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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아민 May 18. 2024

나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2023. 10. 11.

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육아.


'그래, 다른 사람들도 하는 육아인데 나라고 못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할 수 있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손바닥만 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나의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매 순간 '왜? 대체 왜?'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날 따라다녔고 일분일초가 멀다 하고 눈물부터 차올랐다.

행복함과 기쁨의 눈물? 아니, 후회의 눈물이었다.


'왜 아이를 낳았을까, 왜 낳겠다고 다짐했을까, 정말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었을까?'

이윽고 내게서 아이를 원했던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갔다.


원래도 심했던 불면증은 아이와 함께하면서 더 심해졌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졌고 잠에서 깬 아이의 칭얼거림에 짜증부터 올라왔다.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물어볼 수 조차 없어서 답답함이 뭉치고 뭉쳐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의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투명한 아이의 눈동자에는 겁과 공포가 서려있었고 온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귀를 찌를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


순식간에 한계까지 돌파해 버린 내 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어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감정을 가라앉힌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빨개진 눈썹과 눈가에 생긴 길고 긴 말라버린 눈물자국이 내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 깨닫게 했다.

아이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무슨 죄일까. 그저 생존본능으로 우는 것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어른이란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에게 분풀이를 해버렸다. 난 자격이 없는 엄마였다.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멍하게 창밖만 바라봤다. 울다 지친 아이는 내 품 안에서 잠들었고, 나는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에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듯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아,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는 상황설명을 한 후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나를 괴롭힌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느낀 나 자신이 너무 이상했다. 난 철저히 망가지고 있었다.


그 후로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

였다.


우선, 난 아이보다 날 지켜내야 했다.

그래야 아이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지키는 방법은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 그리고 단 3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퇴근 후에는 군말 없이 날 내보내고 아이와 함께해 줬다.


7개월이 된 지금, 부작용이 있었다.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 나와 떨어져도 아이는 울지 않다.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애착형성이 제대로 안 된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누워있으면 작디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된 듯 사정없이 쥐어뜯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한데, 자고 일어나면 어두컴컴한 방안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을 맞추고 있기도 한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 아이의 눈은 어떤 것보다 밝고 빛난다.



나는 죽었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과 보챔, 귀를 괴롭히는 샤우팅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작고 하얀 아랫니 두 개를 활짝 열어 보이며 꺄하하항- 웃을 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육아라는 게

글쎄,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분명 하루를 전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나게 고된 일인데

우주를 담고 있는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잠시 천국에 와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선택하라면...

솔직히... 아주 솔직히...

엄마라는 이름은 나에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무거운 단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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