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바보는 그 후 어떻게 되었나
애 앞에서는 냉수도 함부로 못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 말을 실감한 일이 있다. 역시 옛말은 그르지 않다. 무엇보다 난감한 것은 지금은 장성한 아이들이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여름날 주말을 맞아 어디 가서 맛있는 걸 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내가 문득 소바를 먹자고 했다. 난 그때까지도 소바가 뭔지 몰랐다. 검색해 보니 메밀국수를 일컫는 일본말인데, 경남 의령이 소바로 유명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이 의령으로 들어와 그 맛을 잊지 못해 소바를 만들어 먹었다는 설이 있었다. 드라이브 삼아 한 시간 남짓한 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소바의 본고장답게 이름난 맛집이 많았다.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골라 들어갔다. 잠시 후 소바가 나왔을 때 그 비주얼에 깜짝 놀랐다. 우선 그릇의 크기가 세숫대야를 방불케 했다. 서리서리 감겨 있는 소바는 보기에도 양이 많았다. 게다가 그릇은 물론 수저까지 놋으로 되어 있었다. 놋수저는 손에 묵직하게 잡히는 그립감이 좋아 소바의 풍미를 더했다.
맛은 일반 메밀국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배가 불러 얼추 절반을 남기고 식사를 마쳤다. 계산을 하러 일어서려는데 왠지 서운함이 들었다. 문득 도벽이 발동하여 아무도 모르게 놋저락을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차에 타고 출발하기 전 마치 전리품인양 놋젓가락을 꺼내 아내에게 건넸다.
"가난했던 시절 하던 짓거리를 버리지 못하고, 쯧쯧."
혀를 차며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뒷좌석에 타고 있던 6살 난 큰 아들이 바지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아빠, 이거..."
앗, 놋숟가락이었다. 젓가락만을 챙기는 나를 보고 아들 녀석의 효심이 발동했나 보다. 의기양양한 아들의 표정은 칭찬을 기다리고 있었다.
"부자간에 자~알 한다."
아내의 등짝 스매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