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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민 Oct 11. 2022

엄마, 비가 오면 생각나는(2)

제43회 근로자문학제 1차 통과 작품 (최종 탈락)

 내 기억 속, 그리고 내 마음속을 파고들면 나는 그리 사랑받고 자란 아이는 아니다.

남아선호사상이라고 할까 아니면 편애라고 할까. 나란 사람을 나라고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된 그 순간부터 난 만족할만한 사랑을 받은 기억은 없다. 좋게 생각해, 없었을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낫겠다. 나의 기억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까.


 비가 오는 날이면 교문 앞에는 색색의 예쁜 우산을 들고 자녀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이 있었다. 나는 초·중·고가 걸어서 20분 이내에 있었다 보니 교문에서 엄마가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신 적은 없었다. 그래도 초등학생 때는 오빠와 같은 학교라 교문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봤던 것 같다. 그때도 더 어린 내가 아니라 오빠를 품에 안고 갔던 장면만 남아있어 썩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렇게 우산을 챙기지 않은 날 비를 맞고 집에 가면 비 맞았냐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머리나 얼굴, 옷을 닦아준 기억이 있냐? 그렇지도 않다. 왜냐면 엄마는 버스로 10분 되는 거리에 버스로 통학하는 오빠를 데리러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에 맞아 생쥐 꼴이 된 나는 현관 앞에서 양말을 벗고 들어가 교복을 베란다에 널고 화장실에서 대강 씻고 나오면 그제야 한쪽 어깨는 젖은 채 오빠의 교복을 털며 문 앞에 서 있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그래도 ‘왔어? 비 안 맞았지?’라며 안부를 물어주던 게 참 자존심도 없이 기뻤던 것 같다.

 그런 날은 참 많이도 울었다. 그냥 나 스스로가 불쌍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를 발견해 종례 때부터 신이 나 보였다. 물론, 전부 다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지만 적어도 내 친구들은 그랬다. 교문 앞에 서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 손을 잡고서는 나에게 ‘우산은? 엄마는 안 오셔?’라는 뻔한 질문을 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집도 코앞인데 뭐하러 오시게 해,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라며 엄마를 지극히 걱정하는 효심 가득한 자식임을 흉내 냈었다. 그러면 친구 엄마는 친구에게 나를 좀 본받으라며 타박하지만 그게 진심은 아니었는지 금세 다시 웃으며 빗속을 걸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철이 없었다. 가방을 뒤집어쓰고 냅다 달렸으면 1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를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아주 느릿하게 천천히 걸었다. 혹시나 집에 엄마가 있다면 비에 맞아 빗물을 뚝뚝 흘리고 들어오는 나에게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마음이 있었다. 그저 나를 아프게 하는 고집이었다.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에게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소심했던 내가 하루는 엄마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

“나랑 밖에 나가서 걷다가 오면 안 돼?”

그날은 하늘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비가 무진장 쏟아지는 여름의 늦저녁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영도가 섬이라 비가 퍼부을 땐 집에 있는 게 제일 안전하다. 왜냐면 내가 살던 동네는 배산임수의 지형이라 비가 많이 오면 산사태가 나거나 흙더미가 흘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미친 듯이 비가 내리는 밖을 내다보고는 의아한지 내게 물었다.

“지금?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바라보던 그때 내 표정이 꽤 절실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큰 방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신이 나서 반소매 티에 고무줄 바지를 입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이 시간에 어딜 가냐며 잔소리하는 아빠를 뒤로한 채 큰 우산 하나와 작은 우산 하나를 챙기고 물 빠짐을 생각해 앞뒤가 뚫린 삼선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역시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간간이 번개와 천둥도 요란하게 쳐댔다. 큰 우산을 쓰고 아무 말 없이 걷고 있는 엄마 뒤를 졸래졸래 따라갔다.

 ‘후두두둑-후두두둑’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크고 묵직했다. 얼마나 장대비가 내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10분 정도 걷다 보니 바닷가 옆 작은 도로에 다다랐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작은 접이식 우산은 힘없이 접히면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우산 창살을 지탱해주는 작은 플라스틱을 손가락으로 밀며 고정한 채 간신히 머리만 가렸다. 경사진 곳이라 조심조심 천천히 걸어 내려갔지만 미끄러운 슬리퍼는 자꾸만 발바닥이 아닌 발목을 보호하려고 했다.

 이미 젖은 옷, 자꾸만 벗겨지는 슬리퍼, 아무도 없는 도로가. 나는 슬리퍼를 벗어 한쪽 손에 쥐고 기능을 잃은 우산을 접어 남은 한 손에 쥐었다. 아스팔트의 거친 느낌이 발바닥을 타고 전달되었다. 아무런 보호구 없이 굵은 바늘 같은 장대비를 그대로 맞았다. 나는 앞만 보고 걸어가는 엄마를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갔다.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는지 엄마는 뒤를 돌아봤다. 양손에 슬리퍼와 우산을 쥐고 비를 흠뻑 맞아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내 몰골을 보더니 단춧구멍만 했던 엄마의 눈이 커졌다.

“야! 뭐 하고 있노! 고등학생이나 된 년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혼이 났다. 두툼한 손으로 내 어깨를 두어 대 툭툭 때렸다. 쓰고 있던 큰 우산을 함께 쓰고는 못 살겠다며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탈탈 쳐댔다. 대찬 빗소리에 섞여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에게 하는 폭풍 같은 잔소리가 너무 좋았다. 아무렇게나 머리를 털어 앞머리가 눈을 찌르는데도 그 거친 손길도 미치도록 좋았다.

