에 따라서 태운다고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주변에 보이는 기구들도 모두 같은 사이즈의 바스켓을 달고 있다.
제일 먼저 기구에 탄 덕에 파일럿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마 내가 무거워서 중심에 가까운 쪽에 태우려고 한 모양이다. 파일럿의 이름은 쟌이라고 했는데 존이 아니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진짜 이슬람 신자라면 종교로서의 기독교를 정립시킨 사도 요한이 되고 싶진 않을 것 같다. 버너를 켜서 뜨거운 공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무전을 주고받는 듯 분주히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 버너를 너무 오래 켜면 풍선에 불이 붙을 수도 있기 때문에 끊어서 버너를 피우는 것 같다.
어렴풋이 밝아오는 먼동 속에 기구를 덥히기 위해 간간히 태우는 버너 불빛이 각각의 기구를 초롱 같이 빛나게 만들고 있다. 기구들의 무늬와 색상도 형형색색 다양하기 때문에 그 화려함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깜빡이는 동그란 초롱불 너머로 점점 밝아오는 먼동에 괴레메의 아름다운 지형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쯤 우리 기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흔들리는 듯했지만 이내 두둥실 떠오른다. 가민 시계를 급히 켜고 로깅을 시작한다. 고도 변화나 코스는 기록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낮은 고도를 유지하면서 괴레메의 상징 중 하나인 붉은색 절벽 쪽으로 향해 날아가더니 이내 로즈 밸리 안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볼 때는 바위로만 되어 있을 것 같은 로즈 밸리 안쪽에는 의외로 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계곡 벽에 닿을 것 같이 가깝게 난다. 반대편에 있는 다른 열기구와 마주 보자 다른 단체 관광객들이 소리를 지른다. 아마 같은 팀인 것 같다.
계곡에서 나오자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해가 핑크 빛으로 비춰주고 있는 가운데 백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기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괴레메 시내와 그 너머 보이는 우치사르, 방금 들어갔다 나온 로즈 밸리, 멀리는 페어리 침니도 보인다. 점점 괴레메 시내에서 멀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열기구는 버너로 부력만 조정하기 때문에 고도 외에는 조종을 할 수 없다고 들었는데 아닌 것 같다. 계곡에 들어갔다 올라갈 때도 그렇고 매일 풍속이 다른데 비슷한 시간 동안 비행 코스를 나는 것으로 생각해볼 때 조종이 안되면 안 될 것 같았다. 자세히 주변 기구를 살펴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조종을 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 기구 한쪽 구석에 구멍이 있는데 직사각형 모양의 구멍의 좌우를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 한쪽을 열어 공기를 내보내서 회전시키거나 양쪽을 열어서 구멍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는 모양이다. 물론 조종을 위해서 공기를 빼면 그만큼 더운 공기를 집어넣기 위해 연료를 더 태워야 하니 효율은 낮아 보인다. 그래도 제한적인 조종은 다 할 수 있는 것 같다.
중간중간 고도를 확인하니 내 시계로는 1900미터까지 올라갔다. 무전기 옆에 숫자가 고도와 비슷한데 내 시계보다 50미터 정도 낮게 표시되고 있었다. 고도 보정을 하지 않았으니, 내 시계의 로그가 50미터 정도 높게 측정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수많은 기구, 오렌지 색으로 떠오른 태양, 구름, 괴레메의 특별한 지형 모든 것이 어우러져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단체 관광객 중 할아버지 한 분은 쉼 없이 질문을 했다. 열기구는 얼마나 높이 올라가냐, 무게는 얼마나 되냐, 가격은 얼마냐 등등 많은 나이에도 호기심을 간직한 열정적인 할아버지였다. 그 할아버지가 파일럿에게 할 질문이 떨어졌는지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러고 나도 어디서 오셨냐고 물어보자 콜롬비아에서 왔다고 했다. 반사적으로 나르코스를 이야기했는데,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분들도 진짜 나르코스의 가족들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콜롬비아의 평균 소득과 터키까지의 거리를 생각할 때 쉽게 올만한 여행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비행에 한 명당 20만 원 이상을 지불할 테니 꽤 비용이 드는 도락일 것이다. 게다가 이 시기에 해외여행이라면 꽤 여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다시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다른 도시 쪽으로 이동한다. 달리 이 오르타히사르라는 도시였는데 푸른 숲과 초원이 있어 괴레메와는 다른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특히 개울물이 흐르는 녹색 골짜기가 시내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산책해보고 싶은 모습이었다. 결국 가보지는 못했지만 이 날 오후에는 더 예쁜 곳에서 계곡 산책을 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다. 오르타히사르에도 우치사르에 있는 것과 같은 돌산을 깎아 만든 성이 있었다. 우치사르보다 좀 더 경사가 완만해서 극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더 큰 시내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고도가 완만히 낮아지기 시작하자 쟌이 버너를 조작해보라고 제안한다. 밸브를 당기면 연료가 공급되고 불이 붙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밸브를 서너 번 당기니 불이 붙는다.
