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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02. 2023

좋은 날 하자

가을단상 2

오전 8시 출근길. 아파트 도로변에 주차해 둔 차가 은행잎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수줍게 맞는다. '헉'하며 순간 당황했지만 '가을'임을 다시 한번 체감하며 피식 웃고 만다. 어차피 차가 출발하고 나면 그녀들은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훌훌 날아갈것이다 . 오늘은 전날 지인들에게 받은 꽃다발 중 국화꽃다발을 챙겨 가슴에 안고 집을 나섰다. 사무실에 꽂아두면 더 많은 사람이 가을을 느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에서다. 아파트 앞에서 만난 낯선 아주머니가 뜬금없이 꽃다발 가격을 묻는다. 이른 아침 꽃집에서 사들고 나오는 것이라 여겼나 보다. 가격을 모른다고 답하니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이내 선물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국화꽃에서 향이 나느냐고 묻는다. 당연한 것을 물으니 어이가 없기도 하지만 이내 꽃다발을 그녀의 얼굴에 대어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마스크를 벗고 향을 느껴보는 그녀. 어떠냐고 물었더니 국화향이 난다며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가던 길을 재촉한다.


가을은 이렇게 소리 없이 사막의 모래처럼 끄덕이는 감성을 건드린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듯 휘휘 날아가는 노란 은행잎 한 장. 가느다란 몸통에서 진한 향기를 뿜어내는 국화꽃 한 다발. 발길을 재촉하는 행인의 등판에 내리쪼이는 따사로운 햇살 한 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통팥이 듬뿍 들어있는 붕어빵.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포장마차 어묵을 떠올리면 이내 가슴에 온기가 돈다.


벌써 11월이네라는 말에 올 한 해도 다 지났구나 싶다. 뒤돌아보면 별로 한 일도 없고 해야겠다고 맘먹은 일들도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 잊고 지낸 날이 더 많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다. 늘 부족하고 늘 후회가 남고. 하지만 그 덕분에 새롭게 결심도 하고 무언가를 계획하면서 시간을 채운다. 매번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결심 단계에만 머물러 있는 과제들이 더 많아 아쉽지만 나를 몰아붙이거나 채근하기보다 한번 더 해보자고 조금 더 노력하자고 속삭여본다.


업무가 힘들고 체력도 안 따라주고 나날이 시한폭탄이 깔려 있는 길을 걷는 듯 다이내믹한 일상들이지만 잠시 멈춰 있다 보면 소소한 행복들이 주위에 널려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어느새 붉게 노랗게 물든 가로수,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정성스레 가꾸는 화단에 핀 앙증맞은 꽃들. 부족한 사람임에도 늘 잘한다고 다독여주고 용기를 주는 따듯한 사람들. 이 모든 이유들 덕분에 오늘도 삶의 이유를 찾고 다시 신발끈을 조인다.


"오늘도 해가 떴으니 좋은 날 하자/ 오늘도 꽃이 피고 꽃 위로 바람이 지나고/ 그렇지. 새들도 울어주니 좋은 날 하자/ 더구나 멀리 네가 있으니 더욱 좋은 날 하자/ 나태주시인의 '좋은 날 하자' 시구처럼 해가 떠서 바람이 불어서 그리고 네가 있어서 살고 싶은 계절이다. 꽃 가격을 묻던 그녀는 오늘 국화꽃을 사러 갔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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