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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mmy Jul 05. 2022

2022 터키 여행기 - Day 4 카파도키아

2022.05.18. 카파도키아 4일 차 - 빈둥빈둥


벌룬 구경을 하기 위해서 가민 로그에서 벌룬이 출발한 곳을 확인하니 선셋 뷰 포인트 너머였다. 지도로 확인하니 괴레메 북동쪽에서 출발해서 괴레메 동쪽에서 마무리되는 코스였다. 괴레메 시내에서 올려다보면 벌룬을 많이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결국 선셋 뷰 포인트로 걸어 올라가 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선셋 뷰 포인트까지는 느긋한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일출 시간이 6시 30분이고 동이 터오는 것은 1시간 전쯤이니 5시 반에는 출발해서 선셋 포인트까지 걸어 올라가서 구경하면 완벽할 것 같았다. 다만 실제로는 피곤했는지 조금 늦게 일어나서 계획보다 늦은 6시경에 출발했다. 출발할 때부터 이미 동이 터서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선셋 포인트로 올라가는 길에도 이미 벌룬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처음으로 선셋 뷰 포인트로 걸어 올라가는데 원래 관광의 중심지는 이쪽 언덕이 아닌가 싶다. 오래된 동굴 호텔이 줄지어 있으며 기념품 상점과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Carus Hotel이라는 곳을 발견했는데, 밖에서 인테리어만 봐도 적당히 꾸민 곳 같지는 않아 보였다. 다음에 다시 괴레메에 오게 된다면 묵어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올라가 본 선셋 뷰 포인트 너머의 침니 지형이 참 멋있다. 낮에 걸어서 산책만 해도 좋을 코스 같았다. 워낙 뷰가 좋은 곳이 널려 있는 괴레메지만 ‘뷰 포인트'라는 이름이 붙을 이유가 있어 보였다. 멀리는 로즈 밸리부터 가까이는 코 앞에 침니 지형까지 막 떠오른 혹은 이륙 준비를 앞두고 있는 벌룬들이 가득하다. 날씨는 어제 우리가 탔을 때보다 확실히 구름이 많아 보였다. 코스나 타이밍에 따라서는 해를 아예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핑크 색 햇볕이 직접 비추지 않으니 골든 타임도 없을 것 같았다. J 씨와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날씨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로 좋은 모양이다.

주변이 밝아옴과 함께 떠오른 벌룬은 대부분 점점 멀리 떠나갔지만 한눈에 보이는 벌룬의 숫자는 늘어난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괴레메 서쪽 우치사르 근처에서 떠오르는 벌룬들이 있었다. 아마 벌룬들이 이륙하기 위한 안전한 공간이 필요할 테니 기본 코스는 자리가 꽉 차서 새로 만든 코스 같았다. 2시간짜리 VIP 비행이라고 안내하는 비행은 저 비행들이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괴레메 시내를 가로질러서 로즈 밸리를 통해 착륙지점까지 가려면 시간이 더 걸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는 순간의 핑크색 햇볕을 받는 로즈 밸리 절벽을 볼 수 있는 기본 코스가 더 좋을 것 같아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진 서비스를 신청해서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루기도 힘들 정도로 원색의 긴 드레스를 휘날리게 하면서 사진을 찍고 있는 팀도 있고, 드레스를 입고 달리고 있는 팀도 보였다. 같은 풍경을 즐기는 다른 방법이랄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추운데 옷 갈아입어 가면서 사진을 남기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벌룬을 실컷 구경하고 천천히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뷰가 좋은 호텔 옥상 테라스에는 각각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벌룬 뜨는 날 1시간~1시간 30분을 더 자고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뷰가 좋은 호텔의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늦게 뜨는 벌룬들이 괴레메 상공을 지나가는 것은 2시간짜리 VIP비행이 아니라 저 호텔들에게 찍을 거리를 제공해주기 위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호텔에 돌아와서 항상 아침을 먹던 테라스로 올라가니 이곳에서 보는 벌룬도 볼만하다. 잠시 사진을 찍고 방으로 돌아가서 조금 뒹굴었다. 3 연박을 한 덕에 같은 조식을 세 번째 먹었는데 이제는 터키식 조식에 익숙해진 것 같다. 너무 익숙해졌는지 아침 식사 사진조차도 스킾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싸서 체크 아웃을 하고 짐을 맡겨놓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아무런 투어도 없고 하루 종일 빈둥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단 한 번도 구경하지 않았던 기념품 가게들을 구경하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부모님을 드릴 간단한 선물 등을 몇 개 구매하면서 돌아다니니 시간이 금방 흘렀다. 지나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권하는데 말투가 심상치 않았다. 너무 열심히 권했지만 식사 전이라서 조금 있다가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지나쳤다. J 씨가 노점에서 팔찌를 몇 개 샀는데 흥정조차 하지 않고 처음 부른 가격으로 사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가 조금 놀란 눈치였다. J씨도 나도 흥정에는 취미도 재능도 없는 것 같았다. 

