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아직도 보호받아야 할 우리 사회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가?
대한민국 헌법 제21조(1987년 개정)
①모든 국민은 언론ㆍ출판의 자유와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③통신ㆍ방송의 시설기준과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④언론ㆍ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언론ㆍ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한 때에는 피해자는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대한민국 헌법 제21조, 1987년 개정)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척도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1987년 군부독재를 끝낸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 헌법은 제21조 제1항에서 언론ㆍ출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는 언론・출판에 의한 피해를 입은 국민이 이에 대한 피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이로 인한 피해도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언론 피해에 의한 손해 배상 청구라는 두 가지 권리를 국민들에게 보장함으로써, 언론에게 ‘언론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부여함과 동시에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언론의 자유를 향한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왕조시대(물론 삼국시대, 고려시대에도 언론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었음)에도 언론 역할을 하던 관리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간원과 사헌부의 관원들은 대간(大諫)이라 했습니다. 임금에게 간(諫 : 임금에게 고언 한다)하는 관원들인 것이지요. 여기에 홍문관(弘文館)까지 포함해 조선시대 언론의 역할을 하던 세 개 부서를 삼사(三司)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장면, "전하, 아니되옵니다." 라며 임금 앞에 직소하기도 하고 최고의 명문으로 임금의 정책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비판하는 글을 써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연산군 같은 폭군에게 간언을 하다 유배를 가기도 하고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일제의 탄압에 맞서 많은 언론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1910년 일제는 한국을 강제 병합한 뒤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제국신문 등 모든 신문을 폐간시키고 사회단체와 학회 등에서 발간하던 잡지들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대신 대한매일신보를 매수해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기관지를 발행했습니다. 말하자면 1910년대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만이 한글로 발행하는 언론이었던 셈이죠.
우리가 잘 모르는 역사가 있습니다. 어니스트 토마스 베델( 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이라는 영국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풍전등화에 처한 대한민국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영국 언론에 실망해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를 창간했습니다. 고종으로부터 '배설'이라는 한국 이름을 하사 받기도 했던 그는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애국지사들과 함께 일제의 침략사를 폭로하는 항일 언론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일제는 1907년, <신문지법>을 제정해 배설이 사장으로 있던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언론들을 검열하고 탄압하기 시작, 급기야 배설 선생은 1909년 옥고 후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 언론은 엄혹한 언론 검열, 통제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수많은 언론인들이 감금, 투옥, 고문, 심지어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은 정권에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내던 동아일보 광고를 차단했습니다. 중앙정보부의 공작이었습니다. 정권의 눈치를 보던 기업들이 이미 계약한 광고물량을 일제히 취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일반시민들은 사비를 털어 소액 광고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제1호 자비 광고 독자는 이제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또 홍준표 현 대구시장도 1974년 당시 성금을 모아 동아일보에 전했다고 합니다. 결국 군부독재 정권의 강압에 못 이긴 경영진은 일부 기자들을 해고했고 해직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투쟁위원회'(동아투위)를 결성해 해고무효, 언론자유 투쟁에 나서게 됩니다. 후일 1987년 민주화 이후 이들이 주축이 돼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합니다.
1987년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인위적인 언론통폐합을 통해 방송을 장악했습니다. 또 최근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약 1,500명의 언론인이 강제 해직당했으며(!) 해직된 언론인 중 약 30여 명은 그 악명 높은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1986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말> 지를 통해 5공 정부가 각 언론사의 보도 내용 및 제목, 단어 하나하나를 통제했던, 이른바 '보도지침'의 존재를 폭로했습니다. 이 사실을 폭로했던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는 대공분실로 끌려가 구속됐고 민언협 사무국장 김태홍과 실행위원 신홍범도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구속됐습니다. 당시 검찰은 이들을 국가보안법 위반, 외교상 기밀 누설(!!), 국가모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했습니다.
결국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던 1987년 이들은 유죄 판결과 함께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거의 10년이 지난 1995년 12월 대법원은 이들에게 최종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영화 <1987>에서 투옥된 상태에서 교도관에게 비밀 메시지를 전하던 분 기억나시나요? 이부영 전 국회의원, 바로 그분이 동아일보 기자를 지낸 '동아투위' 출신 이시죠. 5공 치하에서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납니다.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 5공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수많은 언론인들이 고초를 겪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민주화가 된 이후 개정된 헌법에 의해 우리 언론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언론자유를 누리게 되었죠. 그런데 그런 언론환경에서 오히려 승승장구한 언론사들은 어디일까요?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고 투옥되고 고초를 겪었던 언론인들을 해고했던 그 언론사들입니다. 동료 기자들이 언론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때 동료들을 비난했던 기자들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들은 장차관을 하기도 하고 청와대 요직에 들어가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수많은 민족 언론사가 폐간되고 항일 언론인들이 고초를 겪고 난 후 일제의 유화정책에 의해 키워진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1등 신문사가 됩니다. 자발적으로 일왕 부부의 사진을 매년 1월 1일에 1면 게재했던 신문사, 그 신문사는 1987년 개정된 헌법에 의해 누구 눈치 볼 것 없는 안하무인의 '언론권력'으로 재 탄생합니다.
