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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민 Nov 26. 2022

푸념

기대와 실망에서 오는 포기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수개월째 계속되는 노력에도 임신테스트기에는 분명한 한 줄이 보였다.

처음 몇 개월은 '뭐, 곧 오겠지?' , '날이 안 맞았나?'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어느새 수개월이 지났다.


지난달에는 남편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울었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친구 와이프도 5년 동안 애가 안 생겨서 힘들어했대. 매달 실패하면 자기보단 와이프가 더 상처받았다더라."


외면했던 나의 마음이었다.


'상처'


나는 상처를 받고 있었나 보다. 기대하지 말자고 매달 되뇌면서 어쩔 수 없이 기대하고 있던 나였다.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은 듯 굴던 남편에게 서운함도 느꼈고, 내 욕심인가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려 삼신할머니가 아기를 점지해주지 않나? 또다시 를 자책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마음이 남편의 말에 밀물처럼 터져 나왔다.


5일 동안 수정되지 못한 찌꺼기 배출고 나면 또다시 배란테스트기를 꺼내 들었다. 매번 하는 거지만 적응이 안 됐다. 어플로 날짜를 확인하고 증상들을 입력하며 배란일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결과선과 대조선이 붉게 물들 때 나는 결과지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노력을 강요했다. 그러면 남편은 피곤해하면서도 응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야 근무로 피곤해 제 역할을 못해낸 남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는데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물밀듯 들면서 '이게 내가 원하는 거였나?'라는 생각도 연이어 들었다. 슬픈 것도 화가 나는 것도 미안한 것도 아니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응당 결혼을 하면 아기를 생각하고 나 또한 그랬다. 처음은 시가의 압박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점점 가임기 때만 억지로 사랑을 하는듯한 느낌이 들고 남자와 여자가 아닌 짐승이 되어 생산을 위한 행위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차가워지고 몸도 식어버렸다. 결국 공허함이 찾아왔다.


배란테스트기 결과가 피크를 찍었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하지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남편대로 제 역할에 대한 고통이 있었고 난 나대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보통의 날처럼 퇴근한 남편에게 밥을 주고 TV를 보며 대화했다.

자러 간다는 남편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고 난 내 일을 하기 위해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오늘이 아니면 또 한 달을 그냥 보내게 되는데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망을 하지 않으려면 기대를 안 해야 하고 기대를 안 하려면 행동을 안 해야 한다.

난 실망하지 않기 위해 행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최후의 방법까지 쓰는 남편을 보며 현타가 왔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린 사람인데...


여러 글을 찾아봤다.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들이 나와 같은 심정으로 매달을 산다고 했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양가 어른들은


"너무 그렇게 하지 마. 그냥 살다가 생기면 낳는 거고 안 생기면 뭐 마는 거지. 순리대로 살자." 


그러다 안 생기면, 나중엔 무슨 말들을 하실까. 난 벌써부터 그게 겁이 난다.


포기한다고 해서 포기가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믿고 살면 기대에도 실망에도 덤덤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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