지나가는 길에 King’s Cafe가 보여서 들어갔다. 사실 첫날 빈둥대면서 가려고 했던 카페였는데 동선이 어긋나서 어쩌다 보니 오늘 처음 가게 되었다. 괴레메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었다.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가장 맛이 있다고 할 수 있는지 가장 서구화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J 씨가 주문한 터키쉬 커피도 처음 먹은 커피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음료와 함께 제공된 쿠키도 맛있게 먹었다. 카페를 꾸며놓은 것도 그렇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그렇고 QR코드로 확인하게 만든 메뉴 라든가 구글맵에 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주인이 이곳에서만 산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가 한 마리 기어 와서 배회하길래 이 집 고양이인지 길 고양이인지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고양이 이름이 나비라고 가르쳐주신다. 나비? 한국어인가? 아니겠지 하면서 J 씨랑 이야기를 했다. 마침 터키에서 처음 본 일본인 커플이 건너편에 앉아 있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다가가더니 일본어로 말을 거신다. 주문한 커피를 가져다주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일본어로 말을 거니 일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신나는지 처음 몇 마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걸어주신다. 알고 보니 후쿠오카에서 한동안 살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자기 베스트 프랜은 옆 도시에 사는 신 씨라는 한국인이었다. 절친이 한국인인 터키인 아줌마랑 터키에서 일본어로 이야기하니 꽤 재미있는 기분이었다.  


느긋하게 커피를 다 마시고 나와서 첫날 갔던 Nazar Borek에 한번 더 가서 구경도 하고 이른 점심도 먹기로 했다. 맞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올라가는데 잘못된 길로 걸어간 것 같다. 살짝 고민하고 있는데, Antique Terrace Hotel이라는 호텔 입구가 예쁜지 J 씨가 사진을 찍는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직원인듯한 사람이 말을 건다.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약간 부담스러워하는데, 저쪽 길은 막다른 길이고 이 호텔 뷰가 좋으니까 올라가서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한다. 대신 인스타그램에 태그만 해달라고 한다.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호텔 테라스로 올라갔다. 과연 인스타그램에 노출시키고 싶어 할 만한 좋은 뷰의 테라스였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두 방울 내리는 정도가 아니라 쏟아 붓기 시작했다. 미안해서 음료라도 주문할 수 없냐고 물어보니 오렌지 주스를 그냥 주신다. 주스를 마시면서 한 시간가량 비 구경을 하고 냅킨 아래에 돈을 놓고 나왔다. 


점심시간이 적당히 돼서 며칠 전에 구글 맵에서 봐 둔 Göreme Han이라는 식당을 찾아서 내려갔다. 콜라 지수(?)에 따르면 꽤 저렴한 식당이었는데 사르마와 아다나 케밥을 시켜서 먹었다. 사르마에는 쌀만 들어있는 것 같았다. J 씨와 집에서 해먹은 사르마는 고기가 가득했는데 좀 아쉬운 느낌은 든다. J 씨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지만 막상 시키니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면서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오픈 에어 뮤지엄이 너무 붐벼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본 것 같아서 다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화창한 햇볕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오픈 에어 뮤지엄으로 가는 길은 선셋 뷰 포인트로 가는 길 아래쪽으로 가도록 되어 있는데 아침에 본 흐린 풍경과는 대비가 되는 풍경이었다. 올라가는 길도 주변을 보니 침니 지형을 파서 만든 동굴 집이 가득했다. 하나하나 가까이 가서 본다면 한이 없을 것 같았다. 오픈 에어 뮤지엄 입구에 도착하니 오늘은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 레드 투어 등 관광 객이 오전에 몰려서 그런 것 같다. 아마 낮에 구경한 사람들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당황했을 것 같다.


이틀 전에 왔던 오픈 에어 뮤지엄은 흐린 하늘 때문인지 좀 우울해 보였지만 오늘은 참 화창한 느낌이다. 사람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정말 느긋하게 하나하나 구경할 수 있었다. 프레스코화에 나온 사람들이 누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설명하는 사진 등과 조합해서 열심히 찾아보면서 보니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지하 도시 등을 구경하면서 얻은 지식으로 살펴보니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보여서 재미있었다. 


오픈 에어 뮤지엄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원래는 떠나기 전에 식사를 하고 샤워를 한 번 더 하려고 했지만 배도 고프지 않고 땀도 별로 흘리지 않아서 샤워 생각은 별로 없었다. 대신 괴레메에서 묵는 동안 우리 집이 되어주었던 호텔 식당에서 마지막 일몰을 구경했다.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이 아니고 옥상이 없어서 사진 포인트는 조금 부족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약했지만 의외로 이 식당에서 바라보는 뷰가 근사했다. 게다가 버스 터미널 바로 앞이라서 잠시 후에 파묵칼레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가는 것도 금방이다. 벌룬 예약 등의 문제가 있긴 했지만 방도, 조식도, 위치도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만족스러운 숙소였다는 생각이 든다.


석양 구경을 천천히 마치고 나자 버스 시간이 다가왔다. 캐리어를 끌고 300미터쯤 떨어진 오토가르로 가자 우리 버스가 이미 와 있다. 표를 확인하고 짐을 맡기고 버스에 탔다. 우등 버스 정도의 사이즈 좌석인데 꽤 편안했다. 출발하고 창밖으로 해가 진 후 붉은빛으로 그리고 보라 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괴레메에서의 일화들을 J 씨와 공유했다. 한동안 자주 혼자 여행을 가곤 했는데, 아무리 만족스러운 경험을 한 하루도 혼자 마무리할 때면 의미가 없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혼자 여행했다면 지금 느끼는 공감 대신 외로움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자 새삼 옆에 있는 J 씨가 고맙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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