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루먼 Oct 14. 2024

1월 1일 아침.


새해를 맞아 글을 써보려고 노트를 펼쳤다.

오늘 같은 날은 뭔가 대단하고 희망찬 선언을 해야할 것만 같다.


위대한 시작을 모두에게 알리려면 그에 걸맞는 문장이 필요해.

번뜩이는 영감이 담긴 첫 문장을 떠올리려

빈 종이에 고개를 처박고 있기를 십여분.


나는 오랜만에

커다란 벽 앞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벽.


나는 과거에도 이런 벽들을 종종 마주하곤 했다.

주로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순간에 불쑥 나타난다.

나는 그 위에 그림을 채워야 하는 벽화꾼이 된다.

자신감이 없는 이 벽화꾼은 붓이 말라서 바삭거릴 때까지 첫 획을 긋지 못한다.

섣부르게 붓질을 했다가 오점을 만드느니 애초에 흠없이 두는 편이 좋으니까.

그렇게 수많은 벽들을 지나쳤다.


“일단 쓰자.”


나이 서른이 되어서야 얻게 된 깨달음을 다시 떠올렸다.

일단 붓을 대고 나면, 그동안의 걱정과 망설임은 순식간에 쓸모 없어진다는 것.

아무 것도 없는 벽은 완벽(完璧)이 아니라 결벽(潔癖)이라는 것.


내년 1월 1일이 되면 이곳은

어설픈 솜씨와 후회로 덧칠한 흔적, 무의식적인 낙서가 가득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올해 첫 번째 붓질이 벽에 닿았다.


2023년 9월 항저우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