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1.
내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나는 죽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육아.
'그래, 다른 사람들도 하는 육아인데 나라고 못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가 할 수 있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손바닥만 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나의 일상은, 나의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고 있었다.
매 순간 '왜? 대체 왜?'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날 따라다녔고 일분일초가 멀다 하고 눈물부터 차올랐다.
행복함과 기쁨의 눈물? 아니, 후회의 눈물이었다.
'왜 아이를 낳았을까, 왜 낳겠다고 다짐했을까, 정말 내가 좋아서 한 선택이었을까?'
이윽고 내게서 아이를 원했던 사람들에게 원망의 화살이 돌아갔다.
원래도 심했던 불면증은 아이와 함께하면서 더 심해졌다.
부스럭거리는 작은 소리에도 눈이 번쩍 떠졌고 잠에서 깬 아이의 칭얼거림에 짜증부터 올라왔다.
우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물어볼 수 조차 없어서 답답함이 뭉치고 뭉쳐 울고 있는 아이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아이의 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투명한 아이의 눈동자에는 겁과 공포가 서려있었고 온몸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그리고 들리는 귀를 찌를듯한 날카로운 울음소리.
순식간에 한계까지 돌파해 버린 내 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어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거실로 나가서 베개에 얼굴을 묻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감정을 가라앉힌 후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이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빨개진 눈썹과 눈가에 생긴 길고 긴 말라버린 눈물자국이 내가 한 짓이 어떤 짓인지 깨닫게 했다.
아이를 꼭 껴안고 미안하다고 엄마가 잘못했다고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무슨 죄일까. 그저 생존본능으로 우는 것뿐인데.... 그걸 알면서도 어른이란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에게 분풀이를 해버렸다. 난 자격이 없는 엄마였다.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멍하게 창밖만 바라봤다. 울다 지친 아이는 내 품 안에서 잠들었고, 나는 새근거리는 아이의 숨소리에 잠기지 않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듯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아, 이게 산후우울증인가.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나는 상황설명을 한 후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섰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루종일 나를 괴롭힌 후회와 죄책감,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느낀 나 자신이 너무 이상했다. 난 철저히 망가지고 있었다.
그 후로 내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
였다.
우선, 난 아이보다 날 지켜내야 했다.
그래야 아이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날 지키는 방법은 아이와 거리를 두는 것, 그리고 단 30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고맙게도 남편은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고, 퇴근 후에는 군말 없이 날 내보내고 아이와 함께해 줬다.
7개월이 된 지금, 부작용이 있었다.
나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고 나와 떨어져도 아이는 울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좋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애착형성이 제대로 안 된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 누워있으면 작디작은 손으로 내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된 듯 사정없이 쥐어뜯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이기도 한데, 자고 일어나면 어두컴컴한 방안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눈을 맞추고 있기도 한다. 분명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데 아이의 눈은 그 어떤 것보다 밝고 빛난다.
나는 죽었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울음과 보챔, 귀를 괴롭히는 샤우팅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작고 하얀 아랫니 두 개를 활짝 열어 보이며 꺄하하항- 웃을 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육아라는 게
글쎄,
죽을 것 같이 힘든데
분명 하루를 전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나게 고된 일인데
우주를 담고 있는 아이의 눈을 보고 있으면 잠시 천국에 와 있는 게 아닐까,
착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선택하라면...
솔직히... 아주 솔직히...
엄마라는 이름은 나에겐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무거운 단어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