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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1. 2024

가벼운 마음

출근 후 하루 일정을 메모하고 기어이 못 참고 텀블러에 블랙커피를 가득 채운다. 오전 8시 30분, 6개월 수습 딱지를 떼고 전보 발령을 받은 신참 직원이 작은 목소리로 마침 아침 인사를 건넨다. 체격이 왜소하고 차분하다. 너무 조용해서 잘 적응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새로 맡은 업무는 어렵지 않은지 묻는다. 그나마 지금이 덜 바쁜 시기이고 전임자가 옆에 있어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답한다. 혹여나 업무가 너무 어려워 감당하기 어렵거나 힘들면 혼자 애태우지 말고 담당 팀장과 꼭 상의하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말해준다. 나 혼자 갖고 있으면 100인 짐을 누군가와 나누면 50이 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모처럼 필사 책을 펼쳤는데 처음 나오는 글 제목이 크리스티앙 보뱅 소설 <가벼운 마음>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책의 날개들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심 뜸을 들이다 열어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작가는 말한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나에게 가벼움은 어디에 있을까 떠올리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필사를 기다리는 신간 책갈피 사이에, 환한 표정으로 나를 응원하고 지켜주는 가족들의 얼굴에, 이른 아침 정신을 맑게 해주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까만 무늬 속에, 실타래처럼 엉킨 마음사이에 작은 간격을 만들어주는 경쾌한 피아노 선율에, 후덥한 공기를 온몸에 맞으며 맨발로 걷는 황토흙의 퍼석함 사이사이에....

가만히 들여다보면 날로 가볍고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그리고 우리는 늘 복잡하고 무겁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 모든 짐을 혼자 어깨에 짊어진 것처럼 힘들어하고 남들은 다 행복하고 가벼운데 나에게만 고통과 괴로움이 연달아 달려오고 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주말에도 보통 오전 7시가 넘으면 깨어나 하루 일과를 빽빽하게 채우는 날이 대부분이다. 누군가는 하루종일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기도 한다는데, 낮잠 또한 30분을 못 채우고 바로 눈을 뜨는 날이 많다. 지난 주말에는 정형외과 약을 먹은 탓인지 현기증이 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기운이 달리고 어지러움증까지 동반되니 반 강제로 휴식시간이 이어졌고 낮잠을 잠깐 잔 줄 알았는데 눈을 뜨니 오후 7시가 지나 있었다. 무려 3시간 정도를 내리 잔 것이었다. 낯선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에 딸이 가만히 말해준다. 엄마는 휴식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만큼 피곤하다는 증거라고 말이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가만히 요즘의 일상을 되짚어본다. 휴일에도 출근한 날이 많았고 나머지 시간 또한 편하게 나를 내려놓고 널브러져 있던 시간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매사에 너무 진지하고 고지식하다는 말을 듣곤 한다. 설마 내가?라고 의아해 하지만 여러 사람의 눈에 그렇게 비친다면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일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고 피곤함이 나와 함께 지내는 중이다. 어느 때보다 어디에나 있을 가벼운 마음과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필요한 즈음이라는 신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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