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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09. 2023

어설픈 완벽주의자의 휴일

온전히 쉬는 법

휴일 아침 눈을 떴는데 머리가 무겁다. 지난밤 두통약을 먹고 잠들었지만 불쾌한 느낌이 여전하다. 머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온몸이 찌뿌둥하다. 간밤 꿈조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일찍 잠든 탓인지 밤새 꿈속에서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숱한 사람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불을 다시 끌어당기면서 뒤척인다. '더 잘까' 아니면 '목욕탕에 다녀올까'. 30여분 넘게 뭉그적대다 결국 자리를 털고 거실로 나온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나면 상태가 호전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에서다. 


지난 7월부터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부서가 바뀌고 자리도 달라졌다. 6주간 교육을 다녀왔고 참 많은 일들이 생겼고 마무리되었고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출근 후 8시간 동안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있던 날들이 손꼽을 정도였고 머릿속은 늘 복잡했고 분주했다. 이 와중에 마지막 학기 등록을 하면서 수업과 과제를 해야 했고 낭독공연과 문화행사 일정까지 겹치면서 평일은 물론 주말도 늘 쉴 틈이 없었다. 


지금 근무하는 부서에 발령받았을 때 동료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입으로는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눈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바쁘고 힘든 부서인데......' 하는 안쓰러운 느낌이랄까. 걱정이 앞섰지만 '나는 괜찮다'라며 미소로 염려를 대신했다. 출장이 많아지고 마음이 분주하니 신발은 늘 발이 편한 운동화와 단화로, 원피스보다는 바지 정장을 입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더 이상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없을 거라고, 다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채우고 있다.


문제는 저질 체력이었다. 아침 출근길에 만난 후배의 첫마디는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세요"였고 만나는 동료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도 '피곤해 보인다'였다. 퇴근길이 아니라 출근길에 그 말을 가장 많이 들었으니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나마 그 상황을 버텨내는 방법은 수면시간을 늘리는 것뿐이었다. 기력이 없고 피곤하니 졸음을 참다가 결국 일찍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났다. 이번주 토요일 아침 일정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오후 행사를 위해 문화원에 들렀다가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오후에 있는 일정 두 개를 소화하려면 안 가는 것이 맞지만 직접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니 그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여쁜 그녀와 인증숏을 찍고 뷔페에서 점심을 대충 먹고 다시 다음 일정을 소화하고. 그날의 가장 중요한 행사시간에는 얼굴에 이미 피곤함이 그대로 표시 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하루 스케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즈음. 이미 몸은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엄마, 내가 왜 쉽게 무언가 시작하지 않는 줄 알아?"

"일단 시작하고 나면 너무 열심히 하니까 힘들어서 그런 거야. 대충 하면 만족스럽지 않아."

무엇이든 대충 못하고 일을 시작하면 최선을 다하는 아들의 말에 내 모습이 그대로 오버랩된다. 분명히 내가 아는 나는 대충대충 하는 사람인데 왜 이리 일상은 늘 빡빡하고 피곤할까. 


마음이 약하니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1분 1초를 허투루 쓰면 큰일 나는 줄 안다.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약을 먹고도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강의를 듣거나 운전을 하면서도 시를 외운다. 항상 침대 옆 탁자에는 읽고 싶어 욕심부리며 구매한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한동안 개점휴업 중인 브런치스토리의 알림 문자가 올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집중하고 오롯이 글을 쓸 여유가 없으니까. 불량주부 꼬리표를 달고 산다. 김치를 담글 줄도 모르고 웬만한 요리는 다 사 먹는 것으로 여긴다. 가끔  만회하고 싶은 욕심에 주말이면 무리하게 장을 본다고 지청구를 듣기도 한다.  김밥을 싸고 감자탕을 끓이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두통약으로 해결되지 않는 몸상태가 휴일 내내 이어진다. 그 와중에 낭독공연을 위한 사전 모임에 다녀왔고 결국 종합감기약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지만 개운하지 않다. 오늘은 한글날. 위대한 한글을 창제한 고마운 날이기보다 덕분에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황금 같은 하루이다. 머리 아픈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것이고, 해야 할 일들은 지금이 아닌 내일부터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고 믿는다. 느지막이 일어나 귤 한알로 비타민 c를 충전하고 연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멍한 정신을 깨워본다. 어디라도 가고 싶어 몸은 이미 근질거리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온전한 휴식이다. 내려놓는 연습,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들은 하나씩 덜어내는 작업이 급선무이다. 그래야 살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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