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평상시에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응. 노력해 볼게."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서 포기하든 하자."
'노력'이라는 말은 내 자존심이었다.
나는 일찍부터 뭐든 스스로 하는 사람이었다.
책가방 챙기기라든지 일어나서 밥 먹고 학교를 가고,
진학할 학교를 결정하고 먹고살기 위한 사회생활까지.
살면서 '노력'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
최근까지 웹소설 작가로서 두 작품을 출간했다.
'작가'라는 명칭이 아직은 낯설지만 나에게 있어서
노력해 자존심을 지킨 일이었다.
비록, 이렇다 할 큰 매출은 없지만 그저 집에서 하릴없이 지내는 사람이 아닌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서러운 마음에 오기에서 시작된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나 할까.
또 최근 이슈는 출산이었다.
임신도 출산도 회복도, 나에겐 인고의 노력이었다.
말은 참 쉽지.
임신부터 출산, 회복에 이르기까지 오기와 노력이 또 한몫했다.
그놈의 '라떼는 말이야~, 좋은 시절에 태어나서 감사한 줄 알아.'
안 그래도 쉼 없이 출렁이는 마음에 던져지는 작지만 큰 돌멩이들이
오기를 불태웠다.
임신을 하고도 난 출산 직전까지 평상시에 하던 모든 것들을 똑같이 했다.
아니, 더 했다.
'임신했다고 유세하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었다.
물론 그 말을 남편이 하는 건 아니다.
출산준비는 오롯이 나만의 몫이었다.
'나만의 몫...'
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정말 혼자 해내야 하는 모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제왕절개로 출산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긴 마라톤 경기를 하는 내내 페이스 메이커를 해주는 존재가 있었다.
묵묵히 내 노력을 바라봐주고 기다려주고 인정해 주고 또 온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존재.
나에게 자신이 한 노력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편 또한 내 옆에서 힘이 되어주려 노력하고 있었다.
"아기도 아기지만 나한테는 자기가 더 중요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기가 아픈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괴로워..."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 속에도 그 말이 진통제로 다가왔다.
처음으로 오기가 아닌 고마움에서 시작된 노력을 했다.
출산 다음날부터 난 한 발짝씩 걷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아기를 보며 사랑스러움에 눈을 반짝이다가도 고통에 절인 내 신음에 마음껏 좋아하지도 못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난 하루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야 했다.
노력의 결과.
같은 날 제왕절개로 출산했던 산모들보다 월등히 회복속도가 빨랐고,
보조기 없이 그와 복도를 걸으며 또 침대에 마주 앉아 아기 이름에 대해 고민을 하며 웃었다.
그리고 이제,
청아한 눈 속에 우주를 담고 있는 내 아들을 위한 엄마로서의 노력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내 삶을 놓지 않으면서.
아마 육아라는, 어쩌면 평생을 바쳐야 하는 마라톤에서도 함께 발맞춰 뛰며 뚜껑을 따서 그가 내미는 물통을 손에 쥐겠지. 우린 서로가, 각자가 생각하는 가치대로 노력하며 살아가겠지.
앞으로의 노력도 즐거웠으면, 그 노력이 나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