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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 Oct 20. 2022

가을의 신부에게

[보낸 편지함 ] -1

2022년 10월 30일의 주인공
가을의 신부가 되는 G에게


웨딩 촬영에 놀러 가서 드레스를 입은 너의 모습을 봤지만 또 이렇게 청첩장으로 결혼 소식을 전달받으니 기분이 이상하구나.     


우리가 친구가 되었던 2010년도의 겨울날이 아직도 난 새록새록한데 말이야     

드라마에서 보던 여중생의 모습을 하고 싶어 짧은 단발머리를 했었던 작고 까맣던 나.     

그 뒷자리 긴 생머리에 큰 키, 뽀얗던 G의 모습... (나보다 더 서울 사람 같았어..)     

상반된 이미지의 두 꼬맹이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출석번호의 인연으로 우리는 여태까지 이렇게 삶을 공유하고 있구나     


자리도 가까웠는데 집도 가까웠던 우리는 1년 내내 등교도 함께 했었지     

동교초등학교 앞에서 매일 만났는데 G는 영하 10도의 추운 날도 더운 날도 머리를 말리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진 채로 등교를 하고는 했었네.

만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G가 보이지 않는 날에는 G 집 앞까지 갔었던 기억도 나는구나  

하루는 내가 아파서 학교를 못 갔던 날도 있었는데 그날은 G가 약이랑 음료랑 이것저것 사서 우리 집 앞 대문에 메모와 함께 두고 갔었던 날도 있었지     


이게 벌써 12년 전이라니.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어른이 될 거라고, 26살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너무 어렸을 때여서 누가 제일 먼저 결혼할까 이런 얘기도 안 했던 것 같아     

누가 먼저 연애할까 이런 얘기했었던 것 같은데,     

연애도, 자취도, 결혼도... 가장 먼저 앞길을 열어주는 친구가 G네!     

평소에 G랑 이것저것 대화를 많이 하면서 결혼 그거 뭐 별거 아니라고 어렵지 않게 자주 얘기했었는데     

막상 G가 정말로 결혼식을 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배우자가 생기고 G의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매우 이상하네 뭔가 좀 찜찜한 느낌이랄까?     

버스 내릴 때 카드 안 찍은 기분? 주차하고 나서 차문 안잠군 기분? 고데기를 사용하고 코드 안뽑고 나온 기분? 가스밸브 안잠구고 나온 기분?

암튼 애매한 그런 기분이야.. G도 그런 기분 일까...?     


하지만 우리의 첫 신부인 G는 12년 전 내가 처음 만났던 모습과 이십 대 중반이 된 지금의 모습.

그 변치 않는 고유한 모습이 있어서 결혼을 해도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 같아     

내가 생각하는 G는 독립적이고 우직하고 든든한 모습이 있거든.

어렸을 때는 독립적이었던 G가 마냥 부럽기만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4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 척척 무엇이든 해냈던 모습이 조금 마음 아프기도 하네

물론 그래서 G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G는 뭐든지 G의 방법으로 잘 헤쳐나갈 것 같은 느낌? 왠지 모를 그런 믿음직스러운 안도감이 있어.

     

근데 그냥 결혼을 할 뿐인데 왜 떠나보내는 느낌이 드는 걸까?      

누군가의 집사람, 아내의 모습보다는 내가 아는, 우리가 아는 G의 모습 그대로 결혼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물론 보지 않아도 G는 그런 모습을 잘 지켜낼 것 같지만 말이야.

     

G야, 새로운 가족이 생긴 다는 건 무슨 기분이야?     

모든 가족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지만 배우자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이잖아

     

G가 선택한 피앙새가 '정말로 내 운명이 맞는구나' 싶을 정도로 네 인생을 행복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G의 마음을 허전한 부분 없이 꽉꽉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

혹여나 선택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때는 수정도 가능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게다가 한국에는 기회는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잖아!     

겸허히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이 새끼 도무지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시원하게 선택 취소해버리자고!     

무슨 선택을 하든 난 G를 응원할 테니까 말이야.

     

작년에 나에게 힘든 일이 있었을 때 G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나에겐 많은 힘이 되었거든.     

그리고 내 마음속에만 있는 이야기도 망설임 없이 다 뱉을 수 있는 사람이 너였어     

덕분에 마음도 많이 후련해지고 지금은 거의 다 나아진 것 같아.     

완치가 될지, 완치라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슬프다거나 힘들지는 않으니까.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G는 내 인생에 지분율이 꽤 있어.     

결혼을 해서도 그 지분율 지켜주길 바랄게. 여전히 내 인생의 대주주로 남아줘.

(G의 인생에서도 내가 대주주 일지 조금은 궁금하구나)

     

우리 작년에 맛있는 것만 먹으면서 살자고 하면서 기획했던 맛집 모임 서른 되기 전에는 꼭 해보자.     

그리고 앞으로 더욱더 크고 멋진 어른이 되어보자     

결혼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미 G는 어른이구나 느꼈지만 말이야...      

식 당일의 G를 보고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을지, 펑펑 울지는 않을지 걱정이지만     

그날 제일 아름다울 신부를 볼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하네!


사랑하는 나의 친구 G야, 결혼 정말 정말 축하하고!

앞으로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

맛있는 것만 먹고 아름다운 것만 보고 좋은 것만 하고 살자고!!     

언제까지나 지금의 G모습 그대로 행복한 결혼 생활하길 바라.




12년 전 등교 메이트 SS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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