내려다보니 도로에는 벌룬 바스켓을 싣기 위해 달아 놓은 듯한 큰 캐리어를 단 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높은 하늘에서 바라보니 장난감 자동차들 같다. 쟌도 무전을 하면서 슬슬 고도를 낮추는 것이 보니 착륙을 준비하는 것 같다. 그런데 아래 보이는 모습은 공동묘지 같다. 잔디밭에 돌들이 규칙적으로 놓여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캐리어를 단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봐서는 이쪽으로 착륙하는 것 같다. 그런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무전을 하고 고도를 조금 높인다. 아무래도 타이밍이 안 맞은 것 같다. 서있던 차들이 연락을 받고는 바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고도가 낮아서 가까이서 바라보니 거친 노면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에 매달린 캐리어가 엄청 흔들린다. 박력이 느껴진다. 어제의 ATV들과는 다른 버전의 매드 맥스를 보는 것 같다.
처음 착륙하려고 했던 장소에서 5분 정도 더 날아갔을까? 다시 차들이 대기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착륙은 기구에서 고정 줄을 내려주면 그 줄을 지상 직원들이 당겨서 캐리어 위로 기구 위치를 맞추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아마도 무거운 바스켓을 캐리어에 올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착륙하는 것 같다. 우리 기구는 별로 원활한 착륙은 아니어서 직원이 모두 달라붙어서 죽을힘을 다해 당겨서 캐리어 위로 맞춰서 착륙했다. 25명이 각자 60킬로만 쳐도 사람 무게만 1.5톤이다. 그런데 우리 기구 팀이 고생한다고 생각하면서 옆에 다른 기구를 보자 캐리어 위에 안착시키는 것이 실패해서 다시 올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이 정도 수고는 하는 모양이다.
착륙한 곳은 풀밭이었는데, 떠오른 햇볕과 파란 하늘 덕에 참 예뻤다. 기구에서 내려서 간단히 사진을 찍고 기구 옆으로 돌아오니 착륙 세레머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잘생기고 볼 일인가? 쟌이 할머니들에게 너무 인기가 좋다. 숨만 쉬어도 리액션이 나오는 판이라서 그런지 쟌도 꽤나 신이 난 듯했다. 샴페인을 터뜨리는데도 흥이 넘쳐서 좀 오버하는 듯이 보였다. 한 사람씩 번갈아가면서 쟌과 사진을 찍는데, 가장 고령의 할머니에게는 분위기가 오른탓인지,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서 인지 공주님 안기를 하고 뽀뽀까지 해줬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환호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다. 80세가 넘었다는 저 할머니는 80이 넘은 나이까지 여행을 할 수 있는 정정함이 멋있어 보인다. 역시 나르코스였을까? 팁박스에 100유로짜리가 꽤 보인다. 팁 액수가 정말 만만치 않았다. 할머니들에게도 그렇지만 쟌에게도 오늘은 좋은 투어였을 것 같다.
터키 여행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릴 법한 이미지는 카파도키아에서의 열기구다. 언제부터였을까 이곳에서 기구를 날리기 시작한 것은? 느긋한 속도 넓은 뷰를 가진 열기구는 확실히 이 특별한 지형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기구들이 많이 날고 있기 때문에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가 강화되는 것 같다. 한 대만 난다면 아마 이런 환상적인 느낌의 비행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는 타이밍이기 때문에 최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국 같은 환상적인 지형 위에서의 비행이라고 하더라도 매일매일 날씨에 따라서, 다른 기구들의 숫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 나중에 다른 날씨에서도 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