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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먼 Oct 14. 2024

창원시 공무원 김영식 씨

태국 파타야.

해발 4,000m 상공.


나는 낡은 경비행기 바닥에 앉아서 떨어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턱밑에서 울리는 맥박은 엔진의 굉음과 뒤섞여 멀미를 일으켰다.

어제 본 스카이다이빙 사고 영상의 이미지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망할 유튜브 알고리즘. 하지만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30분 전,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던 나에게 한 중년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한국 사람이에요?”

“네. 선생님도 스카이다이빙하시나요?”

“나는 펀점프 하러 왔어요. 혼자서 뛰는 거.”


억양을 듣자마자 그가 경상도 출신임을 알아챘다.

다부진 체형에 여유로운 표정과 제스처, 디지털 군복 패턴의 반바지.

옆에 앉은 외국인 동료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 듯했다.

왕년에 공수부대 장교 같은 걸 하다가 일찍이 전역하고

날씨 좋은 태국에서 스카이다이빙하면서 먹고사시는 분이 아닐까?


“나는 공무원이에요. 창원시 공무원.”


그는 자신을 한국의 유일한 공무원 스카이다이버라고 소개하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11년 전에 자격증을 취득해 지금까지 취미로 즐기는 중이며

페이스북에서 만난 대만인 다이버와 함께 이곳을 방문한 것이었다.

연세를 여쭈니 곧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틀에 박힌 안정과 평범을 추구하는 게 공무원의 삶인 줄 알았는데. 

그의 인생은 역동으로 가득했다.


“선생님은 어쩌다가 스카이다이빙에 빠지게 되셨습니까?”

“어렸을 때 꿈이었거든. 중학교 때 영화에서 처음 보고 언젠가 저걸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그러곤 결혼하고 자식들 키우느라 조금 늦어졌다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례지만 지금 나이가?”

“올해 서른입니다.”

“하하. 앞으로 기회가 많을 거요.”


삐-

탑승 시작 알람이 울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악수를 건네 잡은 손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전해졌다.


“김영식이오.”



다시 해발 4,000m 상공.


“Are you ready?”


등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덩치 큰 외국인 다이버가 소리쳤다.

하네스를 너무 꽉 조인 나머지 사타구니가 아팠지만 불평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뻥 뚫린 비행기 옆구리에 간당간당 발을 걸치고 고개를 내밀었다.


3, 2, 1, 점프.

몸속의 모든 혈액과 신경 다발이 척추 뒤로 쏠렸다.

맹렬한 바람에 입안이 바짝 마르고

고막은 터질 듯이 팽창했다. 


청명한 하늘.

파타야의 푸른 바다.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꿈인지, 영화인지, 현실인지.


나는 그 사이를 나선형으로 활공하며

천천히 착지했다.


2023년 6월 파타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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