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오셨나요?”
“2시에 예약했습니다.”
“자리에 잠깐 앉아계시면 불러드릴게요.”
난생처음 방문한 정신과 병원의 분위기는 내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다.
무채색으로 가득한 고요한 대기실.
쿠션이 꺼진 의자 옆에는 이름 모를 식물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내 백색소음을 뚫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를 마주 보고 앉았다.
40대 초반쯤 됐으려나. 그 어떤 특징도 찾아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는 다소 건조한 목소리로 진료를 시작했다.
“어떤 게 힘들어서 오셨는지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그때의 나는 절망에 빠져있었고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기력은 발목을 쥐어 물고 더 깊은 곳으로 끌고 들어갔고
나는 불면과 우울 속에서 허우적댔다.
차라리 숨을 거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곳 진료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습니다.”
의사는 내가 하는 말을 상세히 받아 적었다.
말없이 가끔 고개를 끄덕일 뿐, 별다른 리액션은 하지 않았다.
자각 자각. 탁.
타이핑을 마친 의사는 나에게 또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제가 살면서 한 번도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데요, 이상하게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왜 자꾸 이러는지...”
“피우면 되죠.”
“예?”
의사가 환자에게 담배를 허락하다니, 그래도 되는 건가.
상식을 한참 벗어나는 장면이기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환자분 성인이잖아요. 본인이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의사는 나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말라고 강조했다.
담배도 피우고 싶으면 피우라고 조언했다.
진료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는 몸은
가볍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길로 나는 흡연자가 됐다.
3년이 지난 지금, 정신은 매우 건강해졌다.
저마다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다 다르겠지만 나는 내 숨을 눈으로 보는 것이 좋아서 피운다.
그동안 폐 건강은 나빠졌겠지.
하지만 그 의사의 조언이 없었다면 멀쩡한 폐를 가지고도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을 것이다.
오늘도 담배 연기를 뱉으며 숨을 확인한다.
살아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