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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민 Dec 13. 2022

나에게 귀엽다는 건?

남편 자랑 한 스푼

"제가 귀엽다고요?"


내가 사람들에게 쓰는 단어 중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단연 '귀엽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제가 귀엽다고요?'라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 내 남편조차 귀엽다는 말에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크게 반응한다.

그도 그럴게 태어나서 한 번도 귀엽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자신이 귀엽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가 귀엽다.


어쩌면 내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남들과 조금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강아지나 고양이 등 정말 귀여운 생명체도 두말할 것 없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내가 정말 귀엽다고 느끼는 포인트는....


이제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가 제 간식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때나 제 몸만 한 책가방에 어깨가 무거워 낑낑거리면서도 엄마가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게 싫어 자신이 들겠다고 하는 초등학생이 귀엽다. 욕을 사방팔방으로 해대면서도 도로가에 떨어진 박스에 교통사고라도 날까 봐 치우는 중학생이 귀엽고, 무뚝뚝해 보이는 고등학생이 허리가 굽고 걸음이 느린 노인의 걸음속도에 맞춰 곧 빨간불로 바뀔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 게 귀엽다. 키가 190cm는 넘어 보이는 남자가 제 아내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이 귀엽고 그런 남편을 위해 까치발을 들어주는 아내의 배려가 귀엽다. 쿨한 척하던 상사가 뒤에서 입술을 삐죽이며 눈에 보이는 복수를 꿈꾸는 게 귀엽고 그 복수를 알고도 당해주는 부하직원이 귀엽다. 물론 그 반대로 귀엽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에서도 종종 귀여움이 발견된다. 제일 귀엽게 느껴졌던 건,

무뚝뚝하기만 했던 남편이 은근히 내 어깨에 기대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릴 때도 아니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해줄 때도 아니고 설거지나 청소를 해줄 때도 아니다.


"치약 새거 써도 돼?"


왜 이 말이 몸서리 처질 정도로 귀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평소 근검절약의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나는 아낄 수 있는 건 전부 아끼는 편이다.

남편도 절약정신이 뛰어난 편이지만, 소모품에 대해선 아끼는 않은 편이다. 난 줄곧 그 부분에 대해 지적했고 남편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나는 지적하는 대신 남편에겐 새것을 꺼내 주고 나는 조금 남은 것들을 알차게 사용했다. 그런 모습들을 계속 지켜봤는지 남편은 치약 끝을 돌돌 말아 짜도 짜도 더 이상 짜지지 않을 때까지 쓴 치약을 들어 보이며 새거 써도 되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귀여웠다. 아마 내 허락을 구하지 않고 새것을 꺼내 쓰던 남편이 새삼스레 허락을 구하는 게 귀여웠던 모양이다.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예상외의 행동을 하는 것.'

아마 난 그런 모습을 보고 귀엽다고 느끼는 것 같다.


초중고가 밀집된 거리를 산책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지도사 일을 했을 때 왜 청소년들이 나를 잘 따랐을까?

유독 다른 선생님들보다 나를 잘 따랐다. 자신의 담당교사가 있음에도 나를 더 좋아했으니까.

그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난 그들이 친 사고보다 사고 안에 숨겨진 귀여움을 발견해서 말해줬던 것 같다.

이미 친 사고를 지적하고 혼낸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다는 걸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나는 사고 외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수습하는 것으로 그들을 이끌었던 것 같다.

그게 참 힘들었지만, 두 번째 사고를 예방하는 데는 도움이 됐던 것 같다.


아, 근래에 남편에게서 또 한 번의 귀여움을 발견했다.

평소엔 '자기한테 아프다고 말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잖아.'라고 매정하게 말했던 남편이 코감기가 걸려 병원을 다녀온 후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내게 '얼마나 코를 세게 쑤셨는지 코피를 쏟았어. 응? 내 말 들었어? 코피를 쏟았다고.' 하면서 어리광을 피웠다. 나는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면서 '어이고 피가 났어? 의사가 잘못했네!'라며 얼렀다. 입술을 샐쭉이며 소파에 앉아 코안을 들여다보는 남편이 귀여웠다. 가끔 그의 안에 어린아이를 훔쳐보는 게 퍽 재밌다. 관심받는 게 어색하지만, 관심받고 싶어 하는 수줍은 어린아이.


이렇게 보면 귀엽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귀엽다는 말을 달고 사는 걸 수도 있다.

귀엽다는 말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도 '이런 모습이 귀엽다고?' 하면서 그 모습을 더 꺼내 보이려고 한다. 칭찬받고 싶은 건 매한가지니까.


난, 어떤 모습이 귀여울까?

나에게도 귀엽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심한 남편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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