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야말로, 필수 그 잡채
#1. 역사란 관점과 해석의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역사수업, 살아있는 역사수업을 꿈꾸는 나에게 역사의 학문적 성격을 무시한 역사수업이란 있을 수 없다. 물론, 때로는 기본적인 지식에 대한 설명도 필요하고 주요 개념을 외워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럴 때는 오징어 다리 떼기 게임도 하고 카드 암기 게임도 하고, 퀴즈도 하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수업이 그럴 순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역사=암기과목"이니까!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학문적 성격을 무시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 역사는 암기과목이잖아요?"
"누가 그래"
"아니 다들 그러던데요, 친구들도 어른들도"
"아닌데"
"왜요?"
"역사는 관점과 해석의 학문이지, 암기만 하는 과목이 아니라고!! 이제 점점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걸"
새롭게 역사를 맡아서 가르칠 때면 늘 반복되는 질문과 나의 해명이다. 역사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해석의 분기 속에서 그 다양함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찾아가는 아주 아주 아주 고차원적인 학문이란 말이지. 당장 근현대사만 하더라도 관점과 해석에 따라 입장표명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음에도 자꾸 교과로서의 역사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거나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오해를 하곤 한다. 그런 오해야말로 역사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샘 와인버그도 <내 손안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라는 책에서 암기력과 역사적 사고는 같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다른 관점을 이해하고 의심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하나 꼽자면 다음과 같다. (물론 이 부분 말고도 매우 좋은 부분이 많음)
"정해진 답을 가지고 과거를 마주하는 대신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때로는 놀랍거나 의심스럽거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줄 해석이나 새로운 사실을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중략)... 역사에 대한 근거 없는 확신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적 무기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진실이라고 여기는 좌나 우의 이분법적 역사는 회색지대를 혐오한다. 그것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민주적 통찰력을 깔아뭉갠다. 또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동기를 하찮게 여긴다....(중략)... 의심의 여지가 없는 세상에서 진실은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런 역사는 다양한 생각에 대한 우리의 관용을 위축시키고 예외적인 규칙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게 한다. 가장 심각한 점은 새로운 증거 앞에서 우리가 신념을 수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용기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제나 그제 한 생각을 내일도 똑같이 하게 한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인가?" (샘 와인버그, 2019, 내 손안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104쪽)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역사교육은 절대적이어야 한다는 명제는 참으로 앞뒤가 안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역사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해석적 학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역사교육에서도 그러한 학문적 성격이 배려가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젠체하는 교과서의 본문이 조금 껄끄럽다. 마치 절대적인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본문이. 교과서에 과연 무엇을 넣을 것인지, 어느 시대를 더 넣을 것인지, 어느 지역을 더 넣을 것인지, 어느 인물을 넣을 것인지도 결국 저자들의 취사선택에 불과하다. 뭐가 더 중요한지도 결국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제작 과정에서 '중요성'을 저자들의 '기준'에 따라 '취사선택'했다는 것이라면, 이미 여기서부터 한 차례 해석되고 걸러진 것인데, 그렇다면 진짜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해 물음표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 그래서, 나는 책을 읽힌다.
그렇다. 교과서 자체가 객관적인 (체하면서)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껄끄러워서, 나는 역사수업에서 책을 읽힌다. 사람의 냄새를 맡게 하고 싶어서. 다양한 관점과 쟁점과 해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 속에서 우리 사회가 꿈꿔야 할, 너희들이 미래에 가서 가져야 할 고민과 가치를 찾아보자고.
결국, 우리가 길러내는 학생들은 미래사회의 중요한 구성원들이다. 그들에게는 숙의할 수 있는, 공공선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고 학교에서는 그것을 연습할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나는 역사도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쟁점과 논쟁점을 읽어내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나눈다면. 그것을 현재 지점과 연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하겠어? 무엇이 가장 현명했을까? 그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를 나눌 수 있다면. 그렇다면 역사를 조금 더 넓은 시선으로 관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와 올해 초,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수업을 했다. (지난해에는 중학교 역사 1(중2)에서, 이번해에는 '정의 Justice'라는 주제로 진행한 거꾸로 캠퍼스에서의 역사수업에서.) 올해에는 제노사이드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면서 임지현 선생님의 "기억 전쟁" 일부(유대인 비젠탈의 사례였다. 나도 책을 읽었을 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음)를 읽히기도 했는데, 과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가? 이미 피해자는 죽고 없는데, 누군가가 대신 그를 용서해 준다는 것이 합당한가? 죽기 직전에 용서를 구하는 가해자에게 용서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비젠탈과 독일 병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역사는 무미건조한 스토리가 아니라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수업이었지 않나 싶다. (설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G!! ㅠㅠ)
그렇다.
역사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학문이기도 하고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학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말랑말랑한 글을 원한다. 이런 말, 저런 말, 이런 입장, 저런 입장이 존재하는 글. 글. 글. 그래서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길 원한다. 책 대화는 그런 면에서 아주 좋은 수업의 방식이다. 나는 국어교사가 아니고 역사교사지만, 책 읽기를 국어 수업에서만 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독서교육을 국어시간에만 한다는 것이야말로 참 고루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함)
나는 인문학적 역사교육을 꿈꾼다. 린다 렙스틱과 키쓰 바튼이 말한 "공공선을 숙의하는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인문학적 역사교육", 와인버그가 말하는 "역사적 사고력을 길러내는 역사교육"은, 암기가 아니라 사고하는 수업으로 가능하다. 그것의 좋은 수단 중 하나가 책 대화라면 나는 기꺼이 독서교육을 하겠다.
그래서 나는, 역사시간에, 책을 읽히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