 경사로 끝쪽에 있던 하수도의 물이 넘치고 있었다. 한꺼번에 비가 많이 오면 한 번씩 범람해서 바닷길로 들어간다. 위에서 내려오던 빗물과 하수도로 들어가지 못해 고여있는 빗물이 만나서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발에 각종 이물질이 묻어있어 그 웅덩이에 발을 헹구기 위해 담갔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느낌이 났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발목에서 갈라져 지나간다. 갈라지면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촉이 퍽 재미있었다. 두 발을 웅덩이 속에 넣고 발장구를 치면서 엄마를 쳐다봤다.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엄마, 이렇게 해봐! 되게 시원하다 응?”

“아이고…, 얼라가? 안 나오나?”

“진짜 재미있다니까? 되게 간질간질해.”

“더럽다! 나오라니까?”

엄마는 내 팔을 잡고 당겼지만 난 버텼다.

“진짜다. 이렇게 해봐 봐 재미있다.”

아마 나를 한심하게 보고 있었을 것이다. 가만히 서 있던 엄마를 끌어당겼다. 삐끗하며 웅덩이로 들어온 엄마는 잠시 표정이 찡그려지는 듯하더니 세차게 발을 훑고 지나가는 시원한 물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한 발씩 첨벙거렸다. 서서히 엄마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첨벙거리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엄마는 여전히 모를 것이다. 내가 빗물을 방패 삼아 소리 없이 울었다는 걸 말이다. 엄마와 나는 신발을 손에 들고 아무도 없이 가로등 불만 군데군데 켜져 있는 도롯가를 맨발로 발장난을 치며 걸었다. 한참 웃고 놀았더니 목도 마르고 출출해져 불 켜진 허름한 슈퍼에 들어갔다. 음료수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에 올렸다.

“아이고 비를 쫄딱 맞았구먼. 비 오는데 어딜 간다고, 비 안 올 때 나오지.”

슈퍼 주인이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그냥 우리 딸하고 산책 나왔어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굳이 나가자고 하네요.”

엄마는 머쓱해하며 웃었다. 난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우리 딸’이란 말만 들렸다. ‘우리 아들’이 아닌 ‘우리 딸’이라는 말을 너무 오랜만에 들은 탓이다. 히죽거리는 나를 슈퍼 주인이 이상한 눈으로 보긴 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난 누구보다 행복했으니까. 과자봉지를 뜯어 젖은 손을 대충 덜 젖은 옷에 닦은 후 과자 하나를 집어 어둑어둑해진 주변을 둘러보는 엄마의 입에 넣었다.

“맛있네, 무슨 과자고?”

“새우깡.”

“아, 이제 들어가자. 춥다.”

우산을 펼치는 엄마의 팔짱을 조심스럽게 꼈다. 나의 작은 우산이 기능을 잃었다는 것을 어필하면서. 경사진 길을 오르려니 미끄러운 슬리퍼가 나를 힘들게 했지만, 엄지발가락에 힘을 잔뜩 주고 걸으니 괜찮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과자를 먹으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엄마와 온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과 엄마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았다는 게, 어쩌면 그 당연한 것들이 나에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비 오는 날의 행복한 기억이 되었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제는 아주 당연하게 ‘응, 우리 딸’이라며 전화를 받는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일탈 같았던 그날을 기억하는지. 엄마의 머릿속에는 다른 날과 같은 하루였는지 까맣게 잊었지만, 나는 비 오는 날만 되면 불현듯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이젠 나이가 있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퍼붓는 날은 나가지 못하지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만큼 비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습기를 머금은 흙과 줄기 사이사이에서 나오는 쿰쿰한 나무 냄새, 차분해진 꽃향기와 촉촉한 바람 냄새가 어우러져 어떤 인공의 향으로도 만들 수 없는 그날의 행복했던 추억의 냄새를 맡기 위해.


 난 ‘오늘의 날씨’를 보지 않아도 곧 비가 올 것이란 걸 안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어찌들 아는지 저마다 다른 냄새를 꼼꼼히도 풍긴다. 한데 모인 자연의 향이 바람에 실려 내 코끝에 닿으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주색 긴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 후일담 -


'비'라는 소재를 쓰게 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나는 왜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가?'였습니다. 그저 자연의 냄새를 좋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냄새에 가려진 그날의 감정이 떠올라서였습니다. 기억이라는 게 참 웃기더라고요.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게 하는 막강한 힘, 그게 기억이었습니다.


'엄마, 비만 오면 생각나는'이라는 수필은 엄마의 사랑이 너무 고팠던 17살의 제 이야기입니다.

이 수필을 적으면서 창피하게도 많이 울었습니다. 마주 봤던 기억보단 등을 봤던 기억이 많더군요.

그럼에도 전 엄마와 친합니다. 제게 등만 보였던 엄마라도 전 등을 돌리지 않았거든요. 언젠가는 돌아봐주지 않을까 생각했던가 봅니다.


자녀를 키우고 있으신 분들, 자녀의 기억 속에 하루하루가 장면으로 기억되진 않아도 무의식 중에 감정으로 남아있을 수 있어요. 그러니 좋은 감정 많이 심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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