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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다에레스 Dec 15. 2022

인정받지 못한 곳에서는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다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짐 정리를 시작했다

처음 입사했을 때 사무실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내가 사 왔던 중고 냉장고

냉장고 가득 들어있던 짐을 비우고, 묻어있던 먼지들을 닦아냈다.


큰 짐을 들어내니 사무실에 빈 공간이 눈에 띄면서, 내가 이곳을 떠난다는 실감이 제대로 났다. 결국 혼자 불 끄고 나오면서 단단했던 마음이 뭉그러져 눈물이 났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하고, 주말까지 반납해가면서 사업 키워보겠다고 노력했는데- 결국 평가는 일 못하는 직원이라니


“니들은 하고 싶은 일만 하잖아,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가 없어.”


엄밀히 말해서 잘린 건 아니다. (믿고 싶네) 내년도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지만, 나 빼고 나머지 팀원을 모두 자른다고 했고, 평소 하던 일에 배에 달하는 업무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팀원이 함께 할 수 있는 사업이면 일이 많아도 수락하고 했을 텐데 수족 같은 팀원을 모두 자르고 나만 남기는 게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놓고 보니 우리 셋 모두에게 너만 빼고 둘은 자른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의 잔머리에 놀아난 셈)

“올해까지만 할게요. “ 이틀새에 말이 달라진 이유도 내가 잔류하지 않기로 한 큰 이유이기도 했다.


회사는 1-2년짜리의 단기 공모사업들을 지원해서 운영하는 체계인데, 우리 사업이 딱 2년짜리라 사실 올해까지가 사업 마무리가 될 시점이었다. 나름 사업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서, 내년에도 이 사업을 디벨롭해서 계속 가져가자고 올해 초부터 계속 회의하고 계획을 세웠었다. 원래 같은 사업에 조금 변형한 주제로 사업을 다시 쓰기로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되었었는데; 시에서 이 사업을 신규로 받지 않고 차근히 정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지 뭔지… 아무튼 일 진행이 생각처럼 되지 않자, 우리 팀이 스스로 사업을 찾아서 지원해보기로 했고- 바로 사업을 찾을 수 없으면 몇 달간 무급으로 있어도 되고, 직접 영업을 해서 팀이 돈을 벌어오기로 까지 이야기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니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든 플랜 해체에 팀을 분해시키고, 셋 중에 하나만 데려간다를 똑같이 말하고 다닐 줄이야.


이 사건 말고도, 유난히 올해는 사내 정치질이 심했다. 일만 하기에도 바쁜 시기인데- 사내 정치에 휩쓸리는 것까지 주변인으로 보게 되니 내가 쓰지 않아도 될 감정에 괜한 소비를 하게 되는 느낌. 그 사내 정치의 중심에는 최종 결정권자인 그가 있었다는 것도 참.


지난주 목요일, 엄마를 대학병원 응급실에 데려가서 혼자 숨죽이며 울다가 브런치에 글을 쓰며 해소했던 날.


이미 나는 떠나기로 정해진 사람이지만, 엄마의 사정을 말했더니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를 해달라고 신경을 써주더라 (신경을 써주는 척을 한지도)- 다행히 우려하던 전원으로 인해 간병을 해야 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새벽 내내 엄마와 병원에 있다가 새벽 5시에 집에 들어가게 되어- 그날은 오후 출근을 하라고 배려받아서 12시 반쯤 출근했다.


저녁에 나온 그가 엄마는 어떠신지 사정을 묻더니, 잠시 이야기하자며 회사 근처 카페로 면담을 하자며 데려갔다. 엄마의 사정을 안타까운 척 들어주다가, 그가 건넨 제안은 청년 일자리 사업으로 월급을 보조해 줄 테니, 보조금 사업이 아닌 수익사업을 혼자서 해보라는 것. 청년 일자리 사업 220만 원에 4대 보험 떼면 실수령 180이 될 거라면서, 나머지는 스토어를 운영하며 생기는 이익금으로 인센티브를 받아가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현재 급여보다 터무니없이 적어지는 월급에, 심지어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급여를 가지고, 나머지는 벌어서 가져가라니- 자신도 나를 고용하는 투자를 할 테니 나 보고도 투자를 하란다. 내 아이디어와 재능이 아까워서 다시 한번 붙잡고 싶다고.


“그런데 2년간 저에게 칭찬 한번 안 해주셨잖아요”

“응- 난 너 일 잘한다고 생각한 적 없어. 너네 팀 뭐하는지도 모르겠어”


바로 재능이 아깝다고 했다가 일 잘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니? 지난 2년간 정말 내가 많은 걸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일을 못한다고 내가?! ’


게다가 이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 내용을 써서 자신을 설득하란다. 이렇게 제안을 했지만 자신을 설득시킬 수 없으면, 자신은 날 고용하지 않을 거라고-

“월 150 이상 순이익만 내면 되고, 월 천 정도 벌면 너도 그만큼 가져갈 수 있는 거야 “

현재 월급의 대부분이 엄마 병원비로 지출되고 있다는 말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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