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데자뷔 (feat. 지구 반대편 새로운 형제국 폴란드)
2022년 2월 21세기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소련이라는 연방 국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같은 슬라브 민족 국가들 간의 전면전이 일어난 것.
이 전쟁의 원인을 두고 어떤 이들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외교 실패니 서방의 과도한 나토 확장으로 인한 러시아 압박 등 꽤 '중립적인'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세기 끔찍했던 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돌이켜 본다면 이러한 시각은 한가한 정치비평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나치 독일의 폴란드 기습공격으로 시작됐다. 1939년 불과 6개월 전에 체코 영토를 할양받으면서 전쟁불가 각서를 영국 체임벌린 수상에게 써준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23일)으로 동부전선을 안정시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폴란드를 침공했다(1939년 9월 1일).
전쟁의 시작은 늘 거짓과 선동으로 시작된다. 독일은 마치 폴란드가 먼저 독일 국경을 침범한 것처럼 조작했다.
8월 31일 밤 폴란드 국경에 위치한 독일 도시 글라이비츠(Gleiwitz)의 한 방송국에 폴란드 육군 소규모 병력이 기습 침투를 한 다음, 방송국을 점거하고 직원들을 강압적으로 위협하며 독일에 대한 전쟁 선언문을 낭독하고 철수했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부하였던 알프레트 나우요크스 SS 소령의 지휘로 이루어졌던 독일의 철저한 자작극이었다. 폴란드 육군으로 위장한 독일 요원들이 쌩쑈를 한 다음, 국경 부근엔 사전에 차출된,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을 폴란드 육군 군복을 입힌 채 사살한 뒤 시신을 버려두고 떠난 것이다. 당시 작전 개시의 암호는 'Grossmutter gestorben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 사실은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나치 전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전까지는 연합국 내에서도 폴란드가 괜히 먼저 독일을 자극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으로 여겼고, 폴란드 정부가 해명했음에도 연합국 진영에서는 폴란드가 전쟁을 유발했다며 찬밥 대우했다. 9월 1일 새벽 독일은 폴란드의 선제공격에 대한 반격이라는 구실로 전면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독일군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폴란드를 기습했다.(출처 : 나무위키)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소련은 불과 보름 후인 9월 17일 폴란드의 동부 국경을 넘어 폴란드를 공격한다. 역시 선전 포고도 없었다. 독소 불가침 조약 이후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폴란드를 동서에서 공격한 것이다. 협공을 받은 폴란드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패퇴하고 그 이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대학살이 폴란드에서 일어나게 된다.(폴란드는 대전 기간 군인과 민간인 등 6백만 명이 사망해 전쟁 당사자인 독일과 비슷한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폴란드 입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과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됐다.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 영토를 사이좋게 나눠 가졌고 심지어 종전 이후 소련은 폴란드를 나토에 맞서는 전초기지로 수십 년간 사용했다.
당연히 폴란드 국민들은 서쪽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과 함께 과거 소련의 계승국인 러시아도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대한민국에게 독일은 일본, 러시아는 중국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싶다.
러시아는 폴란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치에게 침략당한 폴란드를 해방시켜 준 고마운 나라, 러시아'가 공식 입장이다. 마치 일본이 서구 열강의 위협에서 아시아를 해방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대동아 공영권'처럼 나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폴란드를 침공했다는 것이다.(독일군과 악수하는 저 사진은 어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의 데자뷔라고 할 정도로 비슷한 측면이 많다.
무책임한 양보 : 체코슬로바키아와 크림반도
제2차 세계대전도 개전 수년 전부터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하고 군비를 증강하며 주변 약소국들을 위협하던 히틀러가 있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독일계가 다수인 체코슬로바키아의 일부 영토를 호시탐탐 노렸다. 독일은 침략 의도를 노골화했지만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나치에 팔아먹는데 일조했다.(뮌헨 협정)
21세기 러시아는 2014년 엄연히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어느 날 갑자기 침공해서 합병해 버렸다. 물론 크림반도 내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분열과 내부 정권의 오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흑해를 러시아 내해로 만들고자 했던 러시아의 패권주의가 원인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14년 당시 미국 등 서방권은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무력 개입은 고사하고 가시적인 효과조차 불투명한 경제제재로만 러시아를 압박했다.
안심과 오판
제1차 세계대전으로 지칠 대로 지친 영국, 프랑스 등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시 영국 총리였던 체임벌린 조차 그저 종이 한 장에 불과했던 협약서를 흔들며 "평화"를 외쳤을까.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양보하면 천 길 낭떠러지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었다.
영-불 양국은 "독일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그래도 전쟁을 피하려 할 것이다."라고 '오판'했다.
크림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는 줄곧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노리고 있었다. 반군으로 위장한 러시아군과 장비를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침투시키고 내전을 격화시켰다. 명분은 친 러시아 주민들의 독립 요구. 심지어 2022년 말부터 러시아군은 대규모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포진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 진영은 러시아의 군사적 조치가 2021년 봄과 같이 그저 무력시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설마 러시아가 전면전이야 하겠어?)
feat. 폴란드, 체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폴란드는 수백 년간의 아픈 역사를 다시 떠올리고 있다. '잇몸이 없으면 이가 시린' 법.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폴란드는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맞대야 한다. 설상가상,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재무장을 천명했다. 폴란드 입장에서는 독일이나 러시아나 도찐개찐, 믿을 수 없는 족속들이다.
폴란드와 체코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들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독일의 압박이 가시화되자 영국 총리는 뮌헨으로 건너가 히틀러와 회담을 연 뒤 프랑스와 함께 체코에게 영토를 포기하게 설득했다.(세상에 믿을 놈 없다!)
우리에게도 아픈 역사가 있다. 이른바 1905년 가쓰라-태프트 협약. 러일전쟁 후 미국의 육군장관과 일본 수상이 도쿄에서 만났다. 필리핀에 대한 통치상의 안전은 일본이 보장하고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권은 미국이 양해한다는 것이 이 협약의 주 내용이다. 이후 2차 영일동맹으로 영국의 양해를 확보한 일본은 미국의 루스벨트가 주선한 러일간의 포츠머스 회담(러일 강화조약)으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세상에 믿을 나라는 없다?
폴란드가 우리나라의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00여 문, FA50 경공격기 48대 등 19조 원어치를 주문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난민 수백만 명을 수용했고 수백 대의 탱크, 전투기 등 수많은 전쟁 물자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 미국 다음으로 지원을 많이 한 나라가 폴란드다.
나토의 주요 동맹국인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때처럼 푸틴과 젤렌스키를 오가면서 립서비스로 생색만 냈다.(프랑스답다!!). 독일 역시 러시아 눈치를 보느라 개전초 중요한 시기에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았다. 수많은 전쟁 물자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조차 확전을 우려해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에이태킴스 미사일 등 공격무기들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연일 무고한 민간인들을 폭격하고 있는 러시아 본토는 우크라이나가 공격하면 안 된다고??? 이게 무슨 논리인가?
동병상련, 폴란드와 대한민국
폴란드는 서쪽 국경을 독일과 맞대고 있다.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인 독일이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재무장을 한다고 선언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협공해 강제 지배했던 러시아는 공공연히 네오나치를 박멸한다며(나토 박별?) 동부 국경을 노리고 있다.
아직도 36년간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 그리고 수천 년 동안 한반도를 대륙의 끄트머리 속국으로 생각해 왔던 G2 중화인민공화국을 이웃으로 두고 있는 대한민국. 게다가 바로 머리맡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형제까지.
오로지 국익과 힘, 아직도 이 두 가지만이 진리인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과 폴란드는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어야 할까?