대한민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뉴스 서비스의 무게중심이 온라인으로 이전했습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음・네이버 등 포털 서비스 사업자들이 사용자의 대규모 인입을 위해 뉴스 서비스를 대표적인 ‘킬러 콘텐츠’로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제 포털의 모바일・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연성화(Soft news)되고 있습니다. 언론사들은 뉴스 소비자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의 기사 송고를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일부 유력 신문들은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특수한 목적의 기사’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외신 보도를 뒤져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찾아 대량 생산, 송고하기도 합니다.
뉴스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이용, 언론사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인 현상을 과대 포장해 젠더 갈등, 종교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을 확대・조장하기도 합니다. 일명 ‘제목 낚시’를 통해 제목과 기사 내용이 다른 뉴스들도 이 방식에 사용됩니다.
우리 국민들의 80% 이상이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소비합니다. 기자는 속보 경쟁에 시달리고 필수적인 게이트키핑은 무시되기 일쑤입니다. 기자는 저널리즘 가치보다는 독자들의 클릭수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접수되는 언론피해 중재건수는 최근 10년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피해 구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허위・조작 보도로 인해 손해배상을 받는 피해자의 절반은 500만 원 이하의 위자료를 받고 있습니다. 많은 피해자들은 변호사 비용에도 못 미치는 손해배상액에 실망해 소송을 포기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 제1항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언론사주에게 부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의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부여된 권리입니다.
2021년 초 한국 ABC협회가 국내 유력 신문들의 유가부수를 조작해 정부의 정책 광고비와 보조금을 부정 수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천억 원의 정부예산이 조작된 유가부수를 기준으로 집행됐습니다. 매일 수백만 부의 새 신문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계란판 공장으로, 포장재용 수출품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의 민낯을 드러낸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그런데 ABC협회의 유가부수 조작에 가담한 유력 신문사들은 이 사안에 대한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수천억의 정부예산이, 조작된 유가부수 지표에 의해 집행된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독립언론들을 제외하면 관련된 대부분의 유력 언론사들은 이 문제를 중요 이슈로 기사화하지 않았습니다.
또 언론 전문 매체 미디어오늘은 300억의 국가 보조금을 사용하는 연합뉴스가 기사를 가장한 광고를 광고기획사에 대량으로 판매한 사실을 특종 보도한 바 있습니다. 2019년 10월 31일부터 2021년 7월 5일까지 기업 등의 행사, 상품 등을 홍보한 기사가 하루 평균 3~4건, 총 2000여 건이 작성돼 포털에 전송된 것입니다. 이 기사는 연합뉴스 홍보사업팀 소속의 직원 명의로 송고됐으며 실제 기사를 송고한 사람은 광고기획사였던 것입니다. 기사를 돈을 받고 판매했을 뿐 아니라 연합뉴스라는 언론의 신뢰를 돈으로 맞바꾼 전무후무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연합뉴스는 약 한 달간 국내 포털 뉴스 서비스에 기사 노출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내 유력 언론사들이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해당 연합뉴스의 사장은 기사형 광고가 총 몇 건인지 이로 인한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기자와 편집국이 언론사주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른바 ‘선택적 보도’가 일상화됐습니다. 특히 언론계 공통의 문제점이나 자사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언론계 전체가 ‘암묵적 합의’가 의심될 정도로 외면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은 행정부・국회 등 정치권력, 재벌・대기업 등 경제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약자’가 아닙니다. 이미 국민들은 언론을 ‘언론권력’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자유를 위협하는 가장 중대한 요인은 ‘불신’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부 언론은 기업과 국민들에게 신문을 강매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들을 협박해 광고비를 편취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새 신문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 가장 엄격해야 할 언론 자신에 대한 비판은 외면하는 선택적 보도,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확대 재생산하는 편향적 보도, 선정적인 클릭 유도 기사. 국민들은 우리 언론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독자가 언론을 믿지 않는데 언론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자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중재법 개정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에서 “위헌적 법률 개정 중단하고 기득권부터 포기하라!!!”라고 했습니다. 아마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는 국회의원들을 겨냥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야 합니다. 국회의원들도, 검찰도, 대통령도 불필요한 기득권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흠결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문제에는 매우 엄격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언론과 기자들 역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한국의 한 언론학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했습니다. 우리 언론에게 말하고 싶은 중요한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언론권력은 ‘통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영원히 남고자 한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은 독일에서 가장 선정적이었던 신문 <빌트>를 겨냥해『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라는 소설을 썼다. 소설에서 블룸은 언론에 의해 창녀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기자를 살해하고 자수한다. 뵐은 ‘작가의 말’을 이렇게 남겼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마구 휘두르지는 않는다. … 헤드라인의 폭력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그것을 한 번쯤 연구해보는 것은 범죄학의 과제일 것이다.
출처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http://www.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