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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경식 Jul 25. 2022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대법원

백인 기독교 근본주의는 미국 민주주의를 무너뜨릴까?

미국 민주주의 상징의 하나인 대법원 전경

얼마 전 미국 대법원이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올해 6월 24일(현지 시간)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대(對)로 웨이드 판결'을 공식 파기한 것이다. 미국 대법원의 이 판결로 인해 사실상 낙태는 헌법상 권리로 보호받지 못하게 됐다. 


미국에서 여성의 낙태권은 보수냐 진보냐를 가르는 이념 성향의 척도로 여겨지는 매우 민감한 현안이다. 당연히 수많은 미국 여성 유권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대법원을 비난하며 거리로 나섰다. 유럽 주요국들도 연일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미국 대법원 앞에서 시위하는 군중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내리면서 연방 헌법에 낙태권에 대한 명문화된 규정이 없는 것을 주요 근거로 삼았다. 말하자면 헌법에 규정하지 않은 낙태권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적이지 않은 이 논리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 헌법은 이런 경우를 이미 예상이나 했다는 듯이 제37조 제1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로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헌법이 하나하나 열거해서 규정하지 않은 인간의 기본권도 보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법이 훨씬 더 좋다!!)


헌법은 다른 규범, 법제와는 달리 '미완성성'과 '개방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수없이 많은 인간의 기본권을 일일이 다 열거해서 기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예는 더 방대하기 때문에 성문화 된 헌법에 다 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37조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특칙을 명문화한 것이다.(감사한 일이다.)


미국 연방 대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부분의 우리 언론은 이 사안에 대해 트럼프가 임명한 보수적 성향의 대법관들 때문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대법원장 포함 총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데 특이하게도 종신직이다. 스스로 사임, 은퇴하거나 범죄행위로 탄핵되지 않는 한 죽을 때까지 그 임기를 보장받는 것이다.(전통과 관습은 때로는 몰상식적이다!!) 대법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특이하게도 트럼프 대통령 하에서 두 명의 궐석이 생겼고(한 명은 사임 한 명은 사망) 트럼프는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대법관 등 두 명을 임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두 사람 다 전임자들보다 한층 더 보수 성향이 짙은 인물들이다. 


그래서 기존 연방 대법원을 구성하고 있던 보수성향 3명의 대법관들과 함께 총 5명의 확실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연방대법원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대부분 분석가들의 의견인 셈이다. 


과연 그럴까? 진짜 원인은 더 깊은 곳에 있다.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의 발호!!


지난 세기 전쟁과 테러로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슬람 근본주의, 간디를 암살하고 인도 분열의 원인이기도 했던 힌두 근본주의, 그러나 사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역사는 이슬람이나 힌두에 비해 그 역사가 더 깊다. 

10세기 전 기독교 근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십자군 전쟁, 성지 회복을 핑계로 수백 년간의 학살극을 주도했다.

11세기 초 시작된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성지 탈환을 명분으로 일으킨 '성전'이었지만 결국 유대인과 이슬람교도뿐만 아니라 같은 기독교도들까지도 학살하고,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약탈했던 서양문명의 아픈 역사로 남았다. 십자군 전쟁의 이념이 되었던 것이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1월 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해 미국 의회 의사당을 점거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

지난 미국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회 의사당을 점거한 시위대들은 대부분 보수 백인 기독교도들이었다.  십자군 기를 들고 온 열혈 신자들도 있었고 그들이 심심찮게 외쳤던 구호가 '성전(聖戰)'이었다.


지난 6월 24일 CNN이 '백인 기독교 민족주의'가 미국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글쎄... 미국의 민족주의라니... 낯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재한다. 백인+기독교+보수의 이념을 가진 기독교 근본주의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유일 종교를 기반으로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 건립을 그 이념으로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못지않게 폭력적일 뿐 아니라 종교적이다. 몽둥이로 경찰을 폭행하고 일부 시위대는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사람 크기보다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와 기도하기도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캐치프레이즈였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적힌 모자를 쓴 예수 그림이나 '하나님 총 트럼프'라고 새겨진 티셔츠도 등장했다. 


이들은 미국이 기독교 국가이길 원한다. 게이 등 성소수자의 존재조차 거부한다. 당연히 여성들의 낙태권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미 연방 대법원이 보수화되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의 위험은 현실이 됐다. 낙태권 폐기로 시작했지만 이제 동성혼, 동성애뿐 아니라 피임 등 다른 기본권도 위협받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촉발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 범죄, 보수화 되는 주류 백인 사회, 후퇴하는 미국의 인권 문제. 이 모든 문제들의 근저에는 보수 기독교도들 사이에 암암리 퍼져나간 사이비 기독교(기독교 근본주의)의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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