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도보로 2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거라고 구글맵이 계산해 줬지만
속이 꽉 찬 24인치 캐리어와 카메라 가방의 무게를 계산하지 못한 건 내 실수였다.
역사(驛舍)는 오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힌 표지판과 영어와 체코어가 번갈아 울려 퍼지는 안내방송 사이로
나는 연신 기웃거리며 매표소를 찾았다.
역 안의 부랑자들은 내 처지를 금방 눈치채었고 그 시선이 느껴지자 가방끈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는 티켓을 사야 했다.
매표소 창구 너머에는 중년의 백인 여성이 앉아있었는데,
멀리서도 보이는 심드렁한 표정이 그녀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단번에 알려주었다.
나는 줄이 텅 비어있는 창구 앞을 괜스레 서성였다.
억지 텐션은 민망함을 넘어 불쾌감을 줄 수도 있으니 건실한 미소를 적당히 곁들인 인사를 건네자.
“안녕하세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는 편도 티켓 한 장이요.”
곡절 끝에 건네받은 티켓은 그녀의 태도만큼이나 건조하고 빳빳했다.
나는 그것을 주머니에 소중히 찔러 넣고 안내 전광판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시간.
작은 성취감, 약간의 안도감이 명치 아래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라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나는 이 기분을 오래 간직하려 노트와 펜을 꺼내들고 캐리어를 협탁 삼아 이 글을 적는다.
과거의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울타리 안에 갇혀 있었다.
나를 겁주고 회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울타리 밖으로 나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며.
이 안에 먹을 것도 있고 누울 자리도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위험을 무릅쓰냐며.
하지만 내게 그 안식과 평안은 죽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가만히 죽은 듯 사느니 열렬히 헤매다가 죽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 목줄을 끊고 뛰쳐나왔다.
울타리 밖으로.
그대로 있는 게 한편으로는 쉽고 편했을 것이다.
불안하지도, 혼란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가방끈을 쥔 손아귀에서
낯선 언어와 표정을 읽는 시선에서
배회하는 발걸음과 흐르는 땀방울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또다시 헤매기 위해 울타리를 넘는다.
저 멀리서
빈으로 가는 열차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